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생명의 복음은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

교종 3월25일 수요 교리교육, 회칙 '생명의 복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5일 수요 일반 교리교육 시간을 통해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성모 영보 대축일)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25주년을 맞아 회칙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가르침 내용.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5년 전 오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인간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에 관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을 발표하셨습니다. 생명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지의 핵심으로 인간가족을 위협하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의 현재 상황에 특정한 방식으로 울림을 줍니다. 특히 오늘은 아픈 사람들, 노인들, 가난한 사람, 외로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의 조용한 증거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들은 마치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후 나이 많은 친척 엘리자벳을 방문한 마리아처럼 생명의 복음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려하고 보호해야 하는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태아, 말기환자, 난민과 버림받은 사람들의 진정한 살과 피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 삶에 대한 모든 위협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로 다른 사람들과 연대와 형제애가 필요합니다. 오늘 저는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인간의 삶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라"는 호소를 새롭게 합니다! 오직 이런 식으로만 정의, 발전, 자유, 평화 및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향한 사순절 여정을 계속하면서 저는 영어를 사용하는 충실한 신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에 감사와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 모두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힘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바라며 축복을 드립니다.

 

“주님의 기도를 다 함께 바칩시다”

교종, 3월25일 낮 삼종기도 후 세계 신자들과 합송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코로나 전염병이 유발한 세계적 위기 속에서 다 함께 ‘주님의 기도를 합송하자고 초대했다. 이날 교종과 함께 하는 주님의 기도는 바티칸 도서실에서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초대 말씀.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함께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신실한 자녀로서 우리 모두는 마음을 드높여 아버지께로 향합니다. 우리는 매일 여러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류를 위한 자비를 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교회와 지역사회, 모든 전통, 모든 연령, 언어, 국가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병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의료종사자와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위해, 또 정부당국과 법 집행기관 및 자원 봉사자와 지역사회 사목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모 마리아의 자궁에서 일어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을 축하합니다. 그녀의 신뢰와 겸손이 ’보라 천주의 어린양‘을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맡깁니다. 우리 모두 한마음과 영혼으로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성모님의 수태는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교종, 3월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이날 복음구절(루카 1,26-38)을 되풀이 읽으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례에 앞서 교종은 ’성 빈센트 드 폴 자선의 딸‘ 수녀들의 서원 갱신식을 거행했다. 이들 수녀원은 지난 98년 동안 산타 마르타 약국에서 봉사해 왔다. 교종은 “저는 98년 동안 이곳에서 해 왔듯이 항상 아픈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온 성 빈센트 드 폴 수녀들과 이 순간 코로나 바이러스 병자들을 돌보며 목숨을 걸고 목숨을 바치는 모든 수녀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강론 요지.

우리는 미스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아마 루카 사도도 성모님이 그에게 말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을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루카를 통해 이 신비를 이야기한 성모 마리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신비 앞에 서 있습니다. 아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 구절을 다시 읽고 그것을 이야기한 것은 성모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역시 신비입니다.

 

“감사함 모르는 어리석음의 죄에 빠지지 말자”

교종, 3월24일 희생된 코로나19 의료진을 위해 미사 봉헌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4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들을 돌보다 희생된 의료진들을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미사 시작 전 “저는 요즘 많은 의사와 사제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간호사도 몇 명이나 희생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환자들을 돌보다 병에 감염되어 희생되었습니다. 오늘 그분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데 우리에게 영웅들의 모범을 보여 준 그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론 내용.

오늘 제1독서(에스겔 47,1-9.12)와 복음(요한 5,1-16)에서 제시된 ‘물’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오늘 독서들은 구원의 수단으로 제시된 ‘물’에 대해 말합니다. 이 물들은 생명을 가져오고 ‘바다의 물’을 치유하여 '새로운 물'로 변화시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비된 사람과 마주친 곳은 '벳자타' 못 물웅덩이 옆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신체가 마비되어 38년 동안 물 옆에서 치유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만납니다. 이는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38년! 너무 길지 않습니까. 누군가 그를 돕기 위해 조직적인 일을 했다면 나을 수 있었지만 그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오랫동안 기다린 남자의 위화감을 생각합니다. 또 그 사람의 반응도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그는 “예”라고 대답하는 대신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고 불평합니다. 또 예수님께 치유 받은 후에도 기쁨을 표시하기 위해 뛰어다니며 온 세상에 전하는 대신 성전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도 감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당국에 알리기 위해 떠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의 마음과 영혼도 병들었습니다. 그는 비관, 슬픔, 어리석음, 무관심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 남자의 병입니다. 예수님의 치료에 대한 그의 반응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평입니다. 38년 동안 치료하는 노력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살고 불평하는 죄'입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자신의 삶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불평하면서 숨을 쉽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과 같은 '기쁨과 결단력'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대다수 그리스도인도 이 어리석음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일을 할 수 없지만 모든 것에 대해 불평만 합니다. 미성숙은 독입니다. 그것은 살 수 없는 영혼을 둘러싼 안개입니다. 또한 자주 맛보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약물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슬픔에 중독되고, 어리석음에 중독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상당히 습관적인 죄입니다. 슬픔과 어리석음은 우울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 어리석음, 슬픔과 우울의 나쁜 정신 때문에 회색의 삶이 됩니다. 그러나 세례의 물은 우리를 새롭게 만듭니다. 

오늘 각자 요한 복음 5장을 다시 읽도록 권고합니다. 물, 우리의 힘, 삶의 상징인 물,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물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어리석음의 ‘중립적’ 죄에 빠질 위험이 있다면, 검은 색이든 흰색도 아닌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악마가 우리의 영적 삶과 개인적인 삶을 익사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죄입니다. 이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악한지 이해하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과 인내와 용기는 기도의 필수조건”

교종, 3월23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3월23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사태로 재정적 문제에 직면한 가족들을 위해 봉헌했다. 교종은 강론에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믿음과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 미사는 유행성 전염병으로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재정적 어려움은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데는 믿음과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요한 4,43-54)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가나에 있는 왕실관리 아들을 치유하신 사화가 나옵니다. 그가 예수님께 아들을 고쳐 달라고 요청한 후 예수님은 그에게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48절)고 조금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을 지키지 않고 계속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49절)라고 보챕니다. 예수님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50절)라고 말하십니다. 관리는 그 말씀을 믿고 떠났습니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진정한 기도’의 첫째 조건은 믿음입니다. 많은 경우 기도는 입에서 나오는 것일 뿐 마음에서 우러나는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거나 약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남자가 어릴 적부터 악령에 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며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라고 청원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즉시 고쳐주셨습니다.(마르 9,17-27 참조)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믿음으로 기도합니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기도합니까?” 주님께서 여기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화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 기도할 때 이 점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의 두 번째 조건은 ‘인내’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는 데도 응답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거나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인내심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밤중 빵을 얻기 위해 이웃을 깨운 사람과 부당한 판사를 계속 졸라댄 과부의 예를 들어 우리에게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주님께서 당신이 요구하시는 것을 주실 것이므로 확신과 인내가 함께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기다리게 한다면 두드리고 두드리십시오. 결국 주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게 한다면 끈질기게 요청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용기 있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세 번째 조건입니다. “기도하는 데 용기가 필요합니까?” 누군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머무르려면 그렇습니다. 거의 이단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마치 우리가 주님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멸망시키길 원하셨을 때의 모세의 용기, 소돔의 구원을 협상할 때의 아브라함의 용기. “30명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20명이 있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용기 말입니다. 이러한 용기의 미덕은 사도적일 뿐만 아니라 기도에도 매우 필요합니다. 믿음과 인내와 용기 잊지 마십시오. 특히 오늘날에는 더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믿음, “주님께서 개입하실 수 있습니다.“ 인내와 용기, ”주님은 결코 속이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님은 결코 회피하지 않으십니다. 믿음과 인내와 용기는 기도의 필수조건입니다.

 

“성소에 필요한 고통, 감사, 격려. 찬양 강조”

5월3일 제 57회 세계 성소 주일 교종 메시지 내용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3일에 맞는 제 57회 세계 성소주일 메시지 내용을 미리 공개했다. 교종은 지난해 성소주일 메시지를 회상하면서 성소자들에 감사하고 독려하는 방법으로 고통, 감사, 격려, 찬양 등 네 가지 핵심 단어를 선택했다. 교종은 오늘날같이 갈릴리 바다에서 폭풍치는 밤에 예수님과 베드로의 놀라운 경험을 언급한 복음(마태 14,22-33)을 인용했다. 

메시지 내용.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다음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 안으로 가라고 재촉하시고 혼자 기도하시려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호수를 건너는 제자들의 이미지는 우리 삶의 여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배는 천천히 전진하고 안전한 피난처를 찾고 바다의 위험과 약속에 맞설 준비를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선장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배가 표류할 수 있고 신기루에 의해 혼란에 빠질 수 있으며, 등대가 아니라 어려움, 의심과 두려움의 폭풍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스승이신 나자렛 예수님을 따르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포기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도전적인 여정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성취를 찾는 방법은 우리가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결정 이상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높은 곳에서 온 전화에 대한 응답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대편 해안가에 있는 우리의 목적지를 지적하시고 우리에게 보트에 탑승할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를 부를 때 예수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어 우리를 동반하고 인도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불확실한 때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하고 심지어 급류를 걸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모든 소명은 주님의 사랑에서 태어나고, 우리가 마음으로 감사히 여길 때 우리의 소명을 발견하고 포용하는 데 성공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다를 향해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을 때, 먼저 그분을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그들을 안심시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제공하고자하는 두 번째 단어인 ‘격려’입니다. 종종 마음에 의심이 드는 확실한 ‘유령’이 우리 여행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삶의 안전한 해안을 떠나 결혼, 사목자, 봉헌생활과 같은 삶의 상태를 받아들이도록 부름을 받을 때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은 종종 불신의 유령에 의한 것입니다. “확실히 이 길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정말 올바른 길인가? 주님께서 정말 나에게 이것을 요구하시는 걸까?”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근본적인 삶의 선택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직면한 의문을 알고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우리를 안심시켜 줍니다. “두려워 말라!” 우리는 그분이 계시고 우리를 만나러 오실 것이며,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도 우리 편에 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를 새로운 직업의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내적 낙담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세 번째는 ‘피로감’입니다. 지난해 메시지에서 제가 ‘통증’으로 표현한 것을 올해는 ‘피로’라고 말씀드립니다. 모든 부름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른 우리의 소망과 열정은 성 베드로처럼 실패와 두려움과 공존합니다. 피로나 두려움이 우리를 가라앉힐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쁨과 열정으로 소명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열정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침내 배를 타실 때 바람이 죽고 파도가 잔잔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삶에서 혼란과 폭풍의 때에 주님께서 하실 수 있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폭풍의 사악하고 두려움과 체념의 세력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고 우리가 그분을 우리 삶의 동반자로 인정한다면 그분은 손을 뻗어 우리를 붙잡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공동체를 위한 성소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계속 장려해야 합니다. 충실한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 각자가 삶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하느님께 '예'라고 말할 용기를 찾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모든 피로를 극복하면서 그들의 삶에서 하느님과 형제자매와 전 세계에 찬양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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