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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기 열사[장영식의 포토에세이]

1980년 5월 30일 오후 4시 30분, 종로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한 청년이 계엄군의 장갑차 사이로 떨어졌습니다. 그가 떨어진 허공에는 그가 뿌렸을 유인물이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장갑차 사이로 떨어진 청년의 몸은 비틀린 신음 속에 움직이고 있었지만, 계엄군들은 청년의 상태를 확인하기보다는 허공에서 휘날리는 유인물을 수습하기에 바빴습니다.

지난 5월 30일 오후 2시,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김의기 추모제'에서 의기의 누나 김주숙 님이 김의기 열사의 영정을 들고 있는 모습. 그 뒤에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가 보인다. ⓒ장영식

그의 이름은 ‘김의기’입니다. 당시 서강대학교 경상대 무역학과 4학년이었습니다. 그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북동성당에서 5월 19일 열릴 예정이었던 ‘함평고구마농민 투쟁승리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로 왔다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때 동화작가 윤기현 씨는 의기에게 광주에 있지 말고 서울로 올라갈 것을 권했습니다. 윤기현 작가는 “서울에서 온 자네는 침투한 외부세력으로 몰아가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이야. 그건 자네뿐 아니라 이쪽에도 안 좋아. 여기서 싸우는 대신 서울에 가서 이 실상을 알리게”라고 말합니다.

김의기 열사의 장례식 때 사회를 맡았던 최병천 장로는 "장례 후에 시위가 있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전해 주었다. ⓒ장영식

의기는 윤기현 작가와 헤어진 후에도 금남로 등에서 광주의 학살을 목격하며 분노로 몸을 떨고 있다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가톨릭농민회 소속 이00 씨를 만납니다. 그에게서 자동카메라와 광주를 빠져나가는 여러 방법이 적힌 메모를 받고 “좋은 세상 만들어서 다시 봅시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헤어집니다. 의기는 자동카메라로 광주의 학살을 촬영하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5월 24일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앞에 설치된 '오월 걸상'에 앉은 의기의 누나 김주숙 님과 형부 박철 목사. 김주숙 님은 "이 의자에 앉기 전에는 몸이 힘들었지만, 이 의자에 앉으니 몸과 마음이 참 편안했다"며 "의기를 기억해 주셔서 고맙다"라고 인사를 했다. ⓒ장영식

서울은 의기가 없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붙잡혀 갔습니다. 의기는 어렵게 지인들을 만나 광주의 참상을 말했지만, 상황이 쉽지 않았습니다. 1980년 5월 30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 주변은 무장한 계엄군들에 의해 살벌한 상황이었습니다. 기독교회관 앞 거리에는 장갑차 두 대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의기는 점심시간의 번잡한 틈을 타서 기독교회관 6층 607호에 있던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자신이 광주에서 목격했던 내용을 타자기로 기록하며,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씁니다. 그리고 등사를 하던 중에 복도를 가득 채우며 달려오는 군홧발 소리를 듣습니다. 의기는 계엄군에 쫓겨 등사물을 손아귀에 움켜쥔 채 607호 창밖 난간으로 몰려 의문의 추락사를 합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의기에게 서울로 올라가 광주의 참상을 알려 달라고 당부했던 윤기현 동화작가. ⓒ장영식

1980년 6월 2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병원 영결식장에서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와 한국기독청년협의회 그리고 형제교회 주최로 영결 예배를 거행합니다. 이 자리에는 함석헌 선생과 박형규, 김동완 목사와 박홍 신부 등 당시 재야인사들과 형제교회 신도들이 함께 했습니다. 박홍 신부는 추도사를 했고, 함석헌 선생은 만세 삼창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김홍기 목사는 “의기가 투신할 마음이 없었고,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김동완 목사는 “거룩한 죽음”으로 규정하고 장례를 엄수했습니다. 당시 의기의 장례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수고했던 최병천 장로는 “의기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되면 장례를 엄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거룩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장례를 치렀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영결식장에는 1톤 용달차에 안개꽃을 가득 싣고 온 이도 있었습니다. 의기는 안개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며.

의기의 장례식 때, 1톤 용달차에 안개꽃을 가득 싣고 왔던 김혜영 님은 오월 걸상 제막식에도 안개꽃이 담긴 꽃바구니를 오월 걸상 앞에 놓았다. ⓒ장영식

의기는 경기도 파주 탄현면에 있는 기독교공원묘지에 묻혔습니다. 2000년 3월 2일, 정부로부터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인정받아 광주 5.18 묘역으로 이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2020년 5월 30일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앞에 광주 항쟁 40년, 김의기 산화 40년 만에 ‘오월 걸상’을 설치해 김의기 열사의 거룩한 죽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김의기 열사의 영정과 함께 오월 걸상에 앉은 의기의 누나 김주숙 님은 “이렇게 동생을 기억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이 의자에 앉으니 편했습니다. 깨끗한 의기의 마음이 잘 전달되겠다고 싶어서 좋았습니다. 편했습니다. 의기는 폼 잡고 살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떠나서,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듯이 그런 의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기독교회관 앞에서 봉헌된 김의기 추모 예배에 함께했던 감리교청년연합회 출신 회원들이 함께한 모습. ⓒ장영식

광주항쟁을 광주 밖에서 최초로 알리고 산화했던 김의기 열사. 그는 항상 검정 고무신에 군복 바지를 입고 환희 담배를 즐겨 피운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농부가 되고자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 농촌선교 위원장을 맡아 농민 운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의 죽음 40년 뒤에는 광주항쟁 40년이 함께 합니다.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서강대학교 김의기 추모제에 참석했던 사단법인 김의기기념사업회 회원들이 함께한 모습.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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