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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변모, 그 성사적인 모습[유상우 신부] 3월 8일(사순 제2주일) 창세 12,1-4ㄱ; 2티모 1,8ㄴ-10; 마태 17,1-9

나보다 강한 사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 강함이 물리적 강함, 영적인 강함 등 그 종류에는 상관없이 나보다 강한 사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성경 속 이야기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 예를 탈출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내린 열 가지 재앙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흘 동안 어둠으로 이집트 온 땅을 덮었던 아홉째 재앙 이후 파라오와 모세가 마주한 자리에서 파라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에게서 썩 물러가라.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 너는 죽을 것이다.”(탈출 10,28) 이 구절은 절대 권력을 지닌 파라오의 자만감과 교만을 잘 보여 줍니다.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창세 32,31)라고 하느님과 씨름했던 야곱의 고백처럼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하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파라오는 자신을 신의 자리와 동일시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예뿐만 아니라 사극에서도 쉽게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절대 권력자인 왕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허리를 굽힌 채 얼굴을 쉽게 들 수 없었지요. 그렇게 강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위험하고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주일 복음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탈출기 33장이 연상됩니다. 주님 변모의 순간을 마태오 복음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2) 이 모습은 주님 변모 축일의 감사송이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 그리스도께서는 뽑힌 증인들 앞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모습이 온통 찬란히 빛나게 하시어 –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그분의 인성이 강조되는 것이라면 부활과 승천은 주님의 신성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당신의 본질을 드러내시는 장면입니다. 

주님의 변모. (이미지 출처 = Pixabay)

우리는 이 장면에서 탈출기 33장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20) 모세가 만남의 천막에서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의 영광을 보여 달라 할 때 하느님께서 하신 대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겠다며 말씀을 이어 나가신 뒤 마지막에 이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탈출 33,23) 그 뒤 모세의 얼굴이 빛나게 되고 그도 너울을 쓰지요.

그러기에 복음에서 보는것과 같이 해처럼 빛나는 주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은(마태 17,6)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주님의 초대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7,7) 그렇게 우리는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주님의 모습을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취하신 예수님을 통해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주일 복음은 매우 성사적인 장면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성사를 자유롭게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교구에서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가 중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언제 어떻게 호전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내 내면과 신앙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는 건 어떨까요? 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면합니다. 특별히 성체성사를 통해 그분을 모시게 되지요. 혹시 나에게는 오늘 제자들이 가졌던 두려움이 존재했습니까? 그 두려움은 불안감이 아니라 성령 칠은에 나오는 것과 같이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이자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입니다. 사순시기인 동시에 성사를 마주할 수 없는 이때에 그 두려움에 한번 깊이 빠져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그 두려움을 향하여 말입니다. 물론 그 두려움의 끝에는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처럼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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