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1월 24일(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2사무 5,1-3; 콜로 1,12-20; 루카 23,35-43

연중시기는 우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일로 끝난다. 우리는 하느님나라의 의미에 관하여 성찰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아들의 하느님나라

예수님은 왕이라고 주장했다 하여 죽음의 판결을 받는다. 이것은 고발자들이 말하는 내용이고 예수님 자신이 빌라도, 왕(로마제국 황제)의 대변자인 빌라도에게 인정한 내용이다. 그 당시 왕의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억압하고 있었다.(루카 23,1-3) 유대의 왕인 예수님의 지위는 십자가 위편에 새겨 있다.(23,38)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의 신체적 처지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는 표지다. 이 사람이 왕인가? 그가 주장하는 왕국의 왕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하고 아마도 두려움에 가득 차 십자가에 못박힌 그분을 바라보고 있다. 관리들(문자 그대로 하자면 지도자들)은 그분의 가르침 때문에 도전을 받았으나 지금은 비웃고 있다; 그들은 승리를 기뻐하고 있다. 구세주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사람이 그 자신을 구할 수 없다. 그들은 그분이 군중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루카 23,35-38) 다시 한번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오해하는 위험을 저지른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과 아무 상관없이 순전히 영적인 영역의 왕이라고 스스로 인정하셨다고 확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가 선포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전 우주적(보편적) 실제다. 아름다운 그리스도 찬가에서, 바오로는 우리에게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다”(콜로 1,16)고 말해 준다.

여기에서 근원적 반대는 영적인 것과 현세적인 것의 차이나, 종교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사이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배의 힘과 섬김의 힘 사이의 반대요 차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학대하는 이 세상의 왕들과 같은 왕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의 혜택을 위하여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자신을 구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권력(정치, 종교 혹은 지적인)을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데 써야 한다고 가르치기 위하여 오신다.

십자가 위의 예수와 두 죄수.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다윗의 아들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 주님께서 선포하는 하느님나라의 가장 큰 규범이다. 우리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우리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받은 권력을 사용할 때에 우리는 이 규범을 배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 사람들로서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함께 나누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에 귀를 닫기 위하여 사회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이용할 때에 그것은 섬김의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다. 섬김의 자세는 다른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예민함을 전제로 요구한다. 그러한 증언만이 그리스도의 하느님나라 선포에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열게 할 것이다. 예수님의 자세, 당신의 이익을 위하여 결코 권력을 이용한 적이 없는 예수님의 자세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도둑들 가운데 한 사람의 굳은 마음을 무너뜨렸다.(루카 23,40-41) 주님의 증언은 도둑으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어떤 나라의 왕인지 알아듣도록 해 주었다. 그 나라로부터, 우리는 이 세상과 이 사회 속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이웃과 관계 맺는 방식을 지금 이후로 바꾸어야 한다. 주님의 증언은 우리가 역사 속에 하느님의 다스림의 위대한 가치들을 육화시키도록 영감을 주어야 한다.

실상,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의 충만함”(콜로 1,19)이 그 안에 머물도록 한 분이 다윗의 아들(2사무 5,1-5)이며, 우리 역사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루카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듯이,(루카 23,6) 그분은 갈릴래아 사람이므로 멸시받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주님께서는 우리를 연대의 나라로 부르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으라고 초대한다.(23,43)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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