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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자살과 정신건강 문제를 보다 ‘정치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광기와 삶 - 송승연]

"1950년대의 서울, 식솔 벌어 먹이기가 벅찼던 가장이 방에서 목을 맸다. 아이들 엄마는 그 비겁한 가장의 시체를 두들겨 팼다. 1990년대의 서울, 가출한 아내에 대해 분노한 가장은 아이를 데리고 다리에 나가 강물에 떠밀어 던졌다.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지 않겠다고 빌던 아이는, 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가자, 아버지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 양애경, 시 ‘계백의 아내’ 중, 1997.

2019년 11월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명(어머니, 아들, 딸, 딸의 친구)이 한꺼번에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의 유서에선 ‘경제적 어려움’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다. 비단 이 사건뿐일까. 지금도 가끔씩 뉴스에서는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다. 도대체 지금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여전히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사회일 수 있다.

우리는 명확하지 않은 현상에 가시적 원인을 놓고 싶어 한다. 불완전하고 통제되지 않는 죽음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살의 원인을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양애경의 시처럼, 그리고 인천의 비극적 사건처럼 자살은 우리의 ‘삶’, 그 자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증상, 질병으로 구체화시켜서 치료라는 개념으로 ‘자살’을 통제하는 것은 본질이 오히려 덮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우려가 있다. 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자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새로운 담론이 계속해서 진행될 필요성이 있다. 우선 정신건강의 문제, 자살의 문제를 보다 ‘정치적’인 관점으로 전환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자살 또한 개인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만, 개인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연결되어 있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즉 자살의 문제를 개인적 결함과 의료적 문제로 보기 보다는, 본질에 대해 다루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1998년 IMF를 겪은 한국, 이와 비슷한 2008년 경제위기를 겪은 그리스는 당시 자살률이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위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그리스 재정긴축 정책이 자살률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Antonakakis & Collins, 2014) 경제적 위기는 실업, 고용, 재정손실, 불평등, 주거압류 등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요인들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일으키고, 그 다음 자살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경기침체에 따른 긴축과 복지정책의 변화가 영국 내 국민들의 정신건강문제의 증가에 기여하고, 정신건강 문제는 실직의 문제에 영향을 미침으로 불평등 확대를 가져왔다는 연구(Barr et al., 2015)가 있으며, 소득불평등(Campion et al., 2013), 사회적 불평등(Allen et al., 2014)이 커질수록 정신건강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있다. 또한 사회적 자원 중 기본적인 주거환경이 열악할수록 정신건강에 위험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Liddell & Guiney, 2015) 이러한 사회구조적 원인은 자살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실제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낮은 고용률, 실업,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경험하는 열악한 생활 수준과 불충분한 소득은 자살률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Yur’yev et al., 2012)

마포대교 위에 적힌 메시지.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무기력’과 연결될 수 있다. 인천 일가족 사망 사건에서 주목할 부분은 20대가 다수였던 것이다. 이는 어쩌면 현재 20대가 당면한 사회적 좌절감을 상징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이 가장 두려운 것일 수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혹은 ‘흙수저 대 금수저’와 관련된 농담은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현재의 사회적 단면을 절실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힘든 것으로 사람은 쉽사리 무력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열심히 노력해도 천장이 보인다면, 상실감은 극대화되며, 비로소 사람은 무력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즉 자살이라는 현상의 기원에 사회적 타살이라는 기제가 있다면, 그리고 이것이 ‘불평등’과 관련이 있다면 이를 해소하는 것이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개입일 수 있다. 가령 경기침체 기간 동안 긴축이 아닌 지속적으로 복지 지출을 유지한 국가는 실업자에 대한 복지 및 구직 촉진 예산을 삭감한 국가보다 자살률의 증가가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Camilla et al., 2015) 또한 유럽의 26개국을 대상으로 사회복지 지출과 복지시스템, 복지제공 등이 자살률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 분석한 결과, 높은 사회복지 지출과 복지제공에 대한 더 큰 신뢰가 자살예방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Yur’yev et al., 2012) 이는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유럽에서 증가하고 있는 자살률을 감소시키는 데 복지정책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자살률 감소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BBC>에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대해 다룬 기사(Trieste’s mental health revolution, 19.07.17)를 보면 로베르토 메치나 박사(roberto mezzina, 트리에스테 정신건강국장)는 이탈리아의 열린 문 시스템(open-door system)이 지난 20년 동안 자살률을 약 50퍼센트 감소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이탈리아는 78년 정신보건 개혁법이 제정된 이후 ‘자유가 치료다'(사람들을 억압하는 공간에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와 해방을 보장하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치료의 전제조건이며, 거기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모토 아래 문을 잠그지 않고, 강박(Restraint)을 하지 않으며, 지역사회 정신건강센터에서 운영되는 위기쉼터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탈리아는 현재 정신과 병상수가 급격히 줄었음에도 강제입원은 확연하게 줄어들었고(2015년 전체 입원 중 5퍼센트 미만), 자살률 또한 낮다.(2012년 10만 명당 자살률 6.3명. 참고로 한국은 2018년 10만 명당 자살률 26.6명이다.) 이는 미시적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높은 자살률이 감소한 측면을 고려할 수 있으며, 거시적으로는 정신장애인의 인권 보장이 모든 시민권의 보장을 촉진시킴으로서 사회 전반의 자살률 감소에 영향을 주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포용국가. 즉 실패하더라도, 패배하더라도,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는 믿음. 이런 믿음을 공유하고 구축하는 것이 높은 자살률을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치유책일 수도 있다.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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