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오늘은 ‘319일 차’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한국에서 ‘가장 근사한 동네’라고 외신이 소개한 강남에서 그것도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 앞 25미터 높이의 교통 폐회로티브이(CCTV) 철탑 위에서 한 노동자가 살기 위해 버티고 있는 숫자입니다. 그의 이름은 ‘김용희’입니다.
그가 고공을 선택한 것은 노동조합 때문입니다. 그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공장에 입사한 직후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때문에 정체불명 괴한의 피습을 당하기도 했고, 삼성 간부들에게 납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듯이 그런 폭력과 탄압을 겪고 난 뒤 오히려 노동조합에 대한 그의 의지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한국은 노동조합을 하면 죽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그랬고,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그랬고, 쌍용자동차가 그랬습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무자비한 자본에 대항해서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을 선택했습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고공 농성 309일이 그랬고, 파인텍지회 굴뚝 위 고공 농성 426일 그랬고, 한국에서 가장 긴 투쟁의 이름인 콜트 콜텍이 그랬습니다.
노동자가 살기 위해서 길도 없는 하늘 위 마지막 고공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살기 위해서 죽자고 올라가는 마지막 벼랑 끝 선택입니다. 그러나 자본은 늘어가는 고공 위의 숫자에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삼성 재벌의 ‘무노조경영’이 만들어 놓은 비인간적 노동관 때문입니다. 노동조합 때문에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노동자가 노동운동을 한다는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철저하게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혐오까지 뒤집어씌우는 기업이 한국이 자랑하는 삼성입니다.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서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보았다는 김용희 씨의 마지막 선택은 고공이었습니다. 그의 정년을 앞둔 2019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하는 319일 아침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극한의 고공 위에서 김용희 씨의 요구사항은 삼성재벌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삼성계열사 명예복직과 해고 기간의 임금 배상 등입니다. 그를 진단한 의사들은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삼성은 김용희 씨를 인간이 아니라 바이러스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만국의 노동자들을 바이러스로 생각하는 기업이 삼성입니다. 자본이 말하는 바이러스의 노동력 때문에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모순의 집합체가 삼성입니다. 그 비인간적 노동관 때문에 만국의 노동자들은 삼성으로 달려와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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