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5월 17일(부활 제6주일) 사도 8,5-8.14-17; 1베드 3,15-18; 요한 14,15-21

얼마 전에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는 그 친구의 배우자가 될 분도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왜 저를 보자고 불렀는지 물어보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냥 자랑하고 싶었답니다. 저는 그저 어이없는 웃음만 지었지요. 그들의 모습은 서로밖에 모르는 여느 커플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결혼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던 그 친구가 결혼한다는 게 저는 왜 이리 신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앞에 둔 채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눈 뜨고는 보기 힘든 흐뭇한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말을 꺼내면 자동적으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대답을 하고 그 대답을 들은 상대방 역시 극단의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향한 잔소리마저 그들에게는 사랑스럽게 들렸나 봅니다. 농담이지만 분명 그 자리에 저를 부른 의도는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며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 그 달콤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저는 웃으며 한마디 던졌습니다 “결혼 준비 잘하고, 그런데.... 언제까지 그런가 보자.” 그들은 저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채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말을 듣게 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제 친구의 예를 봐도 그러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말을 집중하게 됩니다. 그것은 비단 연인들 사이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호감을 느끼고 인정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들으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문제는 듣는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말은 행동을 유발할 수밖에 없고 그 사랑하는 사람의 말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실 도전입니다.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내가 다른 사람의 뜻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것은 크나큰 도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첫 부분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도전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주님을 제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명, 곧 그대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뜻하지요. 이는 복음의 후반부에서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사랑하는 사이.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이번 주일의 전례문들도 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본기도부터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 기쁜 날, 저희가 정성된 마음으로 축제를 지내며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오니 ‘지금 거행하는 이 신비를 언제나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기 전에 바치는 예물 기도도 이 내용이 반복됩니다. “주님, 이 제물과 함께 바치는 저희 기도를 받아들이시고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신 이 큰 사랑의 성사에 언제나 맞갖은 삶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그렇게 부활 제6주일 전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일치를 추구합니다. 진정으로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서로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나는 내 방식대로 너는 너의 방식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뜻을 맞추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께서 아시겠지만 함께 뜻을 맞추어 살아간다는 것은 크나큰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언제나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이 글을 쓰는 저에게도 오늘 복음은 크나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삶의 순간순간 주님의 뜻을 망각하다 다시 길을 돌아서려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것을, 내 뜻을 포기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주님을 믿는 유일한 길이기에 포기할 수 없음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력은 비단 우리에게만 유보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주님의 삶 역시 도전이 아니었을까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라는 복음의 마지막 말씀처럼 우리와 하나되기 위해 삶을 살아내신 주님의 사랑 역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어우러져 삶으로 하나 될 때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부활시기를 더욱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도전입니다. 그 도전을 주님과 함께 맞이합시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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