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예수 승천은 우리에게 믿음의 비전을 열어 준다”

교종, 5월24일 예수 승천 대축일 부활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24일 예수 승천 대축일 부활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예수님의 승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힘과 기쁨의 근원으로 남아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예수 승천 대축일은 교회력에 따라 지난 21일 바티칸에서 엄숙하게 예식을 거행했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국가는 주일로 이동하여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 교종은 이날 바티칸 도서실에서 행한 부활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선교사명(마태 28,16-20)에 대해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선교의 사명을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즉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19-20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구원의 메시지를 믿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증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물론 우리들도 의심할 여지없이 그러한 어려운 일에 자신들은 부적절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말씀하신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0절)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용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의 홍보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성령의 임재하심으로써 우리와 함께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지속적이고 편안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은 우리에게 죄 사함을 행하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을 성결케 하며 그분의 은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개방하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과 성찬과 성령의 끊임없는 내면의 행동으로 계시될 때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의 향연으로 아버지의 오른편에 영광스럽게 거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러한 인내와 기쁨은 믿는 이들의 힘의 근원이며 우리의 힘입니다. 성모 마리아께 어머니의 보호와 함께 우리의 여정에 함께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성모님으로부터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세상에서 증인이 될 수 있는 온유와 용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교종, ‘찬미받으소서’ 5주년 특별기도 발표

프란치스코 교종은 부활삼종기도 후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5주년 행사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면서 ‘찬미받으소서’ 5주년 행사 동안 바칠 특별기도를 발표했다. 교종은 이 회칙이 지구와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에 주의를 기울이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오늘부터 1년간 계속되는 주년행사에 "선의의 모든 사람이 참여해 인류의 공동주택인 지구와 가장 취약한 형제자매들을 돌​​보도록 권유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특별기도 내용.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
당신의 창조물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열고 마음을 어루만지십시오. 우리는 당신 창조 선물의 일부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특히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창의적인 연대를 보여 주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세계적 유행병의 결과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용기를 더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공동선을 찾는 데 필요한 변화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구와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을 듣고 응답하게 해 주십시오. 지구와 가난한 사람들이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로써 더 친근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의 시선 아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미받으소서'는 창조의 의미를 여는 열쇠”

바티칸, 피터 턱슨 추기경, 회칙 '찬미받으소서' 의미 강조

2015년 5월24일 프란치스코 교종은 두 번째 회칙인 ‘찬미받으소서’(Laudato sí)를 출판했다. 회칙 반포 5주년을 맞아 바티칸의 ‘온전한 인간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장관 피터 턱슨 추기경은 회칙이 어떻게 반포되었으며, 하느님의 창조물을 돌보는 것이 하느님 경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창조비전과 연결하여 설명했다. 

내용 요약.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창조 복음’에 대한 설명의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복음의 문학적 장르의 목적은 하느님의 강력한 역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하느님 자신이 구원 자체인지 또는 사람의 복지에 관계없이 하느님이 일한 것에 관해 말할 때마다 ‘항상 복음은 복음’입니다. 교종께서 복음의 관점에서 창조를 언급할 때, 인류에게 유익한 하느님의 위대한 행위를 창조물에서 인정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더욱 이것은 지구의 생태와 보살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이유의 기초를 형성하기 때문에 회칙 전체를 읽게 되는 열쇠입니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 자신의 목적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창조하신 하느님의 행위로 생각하도록 초대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창조된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설계를 생각하도록 권유합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피조물이 우리 공동의 집이 되도록 창조를 설계하셨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회칙의 부제목을 ‘우리 공동주택 관리’로 정한 것입니다. 

창조된 이 공동의 집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하느님 경배와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창조물을 하느님의 행위로 보도록 초대 받았으므로,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경배하는 방법에 피조물이 어떻게 적합한가는 다음 단계입니다. 먼저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모든 것을 하느님을 경배하는 데 모아야 합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그분이 창조하신 ’정원‘에서 인간에게 맡겨진 역할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어에서 사용된 단어는 ’봉사‘라는 의미를 가지며 인간이 예배로 하느님께 지불하는 ’봉사‘라는 용어로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인간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숭배하는 방법, 즉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을 나타냅니다. 모든 인간 활동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경배하는데 모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업이나 지구의 사용이 하느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구는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에게 속합니다. 우리가 창조는 하느님의 행위라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요소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창조물을 이용하는 것은 인류의 권한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간 측면뿐만 아니라 시간 측면에서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미래 후손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는 것들을 고려하여 현재의 요구를 처리해야 합니다. 이를 ‘세대 간 연대’라고 합니다. 창조의 복음적 의미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개발된 묵상으로 이어집니다. 창조는 자신의 기도와 명상의 감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지역사회에서 창조를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는 요소로 사용하도록 격려합니다. 창조물은 하느님의 임재를 드러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지혜의 책에서 이런 방식으로 성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창조물은 하느님을 반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편 19편은 하늘과 창공은 ‘하느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창조물이 하느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창조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보았을 때 그런 의미였습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이 만든 모든 창조물을 보존하고 돌봄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말했듯이 창조물은 우리의 형제자매입니다. 태양 형제도 있지만 어머니 지구와 달 자매도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친족’이라는 용어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과의 관계를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피조물과 우리의 관계는 ‘친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에덴동산에 사람을 소개하셨을 때 아담에게 주신 히브리어 명령의 문자적 ​​의미는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기 2,15) 이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느님이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기 4,9 참조)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형제관계는 인간 가족과 창조 사이의 관계에도 반영됩니다. 우리는 형제를 유지하는 것처럼 친족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옹호하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보호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인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선교는 전략의 결과가 아닌 성령의 선물”

교종 바티칸 선교단체협회 연례총회 메시지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 바티칸 선교단체협회(PMS) 연례총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복음선포는 어떠한 정치, 문화, 심리적, 종교적 형태의 선포와는 다른 것으로, 선교의 사명을 성령께서 주신 무료 선물을 자신들의 이니셔티브를 홍보하는 데 집착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훈련 프로그램이나 교회시설에 맡겨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매년 로마에서 열리는 선교단체 연례총회는 올해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연기되었다. 

교종이 선교단체협회에 보낸 메시지 요약.

교회사명의 가장 중심적 특성은 성령역사의 결과이며 우리의 생각과 사업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령의 기쁨을 받는 것은 ‘은혜’이며 이를 우리의 유일한 힘으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구원은 우리 선교사업의 결과나 성육신에 대한 말씀의 결과가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를 부르는 자들과의 만남의 렌즈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교의 특성은 우선 매력입니다. 교회는 개종이 아닌 매력을 통해 세상에서 자랍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기뻐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주목하게 됩니다. 그들은 놀라워합니다. 추론이나 계산의 결과로 선교적 열정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겸손해야 합니다. 행복과 구원은 우리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며. 우리의 공로에 의해 달성된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만함 없이 겸손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선교의 또 다른 특징은 복잡하지 않게 추진하는 것입니다. 선교사업은 이미 굳어진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가하지 않으며, 주님께서 쉽게 주신 것을 누리기 위해 요구되는 형성 프로그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선교 임무의 다른 특성은 진행 중인 삶과의 근접성입니다. 왜냐하면 선교사명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현재 방식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선택사항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관심을 돌보기 위해 세례 받은 신앙으로 표현된 열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PMS는 그동안 기도와 자선이라는 쌍둥이 트랙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교회에 의해 인정되었습니다. 이제는 대륙전체에 퍼져 있는 네트워크가 되었으며, 이념적 균질화에 대한 보호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업 앞에는 여러 함정들이 놓여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의 승진과 자신의 이니셔티브를 광고할 위험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통제 불안’입니다. 교회단체로 봉사하는 모든 공동체를 지배하려는 욕구입니다. 이는 자신들도 깨닫지 못하는 우월감과 엘리트 의식입니다. 또 사람들로부터의 격리도 피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선교사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논쟁, 호소 및 가르침으로 구성된 '의식 제기'를 통해 항상 깨어나고 동원해야 하는 불활성 집단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이밖에도 추상화와 기능주의가 선교단체들이 직면한 잠재적 위험입니다. 즉 선교사들이 효율성이라는 세속적 모델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PMS는 하느님 사람들의 일부로서 역할을 보존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즉 실제 상황에 몰입하고 더 큰 교회기관 네트워크 내에서 PMS의 행동과 접촉의 모세관 효과를 재통합해야 합니다. 새로운 선교경로를 찾을 때 기도와 선교를 위한 자원 수집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PMS는 교회의 사명을 위한 봉사 도구로서의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전략이나 사명의 핵심지침을 이론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PMS는 독점적으로 관료적 전문적 범위에서 머물지 말고 수많은 현실과 접촉하면서 운영되어야 합니다. 거울이 아닌 밖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 PMS가 기금모금에 전념하는 NGO로 전환되지 않아야 합니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세계 선교의 날’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기금모금을 통한 ‘복지문화’를 피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MS 네트워크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와 함께 특정한 문화적 형태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메시지 형식을 표준화하려는 시도는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을 모호하게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특정 국가들에 진부한 구호를 조장할 수도 있습니다. PMS는 교회 내 자치단체가 아닙니다. 그들의 독특한 특징은 항상 재배되고 로마의 주교와 그들을 결합시키는 특별한 유대에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성 이냐시오의 말씀을 상기하십시오. "모든 것이 실제로 당신에게 의존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실제로 하느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일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다양함 속의 연대를 위한 의사소통”

바티칸 출판사 프란치스코 교종 신간서적 발표

바티칸 출판사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종의 저서 '다양함 속의 연대를 위한 의사소통'(Diversi e uniti. Com-unico quindi sono)이라는 제목의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에 초점을 맞춘 신간서적을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교종의 다양한 연설과 텍스트 등 자료를 모은 책으로 대부분 에큐메니칼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세계 성공회 저스틴 웰비 캔터배리 대주교가 서문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주교는 서문에서 "그리스도의 형제인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 각자를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약속, 즉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초대로 이끌며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이 책에 포함된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과 글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소개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책에 포함된 '그리스도의 시선으로'라는 챕터에서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물었던 부자 청년과의 만남에 대한 마르코 복음의 기록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의사소통 스타일을 밝히고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세상과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고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모습이 없다면 인간의 의사소통은 변증법적인 결투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종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먼저 개방함으로써 존재의 의미, 우리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의미에 관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의사소통은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이 아닌 친교를 형성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에는 특정한 위험도 따른다. 대화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작되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듣는 데에도 열려 있어야 하며, 효과적인 대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유에 대한 개방성을 의미한다. 성 요한 헨리 뉴먼의 관찰에 따르면 종종 인간의 대화는 문제의 요점의 진실이 아니라 개방의 요인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가 말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그러한 성향을 파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만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개방적이어야 하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복음에서 부자 청년은 큰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슬픔에 빠졌다고 지적하면서 그 젊은이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슬프지만 그는 재산의 노예가 되었다고 보았다. 교종은 책에서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존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조미료'는 바로 자유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교종은 "자유가 없으면 진실이 없습니다. 모든 관계는 허구, 위선, 피상적인 상태로 빠지거나 도구화로 악화된다"며 부자 청년처럼 길을 잃지 않으려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는 기도에 대한 개방성을 나타내며, 우리를 하느님과의 대화의 일부로 초대하는 것은 기도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계신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하느님의 시선이 항상 우리들의 삶을 향해 열려 있으며 우리가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 우리는 같은 완전한 자아를 주는 시점까지 관대한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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