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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1년: 국회의 과제, 종교의 역할[성당 페미언니와 성·사랑·몸 수업]

국회의원 선거가 약 열흘 뒤로 다가왔다. 온 세계가 코로나19와 싸우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21대 국회가 구성되는 대로 집중력 있게 성과를 내야 할 안건들이 쌓여 있다. 1년 전 위헌성을 확인받은 낙태죄를 비범죄화 할 새로운 법체계 마련도 그중 하나다. 연말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당초 헌법재판소의 주문 취지에 맞는 법과 정책이 통과돼야 할 것이다.

임신중지를 죄로 다스리는지의 여부는 그 사회 여성인권의 수준을 보여 주는 핵심척도가 된다. 남성과 달리 여성의 인생은 임신, 출산, 양육으로 180도 달라지고, 현재 어떤 피임법도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한 여성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국가에 종속된 존재임을 증명하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생명에 대한 평소의 견해나 공중도덕을 심문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기치 않은 많은 사건이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처럼, 임신능력을 가진 사람 역시 맞닥뜨린 어려운 문제를 최선의 노력을 다해 풀어 나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정들이 이뤄질 수도 있다.

헌재 판결문에 적혀 있었듯,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임신, 출산으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겪고 있으며, “육아에 있어서도 남성에 비해 더 큰 부담”을 지는 경우가 많다. “여성에게 자녀의 양육은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끊임없는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노력을 요구하는 일”인데, 이는 “성차별적인 관습, 가부장적 문화, 열악한 보육여건 등의 사회적 문제가 가세하여 더욱 가중”되어 왔다.1) 따라서 우리 모두가 의지를 갖고 힘을 모아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은 이러한 것들이 되어야 한다.

새로 당선될 국민의 대표들에게 바란다. 모든 존재의 낳는 문제가 차별 없이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틀로서의 기초법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여성의 몸을 인구조절의 도구로 삼아 온 과거 패러다임으로 다시는 돌아가선 안 된다. 전인적 가치와 정확한 의료정보를 통합한 성교육이 전 세대에 뿌리를 내리고,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가족계획을 수립하여 이행해 나가는 데 필요한 수단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달라.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 마련도 중요하다.

“어떤 여성도 낙태하고 싶지 않아, 이 전제를 가지고 가는 것이 정말 중요”

낙태죄 폐지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한국 가톨릭은 그동안의 운동방식이 사려 깊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판결 이전에는 신자들에게 100만 서명을 진행하였고, 판결 이후에는 일부 국회의원을 만나 헌재의 결정을 거스르는 입법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2) 자극적으로 과장된 후기 낙태아 포스터를 길거리에 전시하면서, 여성들의 자궁 모습을 공개적으로 소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은 포함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러한 지난 행보들이 많은 신자에게 실망감과 상처를 안겨 주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임신중지 경험여성 22명을 만나 서로 다른 사연 22개를 듣고 정리한 사례집에서 특별히 강조한 부분을 교회에 공유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어떤 여성도 낙태하고 싶은 여성은 없습니다. 몸의 고통뿐만 아니라 그 수술 자체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정서적 영향력까지 생각한다면 누구도 원할 수 없습니다. 이 전제를 갖고 가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떤 집단에 대한 사회적 신뢰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신뢰는 혐오와 반대말입니다.”3)

피임, 임신중지, 임신유지, 출산, 양육과정 등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체험되는 인생사건들에 대하여 다양한 삶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자세로의 전환을 교회는 꼭 보여 주어야 한다.

가톨릭의 정신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타인에게 연대하는 것

프랑스의 역사학자 플로랑스 몽테르노.(1948-)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프랑스의 원로 역사학자 플로랑스 몽테르노(Florence Montreynaud, 1948-)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과의 만남에서, 1970년대에 특별히 임신중지권 합법화 운동에 앞장선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이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대답을 했다.4) 그에 따르면 “가톨릭의 정신은 자신이 문제 없는 삶을 영위한다 하더라도, 다른 삶을 사는 타인에게 연대하는 것”이므로, 백인 중산층 여성인 자신이 누리는 것을 모든 여성이 보편적(catholic)으로 공유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임신으로 인한 갈등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프랑스의 낙태 합법화 이후에도 계속 투쟁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엄격한 낙태금지 제도와 인식 때문에 많은 여성이 죽거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받아 온 곳은 폴란드,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필리핀 등이었다. 처지, 맥락, 상황이 다른 여성들에 대한 연대와 자비의 정신이 가톨릭 국가들에서 부족했다면 근본적인 반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Catholic For Choice(CFC, 선택을 옹호하는 가톨릭)5)라는 NGO단체가 있다. 성, 결혼, 피임, 가정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에서 바티칸의 명령에 동의하지 않는 가장 많은 수의 가톨릭 신자 국제 모임이다. 1973년에 설립되어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수 차례의 유엔 회의에 참가해 왔다. CFC의 사명은 여성과 남성의 삶에 대한 도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긍정하며, 정의에 바탕을 둔 성윤리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미국과 세계의 모든 사람이 저비용의 안전한 재생산 건강관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 정책과 가톨릭 교육을 향해 캠페인, 출판활동, 언론홍보 등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의 강력한 로비활동은 전 세계 재생산 의료서비스의 이용가능성을 제한하고 있고, 정부가 운영하는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여성들과 가족들의 삶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이에 CFC가 주관한 ‘임신중지 공공기금 마련 캠페인’에 참여한 린다 핀토(Linda Pinto, 전 프란치스칸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 주(펜실베니아)와 연방의회 의원들에게 이제는 옳은 일을 할 때라고 말한다. 낙태를 위한 공공 기금은 가톨릭 사회정의의 가치다.” 이 캠페인은 여성들이 재정상태, 거주지역, 신앙유무에 상관없이 안전한 재생산 선택을 실현할 수 있기를 원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CFC(Catholic For Choice)가 주관한 ‘임신중지 공공기금 마련 캠페인’에 참여한, 전 프란치스칸 수녀 린다 핀토.(미국, 펜실베니아, 쇼홀라) (사진 출처 = www.ingoodfaith.us)

종교 본연의 역할은 무엇이 돼야 할까?

나는 낙태라는 고통스런 체험을 한 여성들의 영성치유에 종교가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임신중절 당사자의 경험을 다룬 논문에서 여성학 연구자 지승경은, 여성들의 애도에 대한 욕구가 태아에 대한 것뿐 아니라 여성 자신의 삶과, 실현되지 못한 모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태아와의 관계에서 권리행사자의 ‘당당함’이라는 감정과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은 태아에 대해서 모성의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많으며, 실현되지 못한 모성은 이후 낙태아 천도재, 종교적 기도와 의례, 낙태한 날을 비밀번호로 이용하기 등의 일상적인 기념의식, 아기 모습의 동자상을 안고 어르는 유사모성행위를 하는 방식으로 실행된다.”6)

이 같은 연구결과는 가톨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태아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여성들의 삶이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피정과 프로그램 안에서 낙태수술 장면을 편집한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아이의 목소리로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 주는 행위들이 이뤄진다면 앞으로 교회가 가야 할 길은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전염병 시국을 겪으며 성당에 가지도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순을 보내고 있다. 다시 만났을 때 교회 공동체가 삶에 지친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곳, 위로와 희망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 환대와 사랑이 흐르는 공간으로 거듭나려면 이 시간을 잘 묵상하며 지난 구습들과도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번 부활절 이후, 교회의 생명에 대한 태도가 모든 존재를 향해 넓어지고 섬세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1) 헌법재판소, '[2017헌바127]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결정문(2019.4.11.)', p.14.

2) 이소영 기자, '[낙태종식 기획]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12·끝): 생명수호 위한 가톨릭 신자 국회의원 역할은?', 〈가톨릭신문〉, 2019.12.15.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23652)

3) 한국여성민우회,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여성의 경험으로 세상과 공명하다", 2011, p.113.

4) 우유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유럽 낙태 여행", 봄알람, 2018, pp.47-48.

5) ‘Catholics For Choice’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atholicsforchoice.org/)

6) 지승경, ''책임과 배려'의 관점에서 본 비혼 여성의 임신중절 의미구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논문, 2012, p.13.

강석주(카타리나)
서울대 종교학, 여성학 전공. ‘페미니즘 시대, 실천적 종교연구를 위한 시론’, ‘낙태죄 판결의 의미와 가톨릭의 과제’, ‘아일랜드 국민들의 정의로운 선택’ 등을 썼다. 현재 ‘여성 종교인의 임신중지 체험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를 주제로 박사논문 준비 중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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