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21]

‘엄마는 이모가 될 수 없다!’

나의 지론이다. 나도 한때는 얼마든지 이모처럼 한결같이 너그럽고 부드럽고 상냥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모는 이모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엄마가 이모가 되려고 한다면 일종의 감정노동 상태에 빠지거나 아이들을 응석받이로 만들 수가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의 전략은 아이들에게 이모들을 만날 기회를 열어 두는 것!

이달 초쯤에 아는 언니들이 온다고 했을 때,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언니들로 말할 것 같으면 십여 년쯤 전에 같이 그림책 공부 모임을 하며 만난 사이다. 당시엔 그림책에 대한 열정이 불 같고 모임 구성원 사이도 끈끈해서 작은 전시회까지 열고 그랬다. 하지만 결혼하고 쭉, 정말 십 년 넘게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 최근에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언니 중 한 명이 가끔 내 생각이 떠올라 <지금여기> 연재 글도 찾아 보고 그랬단다.

“어느새 너한테 애가 셋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애들은 어떻게 지내? 학교도 안 보낸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까마득했다. 안 보고 지낸 세월만큼 나는 평범한 삶의 범주에서 멀찍이 떠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뭐 그렇게 특별하게 사는 건 아니고 크게 별다를 건 없지만 그걸 말로 다 설명하긴 어려웠다.

“언니, 한 번 놀러 오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고, 결국 두 언니가 각각 서울과 대전에서 하루에 한 대뿐인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왔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처음 본 이모들의 등장에 처음엔 수줍어 하는 듯하더니, 자석에 끌리듯 자꾸 이모들 곁으로만 갔다.

가장 적극적인 건 다랑이였다. “이모 그런데요....” 하면서 말문을 트고 다가가 달리기 시합을 하자 축구를 하자 쉴 틈 없이 끌어당겼다. 나한테는 그런 거 하자고 아예 말도 꺼내지 않는데 이모들은 다 받아 줄 걸 아는 게다. 다나도 곱게 물든 잎사귀 같은 거 주워다가 이모들 손에 쥐어 주며 “이모 선물이에요” 했다. 엄마는 밋밋하게 “어, 고마워.” 하고 말지만 이모들은 다르게 반응하는 줄을 알고 있는 게다.

이모한테 노래를 불러 주고 싶다며 즉흥곡을 만들어 부르고 있는 다나. 노래 제목은 ‘홍시가 너무 맛있어!’ ⓒ정청라

그렇게 2박3일을 이모들 품에 폭 안겨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대전에서 아이들 글쓰기 지도를 하며 지내는 언니는 아이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해 주고, 서울에서 그림책 그림 작업을 하며 지내는 언니는 아이들과 사랑방 벽화 작업을 함께해 주고, 마지막 날은 다 같이 운주사에 놀러도 가고.... 그러고 났더니 아이들에게(특히 다랑이에게) 만남의 여운이 길게 남은 모양이었다. 이모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랑이가 자기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내 손에 이모들 손 잡은 기억이 남아 있어. 내 눈에도....”

옆에서 다나도 말했다.

“나도 기래(그래).“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에겐 참 많은 것이 남았구나 싶었다. 이모들의 감촉과 목소리, 냄새, 주고받은 마음 같은 것들.... 엄마가 다 채워 주지 못한 빈자리를 이모들이 가득 채워 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다랑이는 노래 부를 때 더 크게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첫 수업의 경험으로 글자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증폭되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다. 배움과 성장은 누군가와의 진한 마주침에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절절하게 확인하게 된 셈이다.

이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키미 이모라고 하는 이모가 있다. 제주 비자림로 숲을 지키기 위해 광주 영산강유역 환경청 앞에 와서 한 달가량 노숙 농성을 했던 이모다. 농성이라고 하면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결사 반대’ 같은 거 외치는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키미 이모는 그렇지 않았다.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얼굴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비자림로 숲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이모의 농성 텐트는 모닥불이 피어나는 작은 움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키미 이모의 농성장에 다녀온 뒤로 아이들은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모도 자기 집에 가고 싶겠지? 언제 집에 돌아갈까? 나무가 베어질 때 많이 울었겠지? 동물들도 울었을까? 사람들은 왜 자꾸 공사를 하고 싶어 해? 등등.... 자연의 소중한을 알리고 환경보호를 외치는 여러 권의 책보다 이모와의 만남이 훨씬 강렬한 메시지가 된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광주 가서 키미 이모 만나고 돌아온 뒤로 다랑이는 격정적으로 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는 이모한테 보내 달라며 의미심장한 그림도 그렸다. 다울이는 자기 일기장에 받아 온 키미 이모 사인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보며 감탄에 감탄을 했다. “왼손으로도 이렇게 글씨를 잘 쓰다니! 그림도 정말 선이 부드럽네. 키미 이모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나도 다울이가 받은 싸인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세상 아픈 곳들이 너희들의 놀이터가 될 때까지 기도할게. 고마워. 키미 이모가.”

온몸으로 바람을 막아 내야 하는 위태로운 자리에 서서도 어쩌면 이렇게 포근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나 역시 감동에 감동을 거듭하며 키미 이모의 사인, 그 속에 담긴 마음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것으로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게 되었다. 나도 함께 기도하고 싶어서, 기도가 노래가 되면 왠지 마법 같은 힘이 더욱 찬란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아이들 노는 모습과 곱게 물든 산자락을 바라보며, 세상 모든 이모들의 마음이 되어 본다. 이모의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러 본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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