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

봄날이 시작됨을 알리듯 따사로웠던 얼마 전 하루, 낙동강 강가를 따라 걸었습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고자 순례 길에 오른 신부님, 목사님, 스님, 교무님들과 함께 하룻길을 걸었습니다. 종교인들의 순례가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중순 무렵이었습니다. 무척이나 추웠던 순례의 시작 날, 한강의 발원지인 김포 애기 봉(峰)에는 운하로 위협받는 생명의 강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 종교인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기 위한 느리지만 소중한 순례의 시작이었습니다.


강과 공동체의 파괴

낙동 강가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매화 향 퍼지고, 새순의 연한 푸른빛에 가슴 설렜습니다. 그러나 설레임도 잠시 군 지자체에서 직영하는 골재 채취장을 지나며 곳곳에 파헤쳐진 강 모습과, 주변 공단에서 나오는 매캐한 냄새가 우리의 걸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 길 위에 앉아 점심을 먹고, 중부내륙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 낙동대교가 이어지는 강변길을 걸으며 지구 어머니의 살갗이, 속살이 아리게 벗겨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더 큰 아픔과 걱정은 이 지역 농민들에게 있었습니다. 이곳 농민들은 한결같이 물 걱정과 턱없이 오르는 땅값에 잠 못 이룬다고 합니다. 하우스 농사에 필요한 물은 대부분 낙동강 물을 이용하는데 대운하가 만들어지면 물이 부족해 걱정이고, 이 지역도 운하 개발 계획 때문에 벌써부터 땅값이 뛰어올라 큰 걱정이라고 합니다. 농민들 대부분은 자기 땅이 아니었고, 땅을 가진 사람들은 외지인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대운하가 지역 발전의 기틀이 되리라 말하지만, 결국 운하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농민과 그 공동체가 아니라 투기꾼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막막해집니다.

순례자들

어느덧 하루의 짧은 순례 길을 90년대 초 대구 위천공단이 만들어지려했던 그 곳, 약천 온천 앞 아스팔트 길 위에서 마무리합니다. 서로의 수고로움과 생명의 강에 대한 감사와 섬김의 마음을 모아 땅에 큰 절합니다. 이날 저는 이름 없는 순례자들을 만났습니다. “소박하고 절제된 삶의 행복”만이 우리의 대안이라 말씀하시던 비구스님. 쉬는 시간이면 강변 가까이 다가앉아 책을 읽던 이름 모를 순례자. 검게 탄 얼굴, 낡은 바랑, 많이 닳은 옷 한 벌로 천천히 걷던 한 어른의 뒷모습에서 생명의 강을 보았습니다. 그 너머 희망을 보았습니다.


샛강에 가자

이날 하루 순례 길을 떠나기 전에 순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 한편 읽었습니다.


옛 다리 건너 제비꽃, 종다리 같은 마음이라면
가문비나무 삭정이 되어
스무 날이고 서른 날이고 바람이나 키우는 마음이라면
그대 창가 목덜미 고운 어린 새 둥지나 되고 싶은 마음이라면
마음의 상처로도 다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라면
안개 속으로 다가가서 자막처럼 지우고 싶은 마음이라면
미닫이 닫고 용서하라 용서하라 울고 싶은 마음이라면......

-유재영 시인의 ‘샛강에 가자’


수 천 년을 흘러 우리네 기다림과 사랑, 상처와 용서를 담아 주던 강이 사라진다면 정말이지 슬플 것 같습니다. 삶이 힘들어 떠나고 싶을 때, 울고 싶어질 때 걸어 걸어 다가갈, 그리고 품어줄 어머니 강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맹주형 200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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