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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1월 20-22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환대는 교회일치의 중요한 미덕”

교종, 1월22일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2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접견을 통해 매년 1월18일부터 25일까지 기념하는 ‘그리스도교 일치주간’에 대한 교리교육을 실시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교리교육은 그리스도교 일치주간을 맞아 ‘환대’를 주제로 말씀드립니다. 이 주제는 바오로 사도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던 중 몰타섬에 난파된 극적인 경험과 사도와 함께 배를 타고 난파된 일행이 그곳 주민들에게 받은 환대를 바탕으로 합니다. 실제로 거친 바다의 폭력과 달리 생존자들은 하느님 사랑을 반영하는 ‘특별한 환대’(사도 28,2)를 경험합니다. 이 환대는 바오로 사도가 그곳의 많은 병자를 치유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드러내고 보답했습니다. 환대는 중요한 교회일치의 미덕입니다.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에 대해 경험한 것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전통의 그리스도인들을 환영할 때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뿌린 선물을 받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열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 특히 사도 바오로처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많은 이민자에게 위험을 피하도록 해 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협력하면 우리는 주님의 더 나은 제자이자 하느님의 백성으로 더 굳게 연합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영어를 사용하는 순례자들과 특히 벨기에, 한국, 호주 및 미국에서 온 단체 순례자들을 환영합니다. 이번 그리스도교 일치 주간에 저는 에큐메니칼 연구소 학생들에게 특별한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바티칸 북아메리카 칼리지 평생 신학교육 연구소 사제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과 가족 모두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교종, 1월2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선물은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리스도인들과 사제와 주교직은 모두 무료로 받은 하느님 선물로서 그리스도인의 성덕은 성실하게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선물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오늘 제1독서(1사무엘 16,1-13)와 화답송(시편 89(88)편)은 주님께서 사울이 순종하지 않아 배척하신 뒤 새 이스라엘 왕으로 다윗을 선택하신 과정을 설명합니다. 독서에서 하느님은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 아들 중 한 사람을 택하기 위해 예언자 사무엘을 보내셨습니다. 기름부음은 하느님의 선택을 나타내며 오늘날에도 사제와 주교를 축성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례성사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처럼 사람의 눈으로 보고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종은 하느님의 눈으로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엘 16,7) 이렇게 하느님은 이사이의 여덟 아들 가운데 막내 다윗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다윗 형제들은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 왕국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매일 기도하는 경건한 소년도 아니고 그보다도 더 많은 공로를 세운 일곱 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전쟁에 싸우지도 않고 양 떼를 돌보았던 목동인 가장 작은 소년 다윗을 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왜 나를 선택하셨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가정이나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왔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무상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경력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영향력을 찾기 위해 등반가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례를 받고 성직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입니다. 주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성덕은 주님의 선물을 보존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겸손하게 살라고 촉구하면서 우리를 택하신 하느님의 선물을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시면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는 순수한 은혜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사제들이 우리 양 떼를 지키는 사명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면 하느님의 선물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자가 아닌 민족을 포함한 하느님 백성을 잊는다면, 만일 우리 사제들이 우리의 양떼를 잊는다면, 만일 주교들이 이들을 잊고 다른 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하느님의 선물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마치 성령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가십시오. 저 멀리 가버리십시오. 편안히 성삼위 안으로 들어가서 쉬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선물을 간직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다윗을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선물에 감사드리고 이토록 위대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깊이 깨달으며, 우리의 충실성을 통해 이 선물을 지키는 은총을 주님께 청합시다.

 

“하느님 순명을 통해 자유로워지자”

교종, 1월2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2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착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정의, 사랑, 용서, 자비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상, 교만, 자신에 대한 과신을 이기는 길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신뢰뿐이라고 말했다. 

강론 내용.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하느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1사무 15,16-23)에는 하느님께서 예언자 사무엘에게 내리신 ‘예언’의 말씀 즉 사울 임금에 대한 하느님의 배척에 관해 기록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적하신 사울의 죄는 하느님 말씀에 자신의 해석이 더 옳다고 여기고 하느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을 거역하는 죄의 본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울에게 전투에서 승리한 적국 백성에게서 아무런 전리품도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지만 사울은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주님을 대신해 사울을 질책하려고 갔을 때, 사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1사무 15,21) 사울은 자기 주머니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여겼지만 하느님 말씀을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 이런 태도를 통해 다른 이들로 하여금 무엇인가 전리품으로 주머니를 채우는 일을 허용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길입니다. 작은 불순명으로 시작했지만 이는 더욱 큰 불순명으로 계속 나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말렉 사람들을 전멸시킨 다음 주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완전히 없애버리기로 맹세한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 살진 짐승을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사무엘은 어떻게 주님께서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제물 바치는 것을 더 좋아하시겠느냐”고 상기시키면서 ‘가치의 목록’을 열거했습니다. 곧,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희생, 단식, 고행하는 것보다 오히려 순명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죄란 내가 모르는 사이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시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선호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점을 보는 죄와 같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도 미래에 대한 확신을 위해 점을 보러 가고 손금 보러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께 불순명하는 것은 ‘점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뜻 앞에서 고집을 부린다면 우상숭배자입니다. 주님의 뜻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즉 우상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불순명한 대가는 왕국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3) 이는 우리로 하여금 순종에 관해 생각하게 해 줍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복음이나 주님 말씀에 대한 우리 해석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가 결의론(決疑論, casistiche: 사회적 관습이나 율법에 비추어 도덕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세철학)이나 윤리적 결의론에 빠진다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계명을 통해 보여 주시고 여러분 마음속에 계신 성령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리고 주님의 말씀을 이데올로기로 바꾼다면 나는 우상숭배자이지 순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에 온순하게 순종하는 것, 이것이 순명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에는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아 비난 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고 설명하십니다. 옷이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입니다.(마르 2,21 참조) 또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다.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 주님 말씀의 새로움은 언제나 승리하며 모든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 말씀은 항상 새롭고 우리를 앞으로 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은 우상을 이기고 교만을 이깁니다. 주님 말씀은 주변에 내가 구축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신을 과신하는 태도를 이깁니다. 

이를 설명해주는 아주 좋은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구약에서 발췌한 하느님 말씀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호세 6,6) 착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 말씀에 온순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정의’, ‘사랑’, ‘용서’, ‘자비’에 대해 하시는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려만 하고 이데올로기를 사용하거나, 일관성 없는 삶은 착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때로는 우리를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도 하지만 악마도 그와 똑같은 일을 기만적으로 행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통해 자유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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