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재의 수요일 예식에 쓰는 재. (이미지 출처 = Pixabay)

시국이 시국인지라 2020년은 기억될 한 해가 될 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을 못하고 지나쳤으니 말입니다. 

세례는 받았으나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미사 참례를 하는 분들은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을 못했다는 건 큰 의미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해마다 사순기간이 회심의 시기라는 것을 알려주던 상징적 예식을 그냥 건너뛴 것이 무척 혼란스럽게 느껴졌을 분들이 적잖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물어오셨습니다. 재의 예식을 제날에 못했다면 코로나가 한풀 꺾인 뒤에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가능한지 전례학자의 자문을 구해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재를 머리에 얹고 옷을 찢는 행위는 유대인들이 보여 준 회개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이 차용해서 머리에 재를 바르는 예식으로 사용해 온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사순기간의 시작을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회심, 즉 겸손함을 되찾는 예식으로 시작하는 전통을 유지해 왔습니다.(“재의 수요일의 유래와 의미”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오랜 전통이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취소되었기에 많은 분이 날짜를 미뤄서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예식이 사순기간의 첫머리에 있는만큼 재의 수요일로부터 날짜가 멀어질수록 재의 예식의 의미는 빛을 바랩니다. 그 예식이 없어도 사순시기에는 자선, 기도, 단식이 진행되니까요.

전례학자를 통해 확인한 것은, 재의 수요일 예식이 날짜를 미뤄서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재의 수요일 이후 첫 주일이 되겠습니다. 즉, 사순 제1주일에 재의 예식을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씀드려서, 사순 제1주일에 하는 재의 예식은 일종의 사목적 배려입니다. 노동을 하느라 수요일 미사에 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대부분의 본당 신자가 성당이 너무 먼 곳에 살아 주중에 본당에 나오기 힘든 경우를 감안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재의 예식을 이동시켜 주일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사순기간 안에 아무 때나 자율적으로 날짜를 잡아 재의 예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듯한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순 제1주일마저도 미사를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경우에는 비록 이마에 재를 바르지 못했다고 상심할 게 아니라 내적 겸손을 청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요?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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