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지난해 성지 주일에 충성한 성지를 받아 십자고상에 걸었다가 재의 수요일 전에 성지를 태워서 재로 쓴다. ⓒ왕기리 기자

사순기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아시다시피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합니다. 재의 수요일에는 미사 중에 이마에 재를 바르는 특별한 예식을 진행합니다. 이 예식은 유대인들이 참회의 표현으로써 머리에 재를 얹던 의식을 그리스도인들이 도입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흙으로 빚은 피조물이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재의 수요일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는 속풀이의 다른 기사를 함께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재의 수요일의 유래와 의미”)

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전통적으로 지난해 성지 주일에 축성한 나뭇가지와 잎을 태워서 만듭니다. 오늘처럼 신자들 모두가 전례를 통해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이 만들어진 것은 10세기 독일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기에, 지난해 성지 주일에 축성한 나뭇가지를 태워 올해의 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전통도 이 즈음에 형성된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사순기간의 다른 날들과는 구분되지만 부활절을 앞두고 진행되는 매우 특별한 전례시기인 성주간은 바로 성지 주일에 시작합니다. 이 특별한 날의 산물이 성지(聖枝)인데 이것을 한 해 동안 잘 보관했다가 이듬해 사순시기 첫날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전례시기의 순환을 되새기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실용적 측면에서도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축성된 사물을 소중히 보관하고 함부로 버리는 일을 방지하는 데도 매우 유익합니다. 성지가 많지 않아 전례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재를 준비할 수 없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 성당에서는 미리 신자들이 보관하고 있는 성지를 모아 전례를 준비합니다. 

재의 수요일에 관한 짧은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재의 수요일에 사용되는 재는 꼭 성지를 태워서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답을 드리자면, 꼭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축성된 사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지를 잘 보관했다가 전례를 위해 재활용한다는 것은 쉽게 구하여 쉽게 버리는 오늘의 소비문화에도 뭔가 생각할 것을 던져 줍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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