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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4월 23-26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5월 성모성월에 가족과 함께 묵주기도”

교종, 전 세계 신자들에게 촉구 서한 발표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에 세계 모든 신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특히 5월 성모성월 한 달 동안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촉구했다. 교종은 5월 성모성월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교회의 오래된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메시지 내용.

5월 성모성월 한 달 동안 가족과 함께 집에서 묵주기도 바치는 것은 교회의 오래된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제한으로 우리는 ‘가정기도’를 영적인 관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모든 사람에게 5월 한 달 동안 집에서 묵주기도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 기도는 매우 단순하며 인터넷에서 따라야 할 좋은 기도모델을 찾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저는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두 가지 새로운 기도를 제안할 것입니다. 저도 5월 한 달 동안 모든 사람과 영적으로 연합하여 기도를 선창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생각한다면 우리를 더욱 영적가족으로 단합시키고 이 시련의 시간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시련의 시간에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또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

교종, 4월26일 부활 제3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교종은 4월26일 부활 제3주일 부활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이날 복음인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 이야기에 초첨을 맞추었다. 교종은 이 이야기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끝나는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은 슬펐지만 그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주님이 옆에서 걷고 계셨고 돌아오는 여정에서는 더 이상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가까이에서 느꼈기 때문에 기뻐했다고 말했다. 

가르침 내용.

제자들의 ‘두 가지 다른 길’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에도 두 개의 반대 방향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 전환점이 있습니다. 즉 if에서 yes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약‘에서 ’확신‘으로 이동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이 우리를 해방하셨다면”, “만일 하느님께서 저의 말을 들으셨다면”, “내가 원했던 대로 인생이 이루어졌다면”, “내가 이것 또는 저것을 가지고 있다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첫 부활절 저녁 제자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로 넘어갑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이러한 변화는 예수님을 만나서 일어났습니다. 우리들도 각자 자신들 가정에서 취할 수 있는 3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 마음을 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항상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가는 방향이 되었습니다. 내가 아닌 하느님의 길을 선택합시다. 우리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오르막길, 예수님과 마주칠 수 없는 밤이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교종, 4월24일 부활 제3주일 미사 강론

프란치시코 교종은 4월24일 부활 제3주일 미사지향을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헌했다.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거행된 미사에서 교종은 예수님께 코로나 팬데믹으로 슬픔과 고통과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며 예수님께서 언제나 이들과 가까이 계시고 위로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교종은 강론에서 이날 복음(루카 24,13-35)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동행하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다. 

강론 내용.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게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들과 대화하신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성취해야 할 영혼의 갈증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결국 우리는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추구하는 많은 잘못된 길을 선택합니다. 이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불만족의 씨앗’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갈증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목마르십니다. 동시에 하느님은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지상에 보내셔서 이 갈증에 가까워지고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개인적인 상황, 느리게 움직이거나, 또는 준비된 태도까지 존중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참을성 있게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권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말을 듣고 우리가 스스로 잘 이해하면서 불만에 대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다리십니다. 주님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첫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불만족이 얼마나 깊은지 보기 위해 더 멀리 가시는 척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만족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은혜의 삶과 충만함이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무슨 일이냐?”고 계속 질문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교리교육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임재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여행 전체를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의심의 어둠 속에서, 심지어 죄의 끔찍한 어둠에서도 예수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고통 ​​속에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동행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매일 그분을 만나는 은혜, 그분이 매 순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순례자 길을 걷는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이십니다.

 

“삶의 증거로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교종, 4월25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5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의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미사를 시작하기 전 이들을 기억하면서 “그분들이 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입니다. 그분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고통과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교종은 이날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을 맞아 성인은 성실하고 본질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마르 16,15-20)에서 예수님께서는 지상생활을 마치신 후 하느님 아버지께로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15절)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자라나서 다른 사람에게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전달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삶의 증거를 통해 전해져야 합니다. 유럽 도시에서 일하는 사제가 회교도들 사이에서 많은 영지주의와 믿음의 부족을 호소합니다. 이것은 선교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증거를 통해 전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나 가톨릭 신분을 지정하는 신분증은 단순한 데이터이며 문화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게 합니다. 조용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단지 먼 땅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뛰쳐나가 사회적으로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축구팀이나 자선단체에서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처럼 단순한 개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전염은 성령이 사람들에게 행동하실 수 있도록 증거와 봉사를 통해 하느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봉사는 삶의 방식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이교도처럼 산다면 아무도 확신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신 내가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 사람들이 끌리게 되며 이것이 증거입니다.

폴란드의 한 대학생이 무신론자 친구들을 설득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는 당신의 삶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당신은 왜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로 설득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는 첫 번째 독서(베드로 5,5-14)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5절) 교회역사와 운동과 단체에는 이교도를 개종시키려다 실패하게 된 많은 남녀가 있습니다.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증거하기 위해 나가면 결실을 맺고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증하십니다. 이데올로기 전파에는 교사가 있을 것이지만 믿음의 전파에는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동반하실 것입니다.

 

”사목자들의 힘은 봉사에서 나옵니다”

교종, 4월2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학교 문이 닫힌 교사와 학생들을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미사를 시작하면서 인터넷과 기타 디지털 방식으로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며,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교종의 이날 강론은 요한복음(6,1-15)의 ‘오병이어’ 기적사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5절) 하신 물음은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필립보가 예수님이 이루려고 하시는 것을 아는지 시험하신 것입니다.(6절 참조) 이 장면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계획에서 벗어날 경우 그들을 제지하면서 가르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제자들을 하느님 백성의 목자가 되도록 성장시키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선호했던 것 중 하나는 구원의 보편성 상징으로 군중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군중들이 주님께 가까이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이 쉴 수 있는 날이 망가졌음에도 말씀을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님께서는 목자의 마음으로 사람들과 친밀감을 갖고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섬기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이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빵과 물고기를 가진 어린아이를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 백성들과 가까이 하는 목가적인 행동을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항상 구체적인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목자들은 늘 이런 것들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모든 사목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백성이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그들에게 위로를 주십시오. 길을 잃었습니까? 안내해 주십시오. 사목자들의 힘은 봉사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밖의 다른 힘은 없습니다. 다른 힘을 갖고 실수를 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직분은 망가집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모든 사목자에게 하느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까이 오도록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를 위해 기도하신다”

교종, 4월23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3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전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착취하여 이익을 챙기는 고리대금업자들 회개를 위한 지향으로 봉헌했다. 교종은 미사시작 전 이 유행병의 영향으로 많은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헤매는 상황에서 불행하게도 부도덕하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신은 일하지 않으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가는 이들은 또 다른 사회적 유행성 바이러스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강론에서 이날 제1독서(사도행전 5,27-33)에 나타난 베드로 사도의 용기에 대해 설명했다. 

강론 내용.

오늘 사도행전 말씀은 사도들이 산헤드린 앞에 끌려와 심문받을 때 대제사장은 그들에게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28절)라고 질책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 특히 베드로가 ‘용감하고 담대하게’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29절) 하고 외쳤습니다. 그전까지 베드로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겁쟁이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베드로는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라고 밝힙니다. 물론 베드로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더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하여 타협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용기와 담대함으로 증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많은 교회 지도자는 ‘성스러운 교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타협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기로 결심한 베드로의 모습을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됩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용기와 담대함의 힘은 어디에서 왔습니까?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러나 너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도록 기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처럼 우리 모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은혜를 청하는 기도할 뿐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에게 상처를 보여 주신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겁쟁이에서 성령의 선물을 가진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는 예수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우리 각자를 위한 기도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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