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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할매를 보내고[장영식의 포토에세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껴안고 살아왔던 밀양 상동면 도곡리 말해 할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해 할매는 17살인 1944년에 시집을 왔습니다. 세 살 위의 남편 얼굴 한 번 보지도 않고 시집을 왔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보도연맹 사건으로 끌려가 지금까지 생사를 알지 못합니다. 남편이 끌려갈 때, 큰아들은 다섯 살이었고 막내아들은 갓 돌이 지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홀로 된 여인이 두 아들을 키우면서 험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남의 일도 기쁘게 했습니다. 그래서 손에 돈이 들어오면 땅을 샀습니다. 그 땅을 의지하며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60년을 살아오니 송전탑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그 송전탑은 조상님이 묻혀 있는 묘역을 지난다고 합니다. 할매는 죽어서 조상님 뵙기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싸웠습니다.

시집온 지 6년 만에 남편을 잃고, 평생 땅을 부쳐 살아오셨던 말해 할매. 10년 넘는 송전탑 싸움에서 가장 용감하고, 가장 처절하게 싸웠던 할매가 돌아가셨습니다. 땅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셨다는 할매가 돌아가셨습니다. 송전탑 없는 곳에서 남편과 아들을 만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장영식

새벽 세 시가 되면 주먹밥 두 알과 물 한 병을 허리춤에 차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산을 오르셨던 할매. 산 위에서 109번 송전탑 건설 포클레인에 쇠사슬을 감고 지팡이를 탁탁 내리치며 한전 용역 직원들에게 호령하셨던 할매. 송전탑이 빼꼭하게 들어서고 난 뒤에 할매는 괴물 같은 송전탑들을 바라보며 “내가 죽기 전에 저 송전탑들을 뽑아 뿔끼라”라고 하셨던 할매가 돌아가셨습니다. 평생 땅을 부쳐, 장날에는 땅에서 나온 농산물을 팔러 나가셨던 할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송전탑 없는 곳에서 남편과 아들 그리고 며느리를 만나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지팡이도 필요 없는 곳에서 ‘빨갱이’ 소리를 듣지 않는 세상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담배를 달고 사셨던 할매, 이제 그곳에서는 한 많은 담배를 피지 않으셔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말해 할매, 보고 싶습니다. 

송전탑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매일 새벽 세 시가 되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어둠을 뚫고 산에 오르셨던 할매. 송전탑이 건설된 후에는 "내가 죽기 전에 송전탑을 뽑아 뿔기라"고 하셨던 할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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