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이팝나무. (이미지 출처 = Pixabay)

쌀밥나무를 심으면서

- 닐숨 박춘식

 

 

쌀밥나무 묘목을 심고

영주 나무 시장 김재수 사장에게 전화하니까

나무 이름은 이팝나무라며

물을 가득히 주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보리쌀 가득한 큰솥에 쌀 한 움큼 안치고

물을 넉넉하게 채우던 어머니 모습이 어른거려

순간 눈물이 턱까지 내려옵니다

 

‘쌀밥은 생일에만 먹는 것이다’라는 불문율

냉수 한 바가지로 허기를 달래던 노인들

 

나무가 쌀밥으로 변하는 5월, 하늘 어머니 달에

땅의 엄마들은 돌림병 걱정하며

나무에 알약이 주렁주렁 달리기를 합장합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의 미발표 시(2020년 5월 4일 월요일)

 

세상이 상상 외로 빨리 변화되니까 지나간 기억들이 추억이나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과거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다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세계 어느 곳이든 모든 사람이 손전화를 들고 다녀, 어디서든 서로 연락할 수 있고 그리고 필요한 지식도 손가락 서너 번 움직이면 곧바로 찾아 이용할 수 있으니까, 쌀밥나무든 보리밥나무든 관심 밖에 있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저는 쌀밥나무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묵상을 이끌어 가는 힘이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참고로 간단한 자료를 여기 소개합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령초등학교 정문 양쪽 담장 안에 이팝나무 일곱 그루가 서 있다. 키가 13미터까지 치솟은 천연기념물 '평지리 이팝나무군(群)'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아기사리'라고 부른다. 아기가 묻혔던 곳이라는 뜻이다. 300년 전 마령 들녘에 흉년이 들었다. 엄마 빈 젖만 빨다 굶어 죽은 아기를 아버지가 지게에 지고 가 묻었다. 아버지는 무덤 곁에 이팝나무를 심어 줬다. 죽어서라도 쌀밥 실컷 먹으라 했다."('우대받는 세대' 카페의 글)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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