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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청소년의 출현[장예정의 휘청휘청: 흔들리는 모두에게]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정말 될까 싶었던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에 (부족하나마)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고 청소년도 투표장에 갈 수 있게 됐다. 

청소년, 정치가 금지된 이들

나는 청소년 때부터 뉴스가 재미있던 독특한 학생이었다. 아마도 친구들 눈에는 ‘우리랑 상관없는 일’에 관심 갖는 내가 특이해 보였을 것이다. 정치는 왜 청소년의 일이 아니었을까. ‘청소년’과 ‘정치’가 연관되는 단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2019년 12월 26일까지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권리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보통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의 선거법은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거법은 해도 되는, 아니 나열된 것만을 허락하는 매우 보수적인 구조다. 물론 이 같은 선거법이 부정선거의 부조리함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해 온 역사 속에서 발전했기 때문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부정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허락된 일만 해야 하는 선거법의 어조에서 선거권을 얻지 못한 이들의 입을 막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법의 허락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드디어 정치하는 청소년들이 출현했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스레 자신의 명함을 내밀던 후보자가 교복 입은 청소년은 쌩하니 지나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는데 그 정치인들은 아마도 지금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어떤 이들이 선거권 없는 사람인지 분간이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선거시기가 되면 없는 존재로 여겨지던 이들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2019년 12월 27일,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 표결 장면. ⓒ김현우

정치가 젊어지려면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현실은 20대가 투표를 하지 않아서 이 모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선거권 문제와 피선거권 문제가 함께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선거권을 부여하는 연령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연령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거권이 만 18세까지 내려가는 동안 피선거권 연령은 25세에 머물러 있다. 그마저도 대통령은 만 40세다. 선거권 없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관심을 소외시켰듯 피선거권 없는 20대 초중반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열망도 배제해 왔다. ‘청년정치’는 청년 스스로가 정치에 나설 때 쓰는 말보다는 청년수당, 청년배당, 청년주택 등 청년들을 위한 정책으로 더 많이 호명되었다.

이번 총선만큼은 이미지를 위한 청년 후보 공천의 수준에서 한 발 나아간 듯하다. 자연히 논의되는 청년정책도 ‘우리를 찍어 주면 이런 걸 해 주겠다’는 식의 시혜적 정책이 아니라 청년들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들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내용으로 풍성해졌다. 다양한 영역, 그리고 자신의 지역과 정당에서 차곡차곡 정치경험을 쌓아 온 청년 정치인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출사표를 던진 청년 정치인들의 탄생은 하루아침에 가능하게 된 것이 아니다. 관심 있는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고, 그 안에서 정치에 대한 나의 욕구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대변해 줄 정당을 찾아, 그곳에서 여러 정치 경험을 거쳐야 가능했던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겪어낸 이가 청년 후보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치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그렇다면 청소년 시기는 정치에 눈을 뜨기 딱 좋은 나이가 아닌가.

여전한 허락의 정치

선거관리위원회는 몇몇 교육청과 시민단체들이 정치하는 청소년의 시대를 맞아 학교에서 진행하려던 모의선거교육을 전면 불허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자체적인 모의선거교육을 진행하기도 하며 모의투표 결과를 본선거 이후에 발표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런데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교육을 대신하겠다는 이들에 대해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일정 나이에 이른 사람에게만 선거권, 피선거권을 부여하고 허락받은 이에게만 마이크를 잡을 권리와 홍보 피켓을 들 자격을 주는 이 허락의 정치는 정치개혁에 한 발짝 다가선 지금도 여전히 제자리인 듯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그 권력을 누구에게 위임할 것인지 결정하는 주권자의 가장 큰 의사표시가 투표다. 이제 막 투표권을 쟁취한 청소년들에게 정당, 후보자, 공약을 토론하고 실제 투표를 진행해 보는 살아 있는 교육을 공교육이 제공할 수 없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선거관리위원회와 교육당국이 나눌 고민은 학교라는 공간을 통하여 만날 수 없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참정권 교육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가여야 합당하지 않을까. 

핀란드에서 34세 총리가 등장하자 부럽다는 이야기 일색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 정치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청소년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선거연령이 더 낮아져야 한다.

장예정(소피아)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본당에서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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