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젊은이들이여. 희망의 증인이 되시오”

교종, 성지 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인 4월5일 오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이날 전례인 성지축복과 행렬을 거행한 후 성지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뒤이은 삼종기도 가르침을 통해 특히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했다. 4월5일은 마침 ‘교구 세계 청소년의 날’이기도 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기념식은 11월22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연기되었다. 이날 지난 2019년 세계 청소년의 날 대회가 열린 파나마 젊은이들로부터 2022년 차기 대회가 열리는 스페인 리스본의 청소년들에게 대회 십자가를 넘겨줄 예정이었다. 교종은 이날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청소년들을 격려하는 한편 코로나 사태를 맞아 병든 가족과 희생적으로 그들을 돌보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삼종기도 가르침 내용.

오늘은 세계 각 교구가 기념하는 ‘교구 세계 청소년의 날’입니다. 이 중요한 행사가 이번 코로나 전염병으로 연기되어 11월22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열릴 것입니다. 그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 저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키우고 관대함으로 이 어려운 순간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연대를 키울 것을 간절히 권고합니다. 또 내일 4월6일은 유엔 ‘국제개발 및 평화운동의 날’입니다. 이 시기에 많은 스포츠 경기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투쟁과, 팀워크, 형제애라는 최고의 스포츠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평화와 발전을 위한 스포츠를 시작합시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한 거룩한 수난과 죽음과 부활하심의 여정을 시작하신 날입니다. 전례에 참석할 수 없는 모든 신자는 SNS를 이용해 각자 집에서 함께 기도하도록 초대합니다. 특히 오늘 우리는 병든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희생적으로 그들을 돌보는 모든 사람과 영적으로 가깝게 유지합시다. 유월절 믿음에 비추어 돌아가신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기도 안에 간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우리가 희망을 유지하고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따라 부활의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을 기도드립니다.

 

“사랑과 봉사는 구원받는 생명의 길“

교종,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5일 오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헌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강론을 통해 사랑과 봉사의 정신에 대해 강조했다. 이날 미사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소수의 사제들과 신자들이 참석했지만 인터넷과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강론 내용.

오늘 두 번째 독서(필립비 2,6-11)에서 사도 바오로는 필립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7절)라고 예수님이 종의 형태를 취하신 것으로 묘사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우리를 오늘 이 거룩한 날로 인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스스로 종의 신분을 택하시어 우리를 섬깁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예수님은 스스로 우리를 자유롭게 섬기기로 선택하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먼저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그분의 생명을 주심으로써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분은 종의 겸손과 인내와 순종과 순전히 사랑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 즉, 배신과 버림을 경험하시면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첫째 그분을 팔아넘긴 제자와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한 제자에 의해 배신당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호산나를 불렀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셨습니다. 그들은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습니다.(마태 26,23참조) 우리 모두 인생에서 배신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인생을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실망을 불러일으키는 배신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면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거짓과 위선 및 이중성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결백한지,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일어나기가 얼마나 힘들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섬기고 우리의 불신을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를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낙심하지 않으면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보면서 그분의 포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도망쳤지만 하느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위해 남아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황폐와 최대한의 포기를 경험하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봉사하고 우리와 항상 가까워지시려고 이 모든 황폐함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많은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거짓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또한 너무나 많은 희망에도 직면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무게를 두는 포기의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 사랑에 당신의 마음을 열어라. 당신을 지지하는 하느님의 위로를 느낄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도록 이끕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은 우리가 심각한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덜 중요한 일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이끕니다. 이 거룩한 날에 우리는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과 가장 궁핍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기도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봉사의 길은 우리가 구원받고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예”라고 말해야 합니다. 

오늘은 세계 가톨릭 청소년의 날 선포 35주년입니다. 그동안 이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은 유명하고 부자이며 성공한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각자 자신의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을 깨우쳐 당신의 목숨을 바치십시오.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생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인생은 우리가 스스로를 나눠 줄 때만 받는 선물이며,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아무리해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것처럼 “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창의성으로 고립을 극복하자”

교종, 성 금요일 영상 메시지 발표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해 성주간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낼 준비를 위한 "오늘 저녁 나는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당신의 집에 들어갈 기회가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2020년 성주간 금요일 영상 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저는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 집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허용한다면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에 잠시 여러분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는 여러분 가족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외출하거나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일상의 삶을 살 수 없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생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모든 가족,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아프거나 불행히도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종종 혼자 있는 이 순간에 직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매우 소중한 노인들을 생각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유행병을 치료하거나 사회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보장하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관대함을 알고 있습니다. 매일 매 시간마다 많은 영웅을 봅니다! 많은 사람이 재정문제에 봉착해 있으며 일과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이 가중되는 교도소 수감자들도 생각합니다. 특히 자신을 보호할 집이 없는 노숙자들을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매우 어려운 시간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친밀감과 애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합시다.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웁시다. 전화나 SNS를 통해 가장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봅시다. 이탈리아와 세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합시다. 우리가 고립되어 있더라도 생각과 정신은 사랑의 창의성으로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일들입니다. '사랑의 창의성. 이것이 오늘날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메시지를 나타내고 요약하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성주간을 지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도시의 침묵 속에 부활절 복음이 울려 퍼질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고린 5,15)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인생은 죽음을 정복했습니다. 이 파스카 신앙은 우리의 희망을 키워 줍니다. 오늘 저녁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더 좋은 희망의 시간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악과 전염병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희망은 희망입니다. 희망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인내로 서로 곁에서 더 좋은 시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아이들, 노인들을 향한 부드러움을 표현하십시오. 저 또한 그들에게 가까이 있고 기도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곧 우리 모두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좋은 저녁 되세요. 곧 뵙겠습니다!

 

“우리 안의 유혹과 싸워 이깁시다”

교종, 4월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4일 토요일 아침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기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강론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이 혼란스런 시기에 선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상황을 이용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며, 유혹의 과정과 이를 극복하는 투쟁에 대해 설명했다. 

강론 내용.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바로 투명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모든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요한 11,45-58)에는 사람들에게 ‘유혹’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줍니다. 유혹은 작은 불안감에서 시작됩니다. 복음에 나오는 대제사장의 경우 세례자 요한에서부터 불안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다 요한이 지적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과 기적을 행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고 따랐습니다. 또 예수님은 항상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테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때때로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질문은 남편이 일곱 명인 여인의 경우와 같이 그분이 답변하는 지혜에 놀랐습니다.(마태 22,23-34 참조) 또 간음에 걸린 여인의 경우처럼 그들은 때때로 굴욕을 당했습니다.(요한 8,1-11)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다른 사람들은 당국에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군인들을 보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시도합니다. 마침내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없애기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토의를 시작합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47-48절)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는 있지만 전체가 진실은 아닙니다. 자신들의 유혹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지도자들에게 있었던 과정이 지금 어떻게 우리에게 유혹이 작용하는지 보여 주는 모델입니다. 그것은 ‘작은 욕망 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유혹은 더 강렬해지고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기 시작합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을 정당화시킵니다. 내부적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정당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해독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이 유혹의 과정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유혹은 우리의 마음을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악마는 보통 우리와 함께 이 과정을 동행합니다. 우리가 죄에 처해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가서 주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어떻게 내가 이 문제에 빠졌는가? 어떻게 이 과정이 내 영혼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자랐는가? 내가 누구를 감염시켰는가? 결국 넘어지기 않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 했는가?” 예수님 시대에 일어났던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날 유혹의 모범적 사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이러한 내면의 인식을 갖게 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구속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

교종, 4월3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3일 오전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빈곤, 실업, 기아를 포함한 모든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 우리를 돕고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봉헌했다. 또 교종은 이날 강론에서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슬픔’(성모칠고)에 대해 설명하면서 구속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강론 내용.

저는 오늘 성모님의 슬픔에 대해 생각하면서 성모님이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생애 동안 일곱 가지의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태어난 지 40일 만에 들은 시메온의 예언은 그녀의 마음을 꿰뚫는 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고통과 슬픔은 성모마리아가 아드님 예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피난길에 오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소년 예수님을 길에서 잃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을 때까지의 3일 동안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또 성모님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고통과 슬픔을 십자가를 지시고 콜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과의 만남과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시면서 겪으십니다. 또 성모님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의 고통과 슬픔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져 품에 안으실 때와 무덤에 장사 지내실 때 당하십니다. 

저는 저녁에 삼종기도를 바치면서 이 일곱 가지 성모님의 슬픔을 교회의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결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성모님은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시기로 동의하시고 예수님의 제자처럼 동반하셨습니다. 복음은 성모님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친구들인 경건한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기 전 성모님을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삼아 주셨습니다. 즉 성모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떤 직분도 빼앗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선물과 어머니를 동반해야 할 의무를 받았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구속자, 또는 공동 구속자로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구속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오직 ‘예’ 하고 응답해야”

교종, 4월2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2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사회 안에 너무나 많은 숨겨진 문제가 드러났다며 특히 더욱 큰 고통과 두려움에 처한 노숙자들과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봉헌했다. 

강론 내용.

이번 코로나 전염병의 슬픔은 우리 사회 안에 너무나 많은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일간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시의 많은 노숙자가 주차장에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캘커타의 성 데레사 수녀님과 같이 사회의 틈바구니에 숨어 있는 이들을 돌보는 많은 진실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의 길을 밟을 때 기쁜 마음으로 성약에 충실해야 함을 의식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요한 8,51-59)은 그리스도는 새 계약의 중재자이며, 따라서 그분의 죽음을 통해 부름받은 사람들은 약속된 영원한 상속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결코 실망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제1독서(창세기 17,3-9)에서는 아브라함의 모습과 하느님과의 계약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새롭게 창조하시고 거룩한 성약을 맺으라고 요청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었기 때문에 성약에 충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세례증명서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증명서를 보여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례증명서는 종이일 뿐입니다. 주님의 선택에 “예”라고 응답하고 당신이 주님께 약속하신 것을 따르고 하느님과의 언약을 지켜야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고 약속을 기대하지 않고 언약을 잊어버리는 이 세 가지를 단호히 뿌리쳐야 합니다. 주님은 충실한 사람들에게 항상 그분의 성약을 기억하시며 그분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할 때 잊어버리십니다. 용서하신 후에는 그 죄를 기억하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의 신실함은 기억하십니다. 하느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신실함. 아브라함에게 충실한 것은 그가 한 약속의 기억입니다. 우리 각자는 선택된 사람이며, 하느님 약속에 대한 희망과 결실의 표시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4절)라고 하시면서 또한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 실존에 관해 우리에게 주신 계시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약속을 기뻐하면서 거룩한 계약을 지키는 일에 충실함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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