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간담회에서 교회 안팎 사안에 대한 입장 밝혀

주교회의 의장이자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성탄을 앞둔 12월 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광주대교구를 비롯한 교회의 여러 사목 과제와 지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역 언론과 교계 언론 기자들의 질문에 앞서, 김희중 대주교는 모두 발언을 통해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당부하고,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는 소수 의견이 가벼이 여겨지지 않는 사회를 위한 언론인의 소임은 참으로 막중하다”며, “어느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찾고, 국제정세 속에서 지구 공동체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이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광주대교구의 계획, 남북관계와 교회의 역할, 교황 방북, 이주민과 난민 사목 등에 대한 교회 사안은 물론,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한 현안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국사회 정세와 관련해 김 대주교는 특히 “뒤쳐진 이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남북간 지속적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는 한편,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서는 국제사회의 이해관계 속에 한반도의 평화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5.18이 광주 전남지역만의 일로 한정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5.18의 민주화, 평화, 인권, 통일의 가치를 좁게는 아시아, 넓게는 세계인의 가치로 확산될 수 있는 계기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23일, 주교회의 의장이자 광주대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정현진 기자

다음은 주요 질문과 이에 대한 김희중 대주교의 답변 전문이다.

최근 옛 광주교도소터에서 시신 40여 구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실종자들의 일부 시신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증언이 있었고 이번에 실제로 드러난 셈이다.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김희중 대주교 : 무엇보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이제까지 의혹으로 많이 회자되었던 내용들이 사실로 드러나게 된 하나의 실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실종자들과 유전자 대조를 한다니, 정확하고 깊이 있는 조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들 외에도 아직 행방불명인 이들이 많은데, 이번 기회에 5.18의 가해자로 참여했던 이들이 양심선언을 하면서라도 구체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밝힐 계기 되기를 바란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비단 가해자 처벌, 증오, 원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혀서 후손들에게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확실한 교훈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동참하기를 바라며, 광주대교구는 정확한 결과가 나오면 의견을 모아 입장을 밝힐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주교회의에서도 밝히는 등, 가톨릭교회가 여러 역할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종교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김희중 대주교 : 무엇보다 교류와 협력이다. 그동안 주교회의에서는 끊임없이 국제 카리타스를 통해 북측과 접촉하고 있었다. 최근까지 접촉하면서 필요한 교류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측에 밀가루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지원 사업을 계속하면서 다른 하나는 북측과 협력해 종묘사업을 육성한다. 종교계 일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만나는 일이다. 며칠 전에도 북측에 연락을 취했고, 제안한 것은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종교인 공동 기도모임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2020년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다. 특별히 광주대교구를 비롯한 교회에서 준비하는 사업이 있는가?

김희중 대주교 : 안타까운 것이 5.18민주화운동이 광주 전남지역에 한정됐다는 것이다. 지역의 틀을 벗어나 5.18정신을 전국화, 세계화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연례적이고 과시적인 행사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아직 민주화의 과정에 있는 나라들과 5.18 정신을 공유하는 것이다. 교회의 언어로 말하자면 5.18민주화운동의 영성화다. 이상적인 법과 제도가 이상적 사회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법과 제도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변질될 수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민주, 인권, 평화, 통일의 가치다. 이를 바탕으로 한 대동사회 건설이 광주 민주화운동의 기본적 흐름이며, 광주만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다.

그래서 내년 40주년에는 프랑스나 미국, 캐나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몇 명씩이라도 청년들 초대하고 5.18 기간에 함께 순례를 비롯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할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이 각 나라로 돌아가 광주의 정신을 알리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특히 출애굽 40년이라는 성서적 의미도 살리면서 5.18민주화운동이 한 단계 격조 높은 운동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사목교서와 관련해 광주대교구의 사목 중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다. 내년 이를 위한 구체적 계획은 무엇인가?

김희중 대주교 : 먼저 ‘가난’이라는 말은 단순히 물질적 빈곤만을 말하지 않는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모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노숙인, 장애인이다.

로마의 노숙인 센터를 방문해서 얻은 영감을 통해 노숙인을 위한 쉼터를 계획하고 있다. 로마의 노숙인 쉼터는 옷, 신발, 샤워시설, 심지어 미용시설까지 갖추고 노숙인들이 충분히 휴식을 한 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광주대교구도 지금까지 노숙인을 돌보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그들이 자존감과 새 생활을 찾을 수 있는 기본적 틀을 마련하고 싶다.

두 번째, 장애인을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장애인을 돌보는 이들을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정신적, 신체적 장애인과 살고 있는 가족들 역시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다. 각 본당에서 본당이나 지역에 살고 있는 장애인 가족들을 찾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가족들이 쉴 수 있도록 봉사에 나서는 체계를 생각해 봤다.

‘가난’이라는 말의 어원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부족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고, 사회에서 뒤쳐진 이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의 여부가 선진국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번 성탄메시지에 외국인들, 이주민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제의 문화를 적극적인 환대의 문화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조사에 따르면 100명 가운데 4명이 외국인인 사회가 됐는데, 특히 교회가 이주민, 난민 사목에서 보다 힘써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희중 대주교 : 가장 필요한 것이, 이주민들의 언어, 한국어 교육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다. 그동안은 생계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 정부가 과감히 투자해서 언어공부에 전념하는 동안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이주민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언어교육을 지원하고 제대로 환대한다면 그들은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또 다른 외교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정책상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값비싼 전투기 하나만 사지 않아도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외국인들을 우리를 위해 이용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주민들을 환대함으로써 그 나라의 문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고, 나 역시 동감한다. 이주민들이 인간답게 살도록 돕는 것은 결국 우리를 위한 길이다. 여력이 닿는한 교회에서도 한글교실 등에 투자해 일조할 생각이다.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이른바 ‘조국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리고 이 일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김희중 대주교 : 두 가지로 구분해서 말하고 싶다.

하나는 법이 법으로서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적 정의는 자칫, 법의 폭력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법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더 이상 법으로서 의미와 가치를 갖지 못한다. 선택적 정의, 선택적 법집행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처럼 비춰지는 것도 우려한다. 보수와 진보가 갖는 고유한 가치가 있는데, 양쪽에 묻고 싶은 것이 각각의 철학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보수는 우리가 처음부터 가졌던 가치 있는 전통을 보존하면서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적 가치라는 것이 뚜렷한 목표와 이상이 없다면 기득권 지킴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보수도 아니다. 진보 역시 보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변화되는 시대 상황에 맞게 전통의 가치가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 없이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만 생각한다면 자칫 계급투쟁으로 오해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가 양 날개, 수레바퀴의 양 축을 이뤄야 한다. 이런 면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여러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다.

호남지역에서 조국 장관에 대한 공감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개인에 대한 선호도가 아니라, 정치개혁에 대한 갈망을 투사한 것이다. 아직도 개혁의 가치는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더 우리 사회가 쇄신되고 혁신되기를 바라면서 경계심을 갖고 잘 살펴야 한다. 기자들도 의견과 사실은 분명히 구분해서 말해야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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