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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도 이렇게 조그마한 애기일 때가 있었어? 난 이모가 원래 이렇게 크게 태어났을 것만 같았는데....”

“저기요. 너도 늙거든요??”

옛날 사진첩을 함께 보다 조카가 툭 던진 한마디에 집안이 시끌벅적합니다. 

그러게요. 저도 참 조그마한 애기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커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시절에는 좀 더 간절하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어른이 되어서는 예상과 다른 현실에 당황하는 중입니다. 

어른이 되면, 확고한 중심으로 인해 헤매지 않을 수 있는 이성적 판단, 남을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 다른 사람의 실수와 아픔을 옆에서 함께 버텨줄 수 있는 관대함이 생길 것이라 믿었던 굳센 믿음과 초라한 현실의 간극을 느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 달째, 이동제한령이 풀리지 않은 지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종종 “두려움”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돌풍이 한 손에 저를 잡아채 바닥으로 던져 버리는 경험을 합니다. “수도자라면 매일 기도하실 텐데.... 수녀님도 그런 우울함을 느끼시나요?”라는 질문이 저를 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이름이 회자되고 디지털 명상을 위한 앱과 온라인 콘텐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실시간 명상 수업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기에 제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정상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가장 초연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건 아이들인 것 같습니다. ⓒ이지현

초연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제가 꿈꾸는 그런 어른은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이니까요. 

그러나 매일 무언가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카의 상상과 달리, 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모두 태어난 후 매일매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매일의 창조는 피조물인 우리의 협조 없이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산다”는 미명 아래 끌어 모은 지식과 경험들을 그저 나열만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나의 삶과 연결하여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저 늘어만 가는 지식과 경험들에 어느 순간 압도된 것 같습니다. 마치 내가 이 모든 것이 통합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지요.  

매일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느님의 창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해오던 것과 다른 것을 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십니다. 그것은 폭발적이고 혁명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아주 작고 별일 아닌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리 없이 아주 작은 변화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선물 받은 모종을 두 달 뒤에서야 화분으로 옮겼다. ⓒ이지현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줄기가 2개뿐인 작은 식물 모종을 선물 받았습니다. 곧 화분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전 역시나 2달이 지난 이제야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화분으로 옮겨 심고 보니 이렇게 줄기가 많았나 싶게 넓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작은 모종판에서 숨도 못 쉬고 힘들었겠구나?” 말도 걸어 보고 화분 속 식물과 함께 크게 숨을 쉬어 봅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이라 어색하긴 합니다만, 이렇게 하느님께서 제게 하고 계신 매일의 창조에 작게나마 협력해 봅니다. 

우리 모두의 작은 협력들이 모여 조금씩 바뀔 세상을 꿈꿔 봅니다.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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