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십자가, 부활. (이미지 출처 = Pexels)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 닐숨 박춘식

 

 

이 산 저 산을 보며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재의 수요일이 달력에서 사라졌습니다

잿더미에 참회의 씨앗을 기도로 심지 못하여

이 산 저 산을 보며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부활을 맞이하는 때밀이도 할 수 없고

십자가를 앞세워 형제들과 14처 길도 밟지 못하여

이 산 저 산을 보며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미사를 40일 내내 올리지 못하는 동안

사순절이 까마득히 지워지는 아픔을 참느라고

이 산 저 산을 보며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성주간의 장엄한 전례도 들리지 않고

골고타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도 안 보입니다

어디 가야만 주님을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습니까

 

이 산 저 산을 보며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구약성서, 예레미야 9.9)

 

 

<출처> 닐숨 박춘식의 미발표 시(2020년 4월 13일 월요일)

 

설마하니 부활 대축일에는 성당 미사에 갈 수 있겠지 했는데, 전염병으로 갈 수 없게 되어 마음이 슬프고 아픕니다. 로마의 교종은 눈물 흘리며 홀로 미사 올리시리라 여깁니다. 몇 해 뒤에도 부활미사를 성당에서 올리지 못하는 일이 또 있으리라 여기는데, 갈수록 사람들의 욕심이 강해지면서 동식물을 마구 죽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파괴로 지구가 화를 크게 내는 일인데, 그냥 천벌이라고 넘기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사람들이 지구를 마구 망가뜨리니까 지구가 반격에 나서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자주 일어나리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낙타는 인내심이 강하고 사람들을 가까이 돕는 아주 고마운 가축인데, 마구 때리고 거칠게 일을 많이 시키면 사막에서 주인을 물어 죽인다는, 어느 베두인의 말을 티브이에서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유럽 어느 나라의 전염병 보고대(報告臺)에 ‘STAY HOME THIS EASTER’라는 글귀가 먹먹하게 보였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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