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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 모두가 애처로운 마음들[주말영화 - 정민아]
'욕창', 심혜정, 2019. (포스터 출처 = 필름다빈)

이건 나와 내 가족 이야기이기도,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흔히 알만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나를 비롯한 누구에게나 닥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혜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장편 데뷔작 ‘욕창’은 오랫동안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엄마의 허리 부위에 생겨 없어지지 않고 덧나는 욕창을 화두로 삼는다. 영화는 곪아서 썩어야지 알게 되는 욕창처럼 오랫동안 쌓여서 곪아 버린 가족 간의 상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퇴직 공무원인 70대 창식은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길순을 돌보며 간병인 수옥과 한집에서 생활한다. 과일가게를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큰아들이 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사업에 실패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둘째 아들은 영화 내내 간접적으로 언급되며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좀 사정이 나은 딸만이 부모의 팍팍한 일상에 책임감을 느낀다.

가족 한 명이 오랜 병을 앓으면서 생겨나는 흔한 문제들을 이 가족도 가지고 있다. 품위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노인, 똑똑한 아들에게 올인했다가 생겨난 형제자매 간 갈등, 자녀에게는 부담스러운 의무, 배우자에게는 한없이 무거운 책임. 그런데 이 칙칙해서 다정함이 없는 가족 내에 활력을 가져오는 이가 있으니, 그는 미등록체류자 조선족 간병인이다. 영화에는 흔한 이주노동자 문제가 더해진 양상이지만, 척박한 처지의 그녀는 웃음기가 사라진 가정에 생기를 불러온다.

거친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생명력으로 똘똘 뭉친 간병인 수옥은 노부부에게 쉼 없이 말을 걸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막장드라마를 본방 사수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일요일엔 화려하게 꾸미고, 가끔 환자의 옷장에서 머플러를 꺼내 두르기도 한다. 오랜 간병에 메말라 버린 창식의 마음속에는 그녀로 인해 작은 웃음거리가 생겨난다. 몸을 쓸 수 없는 아내는 그런 두 사람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 눈동자 속에 의미가 담겨 있다.

'욕창'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필름다빈)

영화에는 아내의 욕창을 계기로 간병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소소한 일들이 전개된다. 자녀의 책임을 몽땅 뒤집어쓰고 있는 딸 지수, 그녀의 고군분투는 남의 일인 양 나 몰라라 하는 지수의 남편과 중학생 딸,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아버지에 대한 울분으로 돌리며 부모의 일에 냉정한 맏아들 문수와 그런 남편을 대신해 뭐라도 거들어 보려는 문수의 아내, 말로만 아버지를 위로하는 미국의 둘째 아들의 처지는 나름 다들 이유가 있다.

가장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 창수로, 살림이나 외출을 몽땅 아내의 간병에 맞춰야 하는 그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책임을 놓을 수 없다. 밥을 짓고, 물건을 정리하고, 텃밭을 가꾸고, 드라마 얘기를 나누는 간병인 수옥은 아내의 간병만 뺀다면 그의 흑백 같은 일상을 여러 가지 색으로 채워 준다. 이주노동을 해야 하는 수옥의 처지 또한 흔하디흔한 진부한 스토리다. 남편은 아프고, 아들은 잘 안 풀려서 어린 손자 교육을 그녀가 책임져야 한다.

'욕창'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필름다빈)

차츰 수옥을 엿보는 일이 많아진 창수에게 갈등이 생겨난다. 그는 일요일에 예쁘게 치장하고 나서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다가 그녀가 출입하는 콜라텍과 그녀가 만나는 남자를 엿보게 된다. 그녀가 남자를 만나는 이유가 미등록체류자 신분과도 관계가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수가 나설 때는 또 하나의 막장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다.

애정과 신뢰로 뭉쳐진 가족 관계가 점점 흩어지고 느슨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가족은 여전히 개인의 최후의 보루다. 고령화와 경제 양극화는 미처 닿지 않는 사회복지의 사각지대 문제를 눈에 띄게 만든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영화가 건드린다. 캐릭터 각자에게는 이유가 있고, 그의 입장들은 마음 깊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입장들이 충돌될 때 답이 없다. 출구 없는 인생처럼 결국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고령화와 질병 문제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지만 가족 각각은 또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사회제도적으로 아직 미비한 이 문제로 인해 하층민 가정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위협받고 있다. 그 틈을 이주노동으로 채우고 있지만 인종문제 또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욕창'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필름다빈)

무거운 문제이지만 영화에는 위트와 활력이 넘친다. 조선족 간병인을 연기하는 베테랑 연극배우 강애심은 귀엽고 뻔뻔한 캐릭터를 풍부한 표정과 몸짓으로 소화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최악이 되어버리는 딜레마 앞에서 막막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지만,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이 사건들을 보며 그들 모두의 마음들이 헤아려진다. 편협하지 않고 편향되지 않은 가족 멜로드라마가 표현하는 일상의 리얼리즘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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