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김명진]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은행나무출판사, 2020

이 책은 내게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

“전염의 시대”라는 제목의 단어부터 최근 상황을 겪으며 생긴 고민에 실마리를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감염’의 급속한 세계화 그리고 무너진 일상.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당황스럽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이 책은 어떤 빛을 비춰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결국 이는 나만의 고민이나 개인 삶의 문제가 아니며, 시간적으로도 지금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확인이었다.

작가 파울로 조르다노. 그는 코로나19로 극심한 피해를 본 이탈리아의 한복판에서 과학자의 시선으로 이 시간을 진단했다. 1982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나 물리학을 전공한 학자이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 상과 캄피엘로 상을 동시에 받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 전염의 시기가 폭로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 귀를 막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글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글이기도 하다. 그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징후, 증상, 사건이 우리의 사건임을 먼저 받아들이고 알아들어야 한다고 먼저 성찰한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김희정), 은행나무출판사, 2020. (표지 출처 = 은행나무출판사)

‘전염의 시대’로 현재를 명명한 작가는 “인간은 더 이상 섬이 아니며, 우리 각자는 유일한 방역선이 되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뚜렷한 결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또 각계에서 우리 모두 감염 또는 방역의 공동체임이 확인됐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전염의 시대는 초연결 사회이며 모든 사회 구성원은 공동 운명체”라고 말하는 동시에, “이 감염은 징후이며 열쇠는 생태계 속에 있다. 또한 전염의 시대에 투명한 정보는 예방의학 그 자체이며, 전염병에 더욱 취약하게 하는 것은 가짜정보”라고도 말한다.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시편 90, 12)

또 하나 무너진 일상과 새로운 일상에 관하여.

작가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 무너지고 대신 그 자리를 확진자와 감염자, 완치자와 사망자의 숫자와 결석일과 휴직일의 숫자를 세는 나날에 대해, 단순히 숫자를 세는 것을 넘어 “셀 줄 앎”을 통해 이 시간에서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도록 생각하고 깊이 대면하기를 권유한다.

고통의 유일한 미덕은 고통을 통해 얻은 의미를 사는 이후의 삶일 것이지만, 우리는 모두 어쩌면 이 숫자를 세며 느꼈던 고통이 아무 의미 없게 되는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 속의 몇몇 구절을 함께 나눠보고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달랐다. 우리가 알고 있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일시에 일깨웠다. 바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한 데다 사회, 정치, 경제 논리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신적으로도 서로 얽혀 있다는 것 말이다.”

“더 이상 국경도, 지역도, 구역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정체성과 문화를 초월하는 것이다. 전염의 급속한 확산은 우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범세계화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깊이 공감했다.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적인 그 어떤 일깨움이 우리를 계속 흔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화라는 말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살았지만, 그 세계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걸 이번처럼 정확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그것이 안심되는 간단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던 그렇지 않든 촘촘하게 연결된 망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무서우리만치 강하게 느끼는 시간들이다. 그러면서 그 두려움만큼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구는 그리고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 있음을 목도하지 않는가. 결국 이 시간 후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주 묵직한 질문에 대답할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전염의 시대에 우리 행위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이 위기가 지나가더라도 그 점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우리는 다수이고, 우리 각자의 행위는 각각 지각되기 어려우며, 막연한 전체 결과로 이어진다. 전염의 시대에 연대감 부재는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결여에서 온다.”

저자가 얼마나 걱정하는 부분인지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결국 나는 나만이 아니라 인류라는 커다란 부분체임을 얼마나 깊게 각성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 이 부분의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숙제를 받은 이상, 충실하게 그 숙제를 풀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우선 나 자신부터 성실하게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대답하기 위해 상상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이 환경에게 가한 폭력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소굴에 잠잠히 머물러 있던 새로운 병원체들을 외부로 끄집어냈고 접촉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산림 벌채는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고, 결국 우리의 현존을 위협했다. 거침없는 도시화도 마찬가지다. 많은 동물 종의 급격한 멸종은 그들 몸에 서식하던 세균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만들었다. 집약적 축산은 본의 아니게 그야말로 모든 것을 증식하는 사육장이 된 지 오래다. 아직 이름조차 짓지 못한 미생물들은 곧 새로운 터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인간보다 더 나은 번식지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수효가 많은 데다 더욱더 증가할 것이고, 사방팔방 움직이며 수많은 관계를 맺는, 미생물 입장에서는 최적의 숙주 아닌가?”

“바이러스는 환경 파괴로 생겨난 수많은 피난민 중 하나다. 그 옆에는 박테리아, 곰팡이, 원생동물이 있다. 잠시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이 새로운 미생물들이 우리를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쫓아 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

이 부분을 읽으면서 녹아내리는 북극에서 처참한 모습의 북극곰이 떠올랐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폭력적 사고방식이 만들어 낸 결과의 한 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요즘 우리는 지나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나치게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고....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저절로 나온다고 생각한다. 쓰고 버리는 시대가 낳은 아주 불행한 사태이다. 우리의 생활방식이 폭력에서 상생으로 가기 위해 덜 먹고, 덜 쓰고, 덜 버리는 생활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같이 살아가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인 것이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가려져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하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직시하게 하고, 현재에 부피를 다시 부여한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고 고통이 사라지면 깨달음도 증발한다. 바로 마음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전염의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져버릴 진실들이다. 비상사태는 숫자, 증거들, 규정들 그리고 거대한 두려움으로 우리의 머릿속을 꽉 채운다. 그렇기에 이외의 다른 논리들과 수많은 의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전과 똑같은 세상을 반복하고 싶은가?”

생각하는 용기. 어쩌면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기의 생각을 쉽게 내동댕이치고 휘둘리지 않았나 다시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한다면.... 집단 지성, 서로에 대한 연민이 우리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생각하는 용기를 내려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과 인류를 연결하는 상상력. 그 상상력이 우리의 용기를 부추길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막연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이 되고 스스로 존중하는 태도만이 지금처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행한 사태를 막아낼 것이라 믿는다. 인간이 손을 대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자연이 회복하는 속도를 보면서 우리의 한계와 자연의 무한함을 본 이상, 우리는 그 경험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그토록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진실일 것이다. 생각하는 용기를 간절히 구해야 할 시간이다.

 

 김명진
청주에서 남편, 아들과 길동무작은도서관을 꾸리고 있다. 도서관 한 켠에서 아로마테라피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고 도서관의 중요한 행사인 인문강좌를 기획하는 일을 기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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