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개혁연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탐방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통해 천주교 성지사업이 과연 교회의 복음 정신에 맞는지, 이웃 종교와 역사를 배려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천주교 관련 단체들의 모임인 천주교 개혁연대는 13일 천주교 순교성지 성역화 사업의 대표 현장인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둘러보며 이 문제를 나눴다.

이날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김유철 집행위원장이 현장 해설을 맡았으며, 종교투명성센터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관계자 등 10명이 함께했다.

동학 등 다른 종교와 공생하려는 배려 부족”
“공적 자금이 들어간 공간, 천주교가 운영비 낸다 해도 문제”

김유철 집행위원장은 박물관을 돌며, “동학 관련 전시물을 배려해서 구분해 배치해야 하는데, 천주교 전시물과 섞어 놓아 더 구분이 안 된다”면서 “21세기 인류의 앞길은 공생이고 특히 한국은 다종교 국가인데도, 천주교가 다른 종교와 함께하려는 모습은 미흡해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어 “성지를 개발하고 순례만 하면 자연스럽게 복음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며 “동학의 한국적, 역사적 가치를 우리 천주교가 기리고 함께 품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워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배병태 사무처장도 “동학 등 가치 있는 여러 역사가 천주교의 신앙역사 안에 그저 하나의 작은 사건처럼 잠시 소개되는 것에 그친 전시 구조였다”면서 “정부 예산으로 지은 공간이 가져야 할 공공성이 떨어지고, 여러 역사적 가치와 사상, 입장을 전체적으로 품는다는 취지에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천주교 개혁연대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통해 천주교 성지사업이 과연 복음정신에 맞는지 물을 필요가 있음을 논의했다. ⓒ김수나 기자

천주교 개혁연대 김항섭 대표는 공공자금이 들어간 공간을 특정 종교인 천주교가 운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박물관의 운영비를 천주교가 낸다고 해도 시설 자체에 공공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서 “종교 및 문화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공적 자금이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데 쓰였는지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공장소에서 종교색을 드러내면 천주교 신자들은 공감할지 모르지만 다른 이들은 반감을 느끼거나 천주교에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천주교를 알리고 호감도를 높이는 데 과연 도움이 될지 천주교도 깊이 고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우리신학연구소 경동현 연구실장은 “공공성만이 아니라 교회가 개발문제에서 복음 정신의 본질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한 데서 오는 문제”라고 말했다.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 김선실 대표는 건물 규모에 비해 전시기법과 내용이 빈약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대표는 “전시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전시 주제의 일관된 흐름이 없다. 전시관이라면 전시물 전체와 부분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구역별, 주제별로 구성돼야 하는데 개별 전시물만 늘어놓은 형태로 빈약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서소문이 동학과 천주교 순교지이기도 하지만 서소문 지역민들의 삶의 공간이었던 만큼 시대별로 서소문의 역사성을 충실히 재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운영 주체인 천주교와 중구청에 전시내용을 보강할 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현장 해설을 한 김유철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오른쪽) ⓒ김수나 기자

이들은 운영 주체인 천주교가 순교와 박해라는 성지로서의 의미를 놓지 않으면서도, 공공성을 의식해 종교색채를 크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박물관 구성에서 드러난다고 봤다. 이를테면 십자가 없는 경당(천주교 미사시설), 구석에 둔 성모상, 박해와 순교에 관한 전시물과 동학이나 조선 후기 관련 전시물을 혼합해 배치한 것 등이다.

이에 대해 종교투명성센터 김집중 사무총장은 “현재 전시되고 있는 나전칠기나 불교 미술 등은 천주교가 정부 예산으로 자기 종교를 드러낸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봤다.

그러다 보니 관용을 상징하기 위해 이민자나 다문화 등 주제와 맞지 않는 전시물이 배치되면서 천주교나 서소문의 역사적 가치 모두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천주교 성지사업과 순례 열풍, 과연 복음적인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불고 있는 성지화와 순례 열풍이 과연 시대적 응답과 복음화의 본질에 맞는가란 문제도 제기됐다.

우리신학연구소 황경훈 소장은 전국의 천주교 교구가 진행하거나 계획하는 성지사업이 지방자치단체들의 관광개발 사업과 연결되는 것을 두고, 경쟁과 물신주의를 우려하면서, 서소문을 통해 성지순례가 어떻게 물신주의나 성직 중심주의, 권력과의 결탁과 이어지고, 신앙인으로서의 역사 인식과 문제 제기를 막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톨릭이 본래 정신에 맞게 생명의 종교로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그것이 순례 열풍으로 현상화 되는 것”이라며 “넓게 보면 성숙한 시민으로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신앙인으로서 올바르게 응답하도록 제도교회가 역할을 다하는가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서소문공원에 있는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 ⓒ김수나 기자

정부 예산을 둘러싼 종교 간 경쟁과 갈등 우려

공공 예산으로 지은 건물에서 박물관을 운영하는 이번 천주교 사례가 다른 종교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있다.

종교투명성센터 김집중 사무총장은 현재 개신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도 자기 종교 유산을 문화재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종교 간 평화와 대화, 화합에 쓰여야 하는 예산이 배타적으로 집행되면 종교 간 경쟁과 갈등이 부추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은 서울시 중구청과의 위수탁 계약에 따라 2018년 6월 8일부터 2023년 6월 7일까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운영하며, 계약 조건에 따라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이 전액 운영비를 부담한다.

이 박물관은 조성 전부터 천주교 편향이라는 논란이 계속됐는데, 실제로 서울시 중구의회는 지난 2017년 감사를 통해 ‘특정 종교에 편향되지 않는 공간으로 조성할 것, 특정 종교에 운영 위탁을 지양하고 전문기관이나 단체에 위탁 관리할 것’을 제안했고 중구위회는 이를 승인해 그해 12월 사업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정작 2018년 3월 중구청이 낸 민간위탁 운영 모집 1차 공고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한 곳만 신청해 유찰됐으며 이어진 2차 공고에서도 서울대교구 유지재단만 신청해 관련 법률에 따라 수의계약이 진행됐다.

천주교 개혁연대는 내년 2월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천주교 성지화 문제를 주제로 공개 논의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천주교 개혁연대에는 가톨릭평화공동체, 가톨릭공동선연대, 가톨릭일꾼, 마산교구 예수일꾼, 우리신학연구소,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이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개신교, 불교, 천주교 3대 종단의 ‘종교 개혁 없이 사회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선언 뒤 2018년 1월 만들어졌으며, 교회 개혁과 쇄신에 대한 주제로 토론회를 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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