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정모 양 팬클럽'이란 아주 사사로운 단체의 클럽장을 맡고 있는 강모 씨가 그 팬클럽의 동반사제인 제게, 우리가 언제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헤어졌는지 기억이 아련해질 무렵 불현듯 질문을 해 왔습니다.

신부님들은 왜 검은색 주케토(zucchetto)를 쓰지 않는 걸까요?라고 말이죠.

주케토는 주로 주교들처럼 고위성직자들의 복장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틴어로 필레올루스(Pileolus)라고 부르고, 이탈리아 말로는 '작은 바가지'라는 뜻의 주케토는 일종의 모자입니다.

본래, 옛날 수도자들은 세상과 거리를 둔다는 차원에서 '속알 머리'를 삭발했습니다. '주변 머리'는 두고 깎았으니 불교의 승려들이 삭발하는 방식과는 다른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서늘한 날씨엔 시렸겠죠. 따라서 머리가 없는 부분을 덮을 빵모자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주케토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주케토는 성직자의 신분을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역할을 했던 의상인데, 나중에는 '속알 머리'를 깎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서 기능보다는 장식성이 더 강한 모자가 되었습니다. 

흰색 주케토를 쓰고 있는 교황. (이미지 출처 = Pxhere)

아시다시피 주케토는, 교황은 하얀색, 추기경은 붉은 색, 주교는 자주색으로 각 성직자 신분의 수단(soutane)과 '색깔 맞춤' 세트로 남았습니다. 외국에서는 평사제가 쓰는 검은색 주케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검은색 주케토를 쓴 사제를 본 적이 없네요. 제가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바로, 이 모자는 사목지를 이곳저곳 열심히 다녀야 하는 사제들에게 기능적으로 유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람만 조금 불어도 날아가서 머리핀으로 고정해야 할 모자를 편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차라리 검은색 베레모를 쓰든지 비레타(biretta)라는 사각 모자를 쓰는게 훨씬 활동하기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비레타 같은 모자는 사실 검은 수단에 맞춰 쓰는 것이라 본당 사제가 수단을 입은 채 본당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는 요즘에는 활용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검은 색 비레타 사각 모자.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평사제가 검은색 주케토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쓰고 다녔다가는 주변에서 ‘주교되고 싶어서 저런다….’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게 깔끔하게 예측됩니다. 사목현장에서 열심히 투신하는 이들이 실용적이지도 않은 의상에 애착할 리 없겠죠.

보너스: 미사 중 주케토를 언제 쓰고 벗는지 정도를 알아 두는 게 속풀이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주교는 미사 중 주케토를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는 시점인 감사기도의 감사송을 하기 전에 벗고, 영성체 후 기도를 할 때, 즉 성찬의 전례가 마감된 뒤에 다시 씁니다. 제대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면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권위를 지닌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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