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롬반외방선교회 심포지엄, ‘종교 안의 젠더와 권위’

천주교, 개신교, 무교, 불교에서 여성은 어떻게 차별받고 이를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15일 골롬반외방선교회가 ‘종교 안의 젠더와 권위’를 주제로 마련한 심포지엄에는 수도자, 평신도 등 40여 명이 함께했다.

이날 임영준 신부(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는 인사말에서 “종교인의 믿음과 신앙 때문에 좁은 시야와 폐쇄적 태도가 생겨 남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서 “종교, 가정, 사회적 대화 등 어떤 대화에서도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회가 여성에게 어머니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여성혐오”

먼저 개신교 신학자인 최순양 협성대 초빙교수가 개신교 신앙교육이 남성 중심주의와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면서 어떻게 여성을 배제하고 대상화했는지 살폈다.

최 교수는 ‘여성혐오(미소지니)’는 여성에 대한 공격과 폭력, 편견과 왜곡된 시각, 부풀린 관점 등을 말하지만, 여성을 정해진 역할과 영역에 고정하고 대상화하는 것도 여성혐오의 보편적 형태라고 설명했다.

개신교가 교리, 목사안수, 목회활동, 임원직 등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가정에 헌신하는 어머니 역할을 여성의 최고 덕목으로 강조하는 것도 여성혐오라는 지적이다.

“교회 중요 직분, 여성에게 형식상 열려 있지만 사실상 배제”

개신교에서 여성은 구조적, 형식적으로 지도자 역할에서 배제된다. 

최 교수는 “예장합동 교단에서는 제도적으로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고, 감리회, 장로회 등 여성 목사 안수가 허용되는 교단도 대형 교회는 남성이 대부분 요직을 맡고 주요 임지로 간다”면서 “여성은 특수나 보조 목회에 집중되고, 목사가 돼도 중요한 업무를 담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형식적 배제가 아닌 실질적 배제”로 “형식적으로 여성에게도 모두 보장되고 열려 있다고 하지만 내용으로는 남성의 목소리가 더 크고, 투표권도 더 우세한 것은 사실상 차등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 안의 젠더와 권위'를 주제로 한 이날 심포지엄에는 수도자, 평신도 등 40여 명이 함께했다. .ⓒ김수나 기자

“신앙교육이 여성의 현실 말하지 않아.... 20-30대 여성들 교회 가기 꺼리는 이유”

최 교수는 교회가 여성에게 자아실현이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하기보다는 가족을 잘 돌보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고 가르친다면서, “가족 내 여성의 성 역할이 성숙한 교인이 되는 것과 맞물리고, 신앙적 담론이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교회에서 자아실현을 한다는 여성조차도 가족을 희생시키지 않는 내에서 활동해야 하는데, 이것이 과연 진정한 자기실현인가”라고 물었다.

또 교회는 ‘2009년 가족사랑 노트’, 선교사 교육서, 주일교육 지침서 등에서 남편에 대한 부인의 순종, 남편은 존경의 대상, 여성은 사랑으로 다스려져야 하는 존재라며 이를 상호 존중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신앙교육서뿐 아니라 성서 자체도 남성 중심적이라고 최 교수는 봤다.

이처럼 교회가 가족 내 여성 역할, 어머니의 전형성을 강조하면서 비혼이나 자녀가 없는 20-30대 여성들은 교회에 가기를 꺼리게 된다. 그는 이를 “설교나 신앙교육이 여성의 현실을 말하지 않고 가족 이데올로기나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이라며 “이를테면 교회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도 여성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설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성서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신도가 성서해석과 신앙교육에 대해 스스로 왜라고 물을 수 있도록 교회가 성서가 쓰인 배경과 한계를 낱낱이 알려주고, 평신도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석의 문을 열어 놔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모천왕의 위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람의 목숨”
신과의 소통 통해 "당신이 오늘 행복한가" 물어

두 번째로 정순덕 무녀와 김동규 선임연구원(서강대 종교연구소)은 여신과 소통한 무녀의 체험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위로와 행복, 평안을 주는지를 이야기했다.

정순덕 무녀는 8살 때 내림굿을 받고 45년 동안 황해도 전통굿을 이어 왔다. 이한열, 박종철 열사, 경기 고양시 금정굴 민간인 학살, 제주4.3 희생자를 위한 진혼굿을 하며 1980년대 민중 문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진혼굿은 세상을 떠난 이의 넋을 위로하는 굿이다.

김동규 선임연구원은 한국 사회에서 무교에 대한 여러 부정적 인식에도, 가정의례나 조상숭배 등 무교의례에서 여성의 큰 역할을 볼 수 있고, 여성 무당이 주체로서 신을 어떻게 체험하고 표현하는지 알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순덕 무녀는 4년 전쯤 지리산 성모천왕을 모시게 됐는데, 산신은 대부분 남성이지만 지리산 성모천왕은 여신이자, 어머니 신령님으로, 그동안 모셨던 남신들의 움직임은 파동이 강렬하고 엄격해 100일 넘게 기도해도 부족하다는 긴장감을 줬지만, 성모천왕 앞에서는 일주일 기도 끝에 통곡했다고 한다. 

그는 기도 끝에 성모천왕이 “아가, 고생했다”, “너 참 잘했다”, “아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귀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다. 홍익인간을 살거라”였다면서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독거리고 용기를 줘야 지혜가 생기고 자신을 돌볼 수 있다. 신과의 소통을 통해 당신이 오늘 행복한지를 묻는다”고 말했다.

신과 소통한 체험을 이야기하는 정순덕 무녀. 한 여성 수도자는 그의 체험을 듣고, 자신도 같은 체험을 한 것이 떠올라 무속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고 말했다. ⓒ김수나 기자

“박해 속에서도 불교 일궜지만, 비구니에 대한 제도, 문화적 성차별 여전”

이어진 발표에서는 조은수 교수(서울대 철학과)가 불교 비구니(여자 승려)의 위상을 살피며 성 차별적 교단 제도와 권위적 문화를 극복할 것을 제안했다.

초기 불교와 달리 후대 불교로 갈수록 여성이 불결하고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 악하거나 모자란 존재로 폄하되면서 여성 성직자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비구니는 그 존재가 사라지고, 이제는 한국과 중국에만 남았다.

조 교수는 조선시대 박해받았던 비구니들이 20세기부터 목소리를 내 한국 불교를 이루며 성장해 왔고, 한국 불교 신도의 95퍼센트가 여성인데도 여전히 비구니를 하대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신도들이 비구(남자 승려)에게는 기부도 많이 하고 잘 대접하지만 비구니에게는 그렇지 않고, 나이 든 스님들은 비구를 보면 꼭 인사하며 예를 다하는데 비구니가 절을 하면 가만히 있고, 비구가 잘못해도 비구니가 직접 지적하거나 야단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불교는 종단의 헌장과 규약인 종헌, 종법에 ‘총무원장은 비구로 제한한다’고 선언할 정도로 형식적 차별조차 심각”하며, 또 “종단 의사결정에 본사 주지의 권한이 큰데도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주요 절의 주지에 비구니는 없다"고 말했다.

불교 조계종 전국 25개 본사 가운데 비구니가 주지를 맡은 곳은 없으며, 25개 본사에 딸린 작은 절에서는 주지를 맡는다. 비구니는 약 7000-8000명으로 비구와 비슷한 수다.

조 교수는 “여성이 대다수지만 여성이 부재하고 여성의 의사결정권도 없는 종교”라며 “불교 교단의 제도상 성차별과 권위적 문화는 불교계가 성평등 지수가 가장 낮은 종교임을 나타내며,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신도가 주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 구분 없는 모성 통해 시대 돌보는 평신도 사도직”

서강대 전인교육원 강영옥 강사는 가톨릭 전통에서 나타나는 여성 차별과 배제를 짚고, 그 대안으로 ‘사회적 모성’을 통한 여성 평신도 사도직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는 18세기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만인 평등, 인간 존엄이라는 가톨릭의 바탕이 당시 여성들에게 복음으로 다가왔지만, 실제로 가톨릭은 남성만 사제직에 허용하는 등 남성 성직 중심이라는 교회의 위계 구조를 통해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강영옥 강사는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없음을 명시화하고, 가톨릭 교계에서 여성의 권위를 찾기 어려운 것은 가톨릭 한계이며, 여성이 성직제도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쟁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여성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일단 평신도 사도직에 눈을 돌리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를 위해 ‘사회적 모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사회적 모성은 가정에 국한됐던 공동체성, 돌봄, 수평적 사고,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장해, 여성이 성직에서 배제됐어도 신앙과 삶을 통합해 역할을 찾자는 뜻이다. 그는 이것이 “본인도 성직자가 아니면서 권력과 힘의 구조에 저항한 예수의 정신과 복음에 더 맞다”고 평가했다.

교회 전승 안에서 사회적 모성을 찾기 위해 그는 전신으로 묘사되고 중앙에 배치된 각국에 있는 마리아의 도상을 통해, 십자가형에 처한 아들만이 아닌 시대의 모든 이를 품는 마리아의 사회적 자비와 영향력을 소개했다.

“모성이란 말 대신 중립적 용어가 더 영향력”

사회적 모성에서 ‘모성’이란 말이 비혼이나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 대해 경계를 지어 버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강영옥 강사는 “사회적 모성은 생물학적 출산이 아닌 모성적 능력을 개발한다는 뜻”으로, “사회문화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을 바꿔 성의 구분 없이 모성적 능력과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최순양 교수도 “모성이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확장시켜도 여전히 모성”이라며 “모성이란 말 자체가 여성, 어머니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돌봄자라는 용어 등을 개발했다. 본래 취지에 따라 사회적 모성 대신 중립적 용어를 쓰면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참가한 한 여성 수도자는 “성모천왕에 대한 체험을 듣고, 저도 영신수련을 하며 만신님과 똑같은 체험을 한 것이 떠올라 무속에 대한 선입견을 깼다”면서 “서로 다른 신앙이지만 일치점을 찾고 자주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날 발표한 김동규 선임연구원, 강영옥 강사, 조은수 교수, 최순양 교수, 유정원 교수, 임영준 신부.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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