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4]

설을 앞두고 며칠 전, 아이들이 간식상 앞에 빙 둘러앉았다. 이웃집 겨울이, 다울이까지 모두 다섯 아이가 간식으로 내어 준 고구마전을 먹으며 한바탕 수다 잔치를 벌이는데, 그날의 주제는 세상에서 제일로 무서운 귀신이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무서운 귀신을 다 끄집어 내어 누가누가 더 무섭나 선발이라도 할 기세였다.

“너희 달걀귀신 알아? 달걀귀신은 얼굴이 없는데도 사람 잡아먹는다.”

“그럼 신발 귀신 알아? 신발 귀신은 신발까지 통째로 먹는다.”

“모자 귀신이 더 무서워. 모자 귀신은 큰 모자로 뒤집어 씌운 다음에 잡아 먹어.”

“똥 귀신도 있어. 똥 귀신은 똥을 막 받아 먹어.”

이야기가 무서운 데서 더러운 데로 방향을 막 틀려는 찰나, 겨울이가 차분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그래도 나이가 젤 무서워. 많이 먹으면 죽어.”

다른 아이들은 이게 갑자기 뭔 소린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인데, 나만 혼자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 버렸다. 원래 다른 일을 하며 아이들 이야기를 배경음악처럼 듣고 있었는데 그 얘길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 겨울아, 네 말이 맞다. 나이가 젤로 무섭지. 그럼 그럼!”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나이 먹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울이만 해도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못 받을까 봐 나이를 그만 먹고 싶단다. 다랑이의 경우 엊그제까지만 해도 자기는 마음만 먹으면 나이도 많이 먹을 수 있다며 자랑을 했다. 왜냐, 떡국을 좋아해서 한꺼번에 몇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랬는데 올해는 떡국 먹기가 두렵단다. 8살이 되면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올 3월이면 다랑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에 계속 다니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학교 구경은 해 보는 차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직까지 앞날이 창창한 다나만이 유일하게 나이 먹는 걸 반기는데(반기다 못해 때로는 나이를 실제보다 많게 속이기도 한다.^^) 이유는 빨리 8살이 되어서 다랑이 오빠와 함께 학교에 다니고 싶기 때문이란다. 그런 다나를 바라보며 오빠들이 하는 말, “다나는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르는 모양이야. 좀 더 커 보면 알겠지.”

'새해 첫 기적' 노래의 한 장면. ⓒ박다랑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로 내가 몇 살인지를 자꾸 잊어버린다. 마흔 넘어가니까 산기하게도 나이가 세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 봤자 고작 마흔 둘인데, 누가 나이를 물어볼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다. 뭐지 이건? 무의식적으로 나이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 겨울이 말마따나 나이 먹는 게 너무 무서워서?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듯싶다. 어쩌면 나이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야 할까? 마흔을 기점으로 김치에서 익은 내가 나듯이 내 나이, 내 삶에서도 뭔가 익어 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 생각, 내 의지, 내 욕망.... 그런 데서 좀 더 자유로워져 다른 차원의 삶이 펼쳐지는 듯도 하고 말이다. 이건 순 감이니까 명확한 근거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나는 느껴진다. 혹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로 나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사실 제대로만 먹는다면야 나이가 숫자놀음만은 아니지 않을까?

해마다 둥치가 굵어지고 가지가 넓어지는 나무를 볼 때 나는 나이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한다.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생명을 살게 하는 생명의 집이 되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또, 한 살 "더 먹으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둘씩 많아지고 덩달아 자기 고집도 세지는 아이들을 볼 때도 나이의 신비에 놀라고는 한다. 하루하루 그냥 사는 것 같아도 절로 열리고 커지고 피어나고 자라나는 변화의 세계, 내가 그 세계에 발 담그고 있다는 사실이 전율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그 세계를 만나는 오늘은 얼마나 큰 행운이고 기적 같은 일인가!

새해를 맞아,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이라는 동시를 다시 꺼내 보는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두 해 전인가 새해 무렵 이 시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는데, 모인 친구들 가운데 한 친구가 시에 노래를 붙여 선물해 주었다. 가끔 논에서 황새를 볼 때 이 노래를 나즈막히 불러 보고는 하는데, 오늘은 이 시 그대로 내용을 음미하며 불러 본다. 기적 같은 오늘, 선물 같은 나이를 깨어 바라보면서!

 

새해 첫 기적

반칠환 동시 / 김효정 곡

 

황새는 날아서 (훨훨훨)

말은 뛰어서 (콩콩콩)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떼굴떼굴)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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