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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5월 4-6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부제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교종과 함께 하는 5월의 기도 주제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의 기도 주제를 ‘말씀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충실한 부제’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비디오 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 내용.

부제들은 제 2의 사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직의 일부로 그들 가족과 함께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합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수호자입니다. 말씀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에 충실한 부제들이 교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상징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교종 사도직의 전 세계 기도 네트워크는 인류가 직면한 도전과 관련한 교종의 매월 기도지향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교종 비디오 메시지’를 개발했다.

 

“기도는 희망과 구원을 위한 울부짖음”

교종, 수요 일반교리, 기도의 본질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6일 수요 일반 교리교육 시간에 이날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주제인 ‘기도’에 관한 교육을 시작하면서 희망과 구원을 위한 외침인 기도를 질식시키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종의 교리교육은 바티칸 도서실에서 실시되어 TV와 SNS로 생중계되었다. 

가르침 내용.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 후 눈을 뜨게 된 여리고 출신의 맹인 거지 바르티매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마르 10,46-52) 그는 비록 맹인이기는 하지만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47절) 그는 자신의 울부짖음을 유일한 무기로 사용하고 조용히 하라고 비난하는 많은 사람을 무시하고 메시아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다윗의 아들’을 외쳤습니다. 맹인 거지의 기도가 하느님을 감동시켜 바르티매오에게 ‘구원의 문’이 열려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하느님 자비와 능력을 끌어들이는 ‘구원을 위한 외침’임을 보여 줍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지상여행에서 의미를 찾는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순례를 계속하면서 특히 가장 어두운 순간에 인내하며 주님께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가톨릭교회 교리문답도 겸손이 기도의 기초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양손을 들고 구원의 은사를 간청하기 위해 울부짖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땅에서 유래한 즉 ‘겸손’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불안정한 상태, 하느님께 대한 지속적인 갈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믿음은 외침’입니다. 우리는 그 외침을 질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가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상태에 대한 항의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구원 받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 반대 주장보다 더 강력합니다. 인류의 내면에는 반대의 주장보다 더 강한 기도의 소리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명령도 아닌 자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목소리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창조물에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비의 신비가 궁극적 성취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울부짖고 구걸합니다.

5월8일은 아르헨티나 주보이신 로잔 성모 축일입니다. 이날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폼페이에 있는 성스러운 로자리오 성모님 순례지에서 전통적인 청원기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코로나 팬데믹의 어려운 시기에 우리들이 필요한 은혜를 아드님 예수께 청원하도록 기도합시다. 저는 루잔 대주교님께 영적인 순례자로 함께하겠노라고 편지를 드렸습니다. 또 매년 5월8일과 10월 첫째 주일에는 폼페이 로자리오 성모 순례지에서도 교회와 온 세상에 자비와 평화를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영적으로 동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는 빛”

교종, 5월6일 아침미사 언론인들을 위해 봉헌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6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 미디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미사시작 전 “이 유행성 전염병 시기에 미디어에서 일하는 모든 이가 위험 속에서도 항상 진실을 전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교종은 강론에서 이날 복음(요한 12,44-50)을 인용,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는 빛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4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또 제자들의 사명은 ‘세상이 어둠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빛을 세상을 비추게 하는 역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어둠의 노예였습니다. 빛은 우리가 진실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을 당신 백성들에게 가져왔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눈을 멀게 하고 아프게 하기 때문에 빛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과 교만과 세상의 영이 우리 눈을 멀게 합니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추악한 것들, 즉 우리의 죄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빛 속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것들에 머물러 있다면 벽에 가로막혀 출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정죄하지 않고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라도 매일 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고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회생활, 정치생활, 국가와 국제질서의 모든 어두움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는 분입니다. 회심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먼저 어둠을 보라고 요청합니다. 주님은 선하시고 온화하시며 항상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빛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종, 이주 농업노동자의 존엄성 존중 호소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노동자들의 존엄성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호소했다. 교종은 "저는 지난 5월1일 노동문제에 관한 몇 가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농촌에서 일하는 많은 이주 농장 노동자에 관한 것입니다. 불행히 그들은 매우 가혹한 처지에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 팬데믹 위기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존엄성은 항상 존중되어야합니다. 바로 이주 노동자들과 착취당하는 모든 노동자의 호소에 우리 목소리를 더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위기가 우리들이 그 사람들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한편 유럽 카리타스(Coritas Europa)도 4월16일 코로나 제한기간 동안 식량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를 담아 유럽 46개국 이주 농장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믿음의 걸림돌들을 제거합시다”

교종, 5월5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5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사망한 모든 희생자에 대한 연미사로 봉헌했다. 교종은 미사에 앞서 "오늘 우리는 유행병으로 사망한 고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돌봄도 없이 혼자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장례식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받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교종은 이날 강론에서 ‘믿음의 걸림돌’에 대해 설명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요한 10,22-30)에서 몇몇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인지 여부를 공개적으로 말하라고 요청합니다.(24절)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미 밝혔다고 대답하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25절) 이 에피소드는 우리 자신의 믿음을 반영하기 위한 초대입니다. “믿습니까? 예수님의 부르시는 목소리를 알아듣습니까?”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 데 방해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걸림돌은 ‘돈’입니다. 주님의 문에 들어왔지만 돈에 갇혀 계속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돈은 커다란 장애입니다. 돈은 우리를 계속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빈곤에 빠져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은 세상의 주인이며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마음의 완고함은 믿음의 또 다른 걸림돌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완고함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신실하지 않습니다. 신실함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완고함은 자신만의 안전일 뿐입니다. 어느 신자 여성이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토요일 오후 결혼식에 갔으며 혼배미사로 주일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는 주일미사 의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죄에 빠졌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완고함은 우리를 주님의 지혜와 아름다움에서 멀어지게 하고 자유를 빼앗아가게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에 방해가 되는 세 가지 태도로 냉담, 성직주의, 세속의 영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냉담과 무관심은 주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욕구를 없애는 일종의 ‘피곤함’입니다. 또 성직주의는 사제를 예수님 자리에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직주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대신 신앙의 문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부과합니다. 

자유의 신실을 빼앗아 그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방해하는 끔찍한 죄입니다. 이와 함께 세속의 영은 믿음의 문에서 우리를 막습니다. 우리는 일부 교구에서 거룩한 미사가 어떻게 거행되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예수님의 은혜와 임재를 분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양 떼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우리는 돈과 무관심, 완고함, 세속성, 성직주의, 이데올로기 등 모든 것의 ‘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때때로 자유가 너무 멀리 가고 우리가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것은 이미 자유로워지기 전에 미끄러져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자유롭게 성장시키십시오. 우리 자신이 주님께 대한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예수님 ‘양의 문’을 통과하고 예수님 양 떼가 되기 위해 넘어가야 할 자유가 있는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살필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정과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호소”

교종, 5월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코로나19 전염병으로 가족들이 집에 닫혀 있는 동안 가족들의 화합을 기도하면서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가정의 화목과 단합을 원하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교종은 미사 시작에 앞서 전염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집에서 외출하지 않는 동안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와 함께 많은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가족들이 이 기간 동안 창의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초기교회에도 구성원들 사이에 많은 이념과 생각의 차이가 있었다며, 일부 신자들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 베드로 사도를 비판한 이야기를 담은 이날 독서를 설명하면서 교회 내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 첫 번째 독서 사도행전(11,1-18)에서는 예루살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베드로 사도가 이교도들과 함께 식사했다고 비난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서 발견되는 많은 사단의 한 예일 뿐입니다. 이러한 분열의 정신은 우리를 의로운 사람들과 죄인들, ‘우리’와 ‘그들’ 사이에 사람들을 나누게 해 줍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실제로 당시 종교적 분위기에서 베드로뿐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죄인들과 식사하는 것에 대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념으로 태어난 교회’의 질병입니다. 즉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대한 우리들의 신념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티칸에 계시는 어느 추기경님은 ‘교회는 강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이러한 것을 선호하고 또 다른 신자들은 다른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같은 강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요한 10,11-18)에서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16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는 모든 사람이 중요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과 의를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 도둑, 심지어 그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모두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목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분열의 심리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모두는 형제자매이며, 그분은 모든 사람의 목자입니다. 오늘의 단어는 '모두 여러분!'입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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