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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리키' 다시,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주말영화 - 정민아]
'미안해요 리키', 켄 로치, 2019. (포스터 제공 = 영화사 진진)

영국 사실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켄 로치 감독은 신자유주의 속 복지제도의 맹점을 파고든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2017년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직후에 은퇴를 선언했다.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라고 불리던 1960년대 영국 청년들의 저항적 문화운동 시기부터 영화를 만들어 온 켄 로치가 나이를 이유로 은퇴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노장이 다시 카메라를 든 이유는 바로 택배원의 시선으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 불리는 비정한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응시하기 위해서다. 긱 이코노미란 산업 현장에서 비정규 프리랜서 노동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현상을 뜻한다. 이 영화는 바로 긱 이코노미의 대표 노동자인 택배원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리키(크리스 히친 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노던룩은행이 파산하면서 다니던 건축회사가 어렵게 되자 실업자가 되었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되찾기 위해 자영업을 선택하고 택배일에 나선다. 이 일을 위해서는 밴이 필요한데, 간병인으로 먼 거리를 다녀야 하는 아내 애비(데니 허니우드 분)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동차를 팔고 밴을 새로 구입한다.

노인 간병일을 위해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애비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제로아워 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계약)으로 인해 일당은 늘 같다. 리키의 경우, 자영업이라서 시간을 들인 만큼 수입이 생길 줄 알았건만 시간 내 물건을 배송하지 못하거나 사정이 생겨 일을 미루는 일이 생기면 택배회사가 각종 이유로 벌금을 떼어 간다. 대체 인력을 못 구하면 팔이 부러져도 일하러 나가야 하고, 차에서 2분만 벗어나면 ‘총'(배송 위치 추적 기계)이 회사에 신호를 보낸다.

'미안해요 리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집을 사겠다는 목표에 다가가기는커녕, 과도한 노동시간 때문에 가족이 함께할 시간은 꿈도 못 꾼다. 자녀는 방치되어서 고등학생 아들은 점점 비뚤어지면서 미래의 희망을 부정하는 불만 가득한 청년이 되어 간다. 혼자서도 잘하던 착한 딸은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다.

영화는 냉혹한 현실을 냉철하게 관찰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은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쌓이던 문제가 결국은 폭발한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위기와 감정적 여파는 우리가 현실에서 체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들이 겪는 삶의 고난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현재, 혹은 미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걱정에 시달리지만 이들의 삶에도 작은 행복의 순간, 유머, 사랑 넘치는 따스함이 있다. 제발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을 되찾기를, 간병하는 노인을 부모처럼 대하고 싶어 하는 친절한 애비의 얼굴에 햇살이 비치기를, 그리고 리키가 삶의 희망을 다시 품기를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게 된다.

'미안해요 리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원제 “Sorry, We Missed You”는 물건을 배송했지만 주인이 없을 때 남기는 쪽지다. “당신을 만나지 못해 유감이예요” 정도의 다정한 문구지만 이 쪽지는 다음 날 또다시 배달을 와야 한다는 슬픈 메시지다.

리키를 연기하는 크리스 히친은 배관공으로 일하는 진짜 노동자고, 택배 물류창고의 배우들은 모두 진짜 택배기사다.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는 현실의 반영을 넘어 현실 그 자체가 된다. 이들의 삶에 지친 얼굴은 우리 각자의 얼굴이기도 하다.

성난 얼굴로 제도에 저항하기에는 생존이 급박한 리키 부부, 그리고 이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분노를 키우거나 무기력해진 후속세대들의 모습은 쓰러져 가는 영국 사회의 대표적인 한 단면이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머나먼 나라의 일이 아닌 것이, 양극화로 신음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모든 나라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큰 공감을 준다. 더 큰 것, 더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현대영화의 시각적 홍수 속에서 고전적 리얼리즘 영화의 존재 의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작은 영화다. 이 작은 영화가 금방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를, 리키 가족의 용기를 응원하는 만큼 이 영화를 지지한다. 

'미안해요 리키'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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