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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 선종남미 니카라과의 혁명 시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불화 겪어

니카라과를 비롯해 남미에서 혁명시의 상징이었던 유명 시인이자 가톨릭 성직자인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3월 1일 세상을 떠났다. 95살.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

카르데날 신부는 1980년대 니카라과의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산디니스타 혁명정부의 문화부 장관을 맡았다. 이 탓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정직 처분을 받았고, 이 조치는 30년 넘게 이어졌다.

그의 개인 조수였던 루스 마리나 아코스타는 1일 “우리의 사랑하는 시인은 하느님과 극히 친밀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우주와 하나되는 길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의 친우였던 보스코 센테노는 <AP>에 카르데날 신부가 이틀 전에 심장 문제로 마나과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했다.

카르데날 신부는 또한 에세이 작가와 조각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돌과 금속으로 만든 왜가리 상들은 중미 문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25년 1월 20일 생이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콜롬비아에서 사제가 되었으며 그 뒤 1960년대에 남미를 휩쓸었던 좌파 해방신학 운동에 참여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이들을 사목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하는 데 중점을 뒀다.

1966년, 그는 니카라과 호수의 솔렌티나메 섬에 농민, 시인, 화가들로 이뤄진 공동체를 설립했다. 이 공동체는 예술계가 당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상징이 되었다. 소모사 정권은 1979년에 산디니스타 반군에 타도됐고 소모사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카르데날은 혁명을 적극 지지했으며 산디니스타 지도자인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이끄는 혁명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일했다. 이 일로 그는 당시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충돌하게 됐는데,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직자는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굳게 주장했다. 당시 공산국가이던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는 또한 완고한 반공주의자였으며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반대했다.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1983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니카라과를 방문했을 때 마나과 국제공항에 정부 대표로 마중나온 카르데날 신부가 무릎을 꿇고 교황의 손에 입을 맞추려 하자 손을 뿌리치고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공개 질책했다. 이 장면은 사진에 잡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교황은 이렇게 꾸짖었다. “당신은 자신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해 교황은 카르데날 신부를 정직시켰다. 당시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던 그의 동생 페르난도 카르데날 신부도 함께 정직됐다.

카르데날 신부의 정직은 말년에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풀렸다. 2019년 2월, 카르데날 신부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교황청은 그가 자신에 대한 처벌을 받아들이고 사목활동을 자제해 왔으며 정치 활동을 포기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때 니카라과 주재 교황청대사가 병원으로 그를 찾아와 함께 미사를 드렸다. 카르데날 신부의 개인 조수인 아코스타는 이 순간을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카르데날 신부는 문화장관에서 물러난 뒤 공직을 다시 맡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를 피했다는 뜻은 아니었고, 이 예전의 오르테가 지지자는 근래 들어서는 우경화, 독재화한 2기 오르테가 정권의 지도력을 두고 자기 주변의 예전 산디니스타 동조자들과 거리를 뒀다.

오르테가가 2007년에 다시 대통령직에 오른 뒤, 카르데날 신부는 “가족 독재정권”이 시작됐다며 비난했다. 그리고 2018년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곧바로 야당 편을 들었다.

그는 친필로 쓴 시위 지지 메시지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른 정부, 민주적 공화국이다”라고 쓰고, 오르테가 진영과의 대화는 소용없다고 덧붙였다.

그가 오르테가에게 등을 돌리자, 산디니스타 측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카르데날 신부는 몇 가지 법적 문제에 부닥쳤는데, 그는 이는 자기가 오르테가와 그의 부인이자 현 부통령인 로사리오 무리요를 비판한 데 대한 “정치적 박해”라고 주장했다. 2015년에 그가 90살이 되었을 때 그는 멕시코에서 생일잔치를 받았지만 정작 그를 변절자로 보던 니카라과 정부는 침묵을 지켰다.

카르데날 신부는 요한 바오로 2세와 충돌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를 좋게 보지 않았으며, 2014년에 그가 시성되자 “기괴”하다고 평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회 변두리의 약자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그의 호소에는 지지를 보냈다.

카르데날 신부는 언젠가 “나는 복음의 메시지와 함께 살고자 노력한다”면서 “복음 메시지는 정치적 메시지로서, 불평등이 10만 년이나 이어진 끝에, 더 나은 세상이 오게 하려고 세상을 바꾸고 있는 메시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ncronline.org/news/people/ernesto-cardenal-nicaraguan-poet-and-priest-dies-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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