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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사랑이 저만치 가네....[신학 오디세이아 2 - 박정은]

이번 미시시피 여행은 많은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늘 삼월이면 학생들과 공부한 사회정의 그리고 영성에 대한 현장 학습으로 미시시피의 오지 터트윌러(Tutwiler)로 가서 집을 지어 주고 왔다. 내가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던 해부터 한 여행이니까 올해로 12번째 미션이다. 그동안 이 미국 남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만난 꼬마들이 이제 커서 대학을 가고, 처음 만났을 때 갈 곳 없어 방황하던 열두 살 로렌조는 이젠 내가 데려간 학생들보다도 더 나이가 많아져 버렸다. 처음 그곳에 간 해 만난 5살 꼬마들이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번 여행 마지막 날 그녀들이 왔다. 마리안느는 백 넘버 14번을 달고 골을 넣은 비디오를 자랑스레 보여 주었으며, 예쁘장한 자밀은 미용사에서 선생님으로 바뀌었던 꿈이 이번에는 피부 미용사로 바뀌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서 미션으로 북적대던 이 마을도 잠잠해졌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머무는 임시 숙소에 와서 함께 놀아 달라고 졸라대던 꼬마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미션지에서 만났던 사랑들이 저만치 간다. 부디 행복하라고 힘껏 안아 주었다.

처음 미션 여행에서 친구된 꼬마들이 이젠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들의 내일은 밝은 것이길 소망한다. ⓒ박정은

이번에 나와 함께 현장 학습에 나선 학생들은 매주 진지하게 토론에 임했던 여학생들이었는데, 눈을 반짝이며, 피곤하다는 내색 없이 페인트칠을 하고, 가난 속에 무너져 내리는 집을 고치기 위해, 거침없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에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돌보지 못해 주저앉아 버린 집을 고치는 일은 계속되겠지만, 새로 집을 지어 주는 일은 거의 끝이 났다. 미국 전역에서 오는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로 지은 이 집들은 이제 30채를 넘었고, 더 이상은 공터가 없어 새로 집을 지을 수가 없다. 여전히 많은 땅을 소유한 지주가 땅을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미션은 이제 그렇게 끝나버렸다.

가난에 찢기어지고 부서진, 그래서 슬프고 막막한 이곳에 조그만 진료소를 짓고, 주민들과 벗하며 청춘을 바친 앤 수녀님도, 동네 아주머니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며, 공동체를 꾸려 가던 모린 수녀님도 삼십 년의 미션을 정리하고 이미 떠났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이 마을이 고요하다. 목화가 잘려진 텅 빈 들판 곁에 가난 속에 무너져 내리는 집들. 그리고 그 집 지붕에 누운 삼월의 저녁 햇살이 더욱 슬프다.

앤 수녀가 떠난 그해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면, 공동체를 건설하는 모린 수녀님이 떠나고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과의 역동에 무엇인가 변화가 시작된 것을 감지한 것이.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인 우리의 모든 스케줄을 알고 있었다. 그날도 예정대로 학생들과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누군가가 들어와서 학생들의 컴퓨터, 옷가지, 그리고 현금을 가지고 갔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편안하게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를 배우는 곳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열두 번째 미션여행에 나선 학생들. 그들은 누군가가 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준다며 불평 없이 일주일 동안 열심히 노동을 했다. ⓒ박정은

지난해 미션 때는 학생들의 집짓는 작업을 지도하는 작업반장이 학생들에게 가재 요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고선, 내게 육백 불(육십만 원가량)을 요구했다. 십 년을 넘게, 그는 한결같이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남부 사람 특유의 환대로 학생들은 누구나 그를 좋아했었는데, 이제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그는 그냥 그 동네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나는 그를 불러, 마음써 주어서 고맙지만 나에게 그런 예산이 없으니 그냥 가재를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아주 공손한 남부스타일로, “아닙니다요, 이미 요리를 했는데요.” 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럼 영수증을 정확히 첨부하라고,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러겠다고 하고서는 그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남부의 가재는 한 이십 불 주면 푸짐하게 먹는 조그만 민물 가재다. 이 음식을 놓고 오랜 동안 함께 일해 온 미션 파트너인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신뢰가 무너진 이 상황이 내겐 적지 않은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한다는 그들의 꿈이 부서지는 것이 마음 아파서. 그러면서, 나는 나의 수업, 그리고 프로젝트를 놓고 식별을 시작했다. 나는 과연 이 여행을 계속해야 할까? 심리학자 아들러는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좋은가’를 늘 생각하는 지혜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이 저만치 갈 때,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가.

식별작업으로 나는 “시작하는 때가 있으면 마치는 때가 있다”라는 말씀을 놓고 하나하나 따져 보았다. 먼저 이곳이 안전한 곳일까 의문이 들었다. 공동체라는 의식은 사라져 가고, 사람과의 유대를 결한 집을 지어 주는 일은 그저 건조한 노동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부의 문화와 인종차별, 그리고 저항운동을 공부하면서 내 학생들과 함께 열흘을 보내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작업임이 틀림없다. 학생들에겐 졸업하기 전에 꼭 한번 듣고 싶어 하는 과목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매일 밤 우리는 함께 가톨릭 사회정의를 놓고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분석했으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았다. 성찰된 모든 순간은 학습이고 의미라는 것을 함께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여전히 그 친절하게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업 반장은 또 학생들에게 저녁을 차려 주고 싶다고 사기를 쳤고,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정직하게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가난이 무어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체험한 가난을 이야기하면서, 가난한 동네에서 살면서 당했던 일들, 강도가 들어와서 월세를 내기 위해 팔려던 엄마의 보석을 강도 맞은 일, 총을 겨눈 강도로 인해 자기 동생을 잃은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가난은 절박한 거라고 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선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 미국에서 제일 가난한 이 마을 사람들은 절박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상황을 덤덤하게 보아 넘기기로 했다.

미시시피의 가난으로 무너져 내리는 집들. ⓒ박정은

나는 이 상황을 성숙하게 이해하게 해 준, 아직 어린 내 학생들이 경험한 가난에 마음이 아팠고, 그러면서도 사랑과 희망을 품어 찬란히 빛나는 그들의 젊음에 마음이 놓였다. 가난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윤리적 판단을 놓치게 하고, 또 우리의 일상을 초라하게 하지만, 다가오는 내일을 맞는 성숙한 젊은 세대가 있기에, 나는 평화롭게 이 미션을 정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열두 번째 미션 여행을 통해, 학생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철저히 신뢰하고 존중하기를 배운 것 같다. 내가 통제하려는 것은 내 안의 두려움과 불편함에서 올 뿐이라는 것도 배운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식별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이제 마지막 미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볍다. 차창으로 보이는 저만큼 멀어져 가는 사랑했던 남부 미시시피의 마을이며, 흙이며, 그리고 이젠 훌쩍 커버린 꼬마 친구들이며, 이제는 안녕 또 안녕!

박정은 수녀
미국 홀리네임즈 대학에서 가르치며,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슬픔을 위한 시간: 인생의 상실들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일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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