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영성 따라 배우기-1]

성령이 하신 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종 요한 23세가 1959년 1월 25일 공의회 소집공고를 하였을 때, 교종은 “누군가 나에게 넌지시 일러준 바도 없고 보면, 나의 결정에 가장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고 고백했다. 그 결정은 “불현듯 성령께서 감도하신” 덕택이었던 것이다. 그가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것은 교종의 무류성에 대한 약속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대한 확신에 찬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1960년 6월 5일 교종 요한 23세는 공의회 개최를 위한 중앙예비위원회 및 부속위원회와 사무국을 설치하여 자신이 중앙예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교종은 친한 벗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시겠어요? 성령께서 교종 곁에서 거들어 주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 성령께서 교종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오히려 그분의 협력자지요. 그분이 모든 일을 다 하셨어요. 공의회는 그분 착상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순간에 자신의 의지를 반납하고 하느님께 영적으로 침몰해 들어갔던 성인들의 공통된 느낌을 일러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성령이 하시고 자신은 다만 거기에 손만 얹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작되었고, 이 공의회를 통하여 교회는 세상을 향해 창문을 열었다.

그처럼 거부할 수 없는 성령의 힘에 이끌려 급진적 무정부주의자에서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영성을 호흡하며 세상과 교회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실천적으로 기여한 여성 중의 한 사람이 도로시 데이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킬 성인을 기대하였고, 그 기대를 자신의 몸으로 채워나갔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공의회가 열리기 30년 전에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하고자 하였던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서 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인 교회를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다. 도로시 데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복음서와 초기교회의 사도적 전통이라는 교회의 원천으로 되돌아가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사명을 다시 숙고하였듯이, 복음서 안에서 발견한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초기교회의 교부들의 전통과 성인들의 삶을 되새기는 과정을 통하여 가톨릭일꾼운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직분의 기초: 복음과 사도적 전통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와 주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31-40).

마태오 복음 25장 31-40절은 종말론적 맥락에서 자비 행위를 낱낱이 열거하면서, 최후의 심판 때 사람의 아들이 왕으로 와서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아픈 사람, 낯선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는지 묻는다. 여기서는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 주는 자들이 의인의 반열에 들어간다.

▲ 가톨릭일꾼운동 창립자, 도로시데이
도로시 데이는 마태오 복음의 이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언론인으로서, 사회운동가로서, ‘가톨릭일꾼운동’의 공동창설자로서 평생 거룩한 길을 찾아 걸었다. 그 길은 종말론적이고, 활동적이면서 명상적이고,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길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발견하고 사회 구조들에 대한 분명하고 혁명적인 도전을 수락하는 길이었다.

도로시 데이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은 그의 정치적 행동주의에 예언자적인 빛을 던져 주었다. 그는 사심 없는 봉사를 통해 다른 이들의 끝없는 고통을 완화시켜주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하느님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분의 뜻을 마음에 새겨 살아갈 수 있었다. (계속)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