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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 들판의 한가운데[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이 세상의 구원자가 포대에 싸인 아기로 탄생하시기 전, 하늘의 알림을 받고 움직인 인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이면 꾸미고 찾아가는 구유에 모인 분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 마구간에 구세주가 나신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천사가 전하는 놀라운 소식을 받아들여 구세주를 잉태하신 성모님, 단지 꿈에서 들은 천사의 고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모님과 예수님을 받아들인 요셉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그룹의 인물들. 오랜 세월 기다리던 구세주의 별이 나타나자 바로 길을 떠나 먼 길을 돌고 돌아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있고, 이 밤에도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다 천사와 하늘의 군대의 선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목동들이 있습니다.

안드레아 만테냐, '목동들의 경배'. (1456) (이미지 출처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

이번 대림 기간을 준비하며 새삼 이 그림을 다시 보았습니다. 구유 곁의 인물들이 각각 하느님의 구원의 길로 초대되는 방식과 여정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하다가 만난 이 목동들은 갑자기 저를 한 밤중의 들판으로 초대했습니다. 엄청난 장면이었습니다. 살아서 ‘천사와 수많은 하늘의 군대’를 볼 이가 누가 있을까요.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8-14)

성모님께도 홀로 나타나고, 양부 요셉께는 그나마도 꿈에서, 동방박사들에게는 임무의 완수 후반에나 꿈에 등장하던 천사가 하늘의 군대와 함께 직접 나타나 주님의 영광으로 비추며 구세주의 탄생을 알립니다. 성경에 마귀가 ‘군대’로 등장하는 장면은 있습니다.(마르 5,9) 그런데 천사와 하늘의 군대를 살아서 본 이들에 대한 이렇게 생생한 묘사는 목동들이 유일합니다. 이 대단한 장면은 미사 경문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만테냐의 이 작품은 15-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목동들의 경배’가 ‘동방박사의 경배’처럼 하나의 회화 장르가 되었던 시기의 그림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성경에 아무리 이러한 스펙터클이 담겨 있어도 목동들의 주님 경배가 주제가 된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4세기경 잠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세상에 퍼져 나가길 기도하는 의미에서 ‘주님을 경배한 첫 번째 그 지역 사람들’로서의 의미로, 혹은 이야기의 구성상 동방박사 세 사람 주변 한두 명으로 목동이 등장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테냐 작품 속 목동들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며 재발견된 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에게 이 목동들이 다시 등장해 희망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제야 제 눈과 귀에 그것이 희망으로 간절히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아주 정확히 알려 주지 않고서야 찾아올 수 없는 곳에 뛰어 온 의외의 인물들. 옷도 신발도 여기저기 찢어지고 얼굴은 들판의 삶으로 상해 버린 모습의 목동들이 방금 탄생한 아기와 부모에게 찾아와 이 아기가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며 기뻐하고 경배합니다.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루카 2,15-17)

한밤중 들판에 양들과 함께 지내는 이들에게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며 빛을 비추신 하느님의 자비. 이들의 입을 빌어 구세주의 확증을 ‘성가정’에 전하게 하신 그 안배. 이 자비의 목소리를 듣는 귀와 찾는 눈을 열어 가도록 마련된 시간이 대림시기가 아니었나 이제야 돌아봅니다. 포대기에 싸여 이렇게 작게, 이렇게 구석에 오신 그리스도를 맞으며 우리의 한밤중 들판 한가운데가 자비의 자리가 됩니다.

그러나 혹시 아직 그 소식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마음만 바쁘고 안타깝다 하더라도, 도움의 기도를 청할 분이 이 그림 한가운데 계십니다. 화가의 바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루카 2,18-20)

그림의 구도상 한가운데에 계신 성모님. 그 주변에 올망졸망 모인 천사들을 보고 목동들이 바로 알아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외딴곳에 찾아온 목동들이 전하는 놀라운 소식의 의미를 처음부터 알아들었을 이는 없을 것입니다. 구세주가 구세주로 성장하시도록, 그 길을 함께 찾아가신 성모님의 성장도 이렇게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그 구세주의 어머니께 전구를 청하는 마음이 이 그림의 구도에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오늘이 따뜻한 불빛과 멀어도, 품으로 파고드는 찬 바람에 가슴이 시려도, 거기에 직접 찾아와 깃드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함께 보고 듣는 기쁨을 나누는 삶이 되길, 그 매일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구원의 길이 되길,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합니다.

오늘로 하영유 수녀의 칼럼 연재를 마칩니다. 1년 9달 동안 미술을 통해 수도자가 바라본 교회와 사회에 대한 성찰을 나누어 주신 하영유 수녀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서강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출강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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