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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안에서의 일치5월 31일(성령 강림 대축일) 사도 2,1-11; 1코린 12,3ㄷ-7.12-13; 요한 12,3ㄷ-7.12-13

부활시기를 마무리하는 날에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 성령 하느님께서 내려오신 사건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으로 인하여 제자들의 공동체가 굳건하게 됨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부활시기 내내 평일과 주일을 가리지 않고 1독서로 들었던 사도행전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러기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교회가 시작한 첫 순간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한국 천주교 예비 신자 교리서"의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사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가득히 받고 세상에 나아가 자신들이 부여받은 사명을 당당하게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가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날은 교회의 창립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 천주교 예비 신자 교리서", 제12과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중)

대축일 제1독서는 사도들이 다른 언어로 이야기한 사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하느님께서 같은 언어를 쓰던 사람들의 말을 섞으신 사건이지요. 그런데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이야기했음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언어로’(사도 2,11) 알아들었다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입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생겨났던 바벨탑 사건을 극복하는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다양한 언어는 성령께서 주시는 다양한 은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때 많은 본당에서 '성령칠은'이 적힌 카드를 뽑습니다. 슬기, 통달, 의견, 지식, 굳셈, 효경, 경외심이지요. 이 은총에 대해 여기서 하나하나 소개해 드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 뽑기를 통해서 성령의 은총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적기도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이 일곱 가지 은총과 아홉 가지 열매는 성령으로 인한 다양한 은총과 그 결과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작용이라고 증명되는 것은 바로 일치로 향할 때입니다. 2독서가 그것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1코린 12,4) 

예수 승천과 성령 강림.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오늘 2독서에 배치된 코린토1서 12장은 끊임없이 하나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몸”(12,12), “한 성령”, “한 몸”(12,13)이라는 표현이 강조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됨에 대한 기원은 미사 전례 속에서도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성체와 성혈을 축성한 뒤에 사제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성령을 청원합니다. 이것을 성령 청원 중 일치 기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감사기도 제2양식에는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몸을 이루게 하소서”라는 익숙한 기도문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되기를 청하는 이 주제는 감사기도를 마무리하고 영성체 예식을 시작하기 전에 등장하는 마침 영광송에서도 그 의미가 반복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그렇게 성령과 함께한다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일치 그 속으로 들어가 우리 역시 교회 안에서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이 부활시기에 속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사실을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진정한 부활의 완성은 단순히 예수님 육신의 부활과 승천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령 강림으로 인해 교회가 시작되었듯이 진정한 부활은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성령과 함께 살아갈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하기에 교회는 살아 있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변화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게 교회공동체는 항상 변화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다양성이라는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우리는 때론 투닥투닥거리며 때론 넘어지며 지상의 나그네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일치의 길이 되기를 청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여는 작업이 우선시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두려움에 인해 ‘잠겨진 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잠긴 문을 뚫고 제자들에게 생명의 성령을 선사하십니다. 우리 역시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해 닫힌 마음을 열고 우리의 신앙고백대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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