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2월 23일(연중 제7주일) 레위 19,1-2.17-18; 1코린 3,16-23; 마태 5,38-48

미사 경문 중에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거룩함’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거룩함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세속에서 살아가는 나와는 크게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신가요? ‘나도 거룩함을 추구해야 되지만 그게 뭐 쉽나’라는 생각들이 많이 들 것 같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함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모두 각자가 뭔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희미하게 알 것 같기도 하시겠지요. 거룩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도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고, 내 나름대로 거룩한 게 뭔지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언급하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법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과거의 경험을 잘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만 ‘거룩함’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제가 군생활 할 때의 기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몇 주 정도 주일미사를 참여하지 못할 상황이 군대에서 참 자주 생기는데요. 경계 작전을 나가느라 석 달 정도 성당을 못 나가다가 성삼일과 부활을 보내기 위해 사단 본부 성당에 파견 나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모습이 남들에게는 사뭇 기뻐 보였나 봅니다. 그때 부대의 개신교 군종병이 저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와 참 거룩하다 거룩해." 그 사람에게 거룩함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그냥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거룩함이라는 단어로 이해됐나 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사람이나 물건을 신성한 용도로 쓰기 위해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깐 무언가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된다는 것이 그 1차적 의미입니다.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들을 탈출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나타나실 때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5)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그 공간. 일반적인 공간과 분리된 그 땅을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땅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하시기 위한 파스카의 밤에 대해 알려주시면서 하느님은 그 축제를 보내기 위한 모임을 거룩한 모임(탈출 12,6)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 구별된 공동체, 그 모임을 하느님께서는 거룩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타지 않는 떨기나무. (이미지 출처 = Pixabay)

마지막 예시로,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직전에 계약을 체결하시지요. 이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 하느님께서 많은 민족 가운데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들을 구별하여 고르셨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공통점은 인간 쪽에서 무엇을 열심히 해서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분리하고 택하셨기 때문에 그 땅이, 그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거룩함은 하느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룩함이 인간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그리고 그 완전해지는 길을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기존의 율법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을 곱씹어 볼 때 거룩하고 완전하게 되는 것은 다른 것과 분리되고 구별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것은 따로 나만 홀로 사는 삶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독서와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께서 말하시는 거룩함과 완전함은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보여 주신 거룩함의 가장 훌륭한 모델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을 인간의 삶 속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결국 거룩함과 완전함은 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성당에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다시 말하면 거룩한 공간에서 거룩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해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거룩해지고 완전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각자가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완전해지고 거룩해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완전함은 인간적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고 넘어지고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일 화답송의 말씀처럼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주님께 의탁하면서 조금씩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예수님처럼 구체적인 삶으로 표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내내 바칠 미사의 본기도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을 실천하게 하소서.”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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