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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5월 7-10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길”

교종, 5월 10일 부활 제5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10일 바티칸 도서실에서 생중계된 부활 제5주일 부활삼종기도 전 가르침에서 우리가 어떻게 불안과 고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등 문제를 제시하면서 예수님의 ‘송별 설교’라고 불리는 최후의 만찬에서 한 말씀을 설명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요한 14.1-12)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절망에 빠지지 말고 당신이 항상 함께 계시고 천국에서 하느님의 집이 기다리고 있음을 신뢰하도록 하신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1절)라며 제자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절)는 말씀은 추상적 조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정확한 것을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삶에서 최악의 불안과 고통의 사건에 직면했을 때는 대처할 수도 없고, 홀로 느끼고, 참고할 것이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러한 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 편에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자신을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이러한 최악의 고통에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두 번째 위로는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2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을 위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마련하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목적 없이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지상은 우리가 잠시 지나가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십니다. 우리의 참된 거처는 천국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생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더 이상 눈물, 원한, 분열 및 어려움 없이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완전한 교통으로 영원히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늘나라에 도달하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예수님임을 의미합니다. 그분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고 사랑으로 그분을 본받으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십시오. 

우리 스스로 권력의 길, 세상의 길, 자기 확인의 길과 같이 하늘로 인도되지 않는 길에 서 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겸손한 사랑과 기도, 온유와 신뢰의 길인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방법이 아닌 내 삶의 중심이신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자기중심적 삶은 결코 기쁨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선택에 관해 물어봐야 합니다. “예수님 저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야 할 길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오늘은 전 세계 어머니날입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에는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

교종, 5월 10일 부활 제5주일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10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집전한 부활 제5주일 미사를 유럽연합의 단합을 지향으로 봉헌하면서 모든 주교와 부제들의 임무에 대해 강조했다. 교종은 미사에 앞서 “어제 5월 9일은 유럽연합이 탄생하도록 이끈 ‘로베르 쉬망 선언’ 70주년이었습니다. 또 8일은 유럽에서 제2차 대전이 종전된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기억하면서 형제관계인 유럽의 모든 민족이 다양성 안에서 단합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교종은 이날 강론을 복음과 독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 역할과 사도들의 기도와 복음 선포 역할에 관해 설명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요한 14.1-12)의 첫 부분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의 중보적 역할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하느님 아버지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아버지를 “하늘의 새와 들판의 백합을 돌보듯이 우리를 돌보시는 분“으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특히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요한 14.13)고 강조하셨습니다. 전능하신 기도의 문을 열고 계신 것처럼 말입니다. 기도와 복음 선포에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 모범을 보여줍니다. 그분들은 하느님과 ‘협상’했습니다.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겠다고 하자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끈질기게 협상했습니다(창세기 18.16-33 참조). 

또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할 때 이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시자 이집트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다며 하느님의 분노를 가라앉혔습니다(탈출기 32.7-14 참조). 이같이 기도에는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제1독서(사도 6.1-7)에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개종자들이 과부들이 식량 배급에서 무시당했다고 불평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교회에서 봉사를 전담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영감을 받습니다. 그래서 부제 7명을 선출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살피게 하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선포에 전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같이 감독자(주교)의 주요임무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교들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담대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아버지께로 향하는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주교들이 다른 일들로 기도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빼앗긴다면 뭔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교회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담대하고 용기 있는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악령은 권력과 돈으로 교회를 파괴한다”

교종, 5월 9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9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를 산타 마르타의 집에 거주하면서 교종을 돕는 한편 바티칸에서 소아과 진료소를 운영하는 빈센트 드 폴 자비의 딸 수녀회를 위해 봉헌했다. 성 빈센트 드 폴과 함께 수녀회를 창립한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마릴락) 축일은 원래 3월 15일이지만 사순절을 피해 지난 2016년부터 5월 9일로 이동해서 기념한다. 교종은 이날 강론에서 성령께서는 교회를 성장시키지만, 악령은 이를 시기하면서 권력과 돈으로 교회를 파괴하려 한다고 말했다. 

강론 내용.

오늘 제1독서(사도행전 13,44-52)에는 사도들의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든 군중들을 보고 질투와 폭력으로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에서 떠나도록 강요한 유다인들의 박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티오키아 도시 전체가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질투로 가득 차 바오로의 설교를 모욕하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의 오른손,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습니다.”(시편 98(97),1.2-3 참조) 주님은 당신의 구원을 알리셨습니다. 이렇듯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반면 교회를 파괴하려는 악령이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성령은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악령은 파괴합니다. 이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과 순교가 동반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교회가 성장함에 비례하여 박해도 발생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위안과 세상의 박해 사이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움이 없을 때는 무언가 빠진 것이 있는 느낌입니다. 악마가 복음의 선포를 파괴하는 이유는 시기와 질투입니다. 또 이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권력과 돈입니다. 파괴하는 것은 악마의 분노입니다. 이 투쟁을 보면서 교회는 하느님의 위안과 세상의 박해 사이에서 나아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은 교회에서 조화를 이루고 악령은 멸망으로 이끕니다. 악령이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돈과 권력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 자체는 항상 위험이 따릅니다. 세상의 힘은 하느님의 능력에 반대되고 이 뒤에는 돈이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날 아침에도 현세와 돈이 진리를 침묵시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마태 28.11-15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의 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친밀함과 진리와 희망”

교종, 5월 8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8일 산타 마리아의 집 아침 미사를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수고하는 적십자사와 적신월사 회원들을 위해 봉헌했다. 이날은 세계 적십자사와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의 날이기도 하다. 교종은 미사 시작 전 선한 일을 하는 이들을 주님께서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했다.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날 복음(요한 14.1-6)에서 예수님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구절에 관해 설명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1절)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 예고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3 21-30 참조).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듣고 심란해진 제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위안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친밀감, 진실, 희망 세 가지 형태입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항상 가까이 있습니다. 결코 멀지 않습니다. 성육신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위로하실 때 빈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는 여기 있다. 내가 너희와 함께." 그분 임재의 ​​힘과 친밀함은 비록 침묵하더라도 우리에게 위안을 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진실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절망에 빠트리지 않으려고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회복 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14.2)며 희망의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하늘의 문을 열기 위해 앞서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안심 시켜 주실 때 우리가 고통을 당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고통을 받을 때 우리와 가까이 계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쁜 시기에 우리는 하느님께 화를 내면서 그분이 우리를 위로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진리이신 주님의 위로는 우리와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에게 희망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주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잊지 말자”

교종, 5월 7일 아침미사에서 정체성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7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 미사를 모든 예술가를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미사 시작 전 우리는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이 없이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며 예술가들이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된 백성의 일부임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교종은 이날 강론에서는 제1독서 사도행전 구절(사도 13.13-25)에 나타난 바오로 사도의 안티오키아에서의 복음 선포 장면에 관해 설명했다. 

강론 내용.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사도 바오로는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역사를 말하고 구세주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바오로는 새로운 교리를 설명하기 전 구원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에 앞서 은혜의 역사와 선택된 백성에 대한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오랜 역사 속에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기독교는 교리일 뿐 아니라 이 새로운 교리가 탄생한 역사이기 때문에 예수님부터 말하지 않고 지난 역사를 설명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윤리와 도덕, 원칙 이상의 것입니다.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원칙으로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더욱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엘리트들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유롭게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하느님 백성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우리는 이념적 기독교인이지만 진정한 기독교인은 아닐 것입니다. 부디 하느님 백성에 대한 소속감을 잃지 마십시오.

그동안 우리가 여러 번 이러한 편파적인 ‘엘리트주의’에 빠졌다는 것은 슬픈 역사입니다. 엘리트주의를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소속감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우리는 항상 하느님 백성의 일부임을 잊지 말고 우리 구원의 역사를 전하고,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종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항상 조상들을 기억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험한 편차는 하느님 백성에 속한 기억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그마주의’, ‘도덕주의’, ‘엘리트 운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과 맺은 성약을 지키고 우리 또한 항상 충실하고 거룩하신 하느님 백성으로서 전체적인 믿음의 감각을 가지고 있을 때 결코 오류에 빠질 수 없습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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