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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느님[구티에레스 신부] 11월 10일(연중 제32주일) 2마카 7,1-2. 9-14; 2테살 2,16-3,5; 루카 20,27-38

오늘의 말씀들은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표현되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생명을 위한 존재

루카 복음에서 처음으로 사두가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제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된 그룹에 속한다. 그들은 수적으로는 많지 않으나 영향력, 재물 그리고 로마 권력과의 밀착으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바리사이와 적대 관계에 있지만 하느님나라에 대한 가르침으로 그들의 특권을 위협하고 있는 예수를 반대하면서 바리사이와 한 패가 된다. 모세를 그들의 권위로 내세우면서 사두가이들은 아무런 확신도 없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우스꽝스럽고 교활한 이야기로 그를 잡을 궁리를 한다.(루카 20,27)

항상 그랬던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율법에 대한 근시안적이고 문자 그대로의 해석 대신, 주님은 사두가이들이 암송하는 말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유대 신앙의 중심적 맥락 속에서 대답한다. 실제로 탈출기 3장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 준다.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이름은 바로 그 사람을 표현해 준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그분의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사명을 주면서 한 대화다. 그러면서 하느님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억압에 대하여 강한 연민을 보이며 다음의 선언을 하고 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 루카 20,37에서 인용)와 “나는 있는 나다”라는 선언이다.(탈출 3,14) 예수님은 모세에게 하는 하느님의 이 말씀이 지닌 심오한 의미를 드러낸다: “그분은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 20,38)

예수를 시험하러 온 사두가이.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해방하시는 하느님

유대 백성의 선조들의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인 야훼이며 다른 존재들과 함께 있는 존재다. 부활 신앙은 “하느님 앞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루카 20,38)에게 생명을 주며 또한 주고 싶어 하는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하느님은 해방하시는 하느님이다. 바오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2테살 2,16)이라고 말한다. 위로란 제2이사야가 해방에 관하여 말할 때 썼던 말이다. 이 선물은 은총에서 오는 것으로 우리를 기도와 연민으로 이끌어 간다.

부활에 대한 신앙과 희망은 생명을 지키려는 결단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결단이 오늘날 페루에서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다. 페루에서는 죽음의 세력(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형태의 폭력)이 사람들, 특히 가장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부활 신앙은 우리를 역사로부터 끌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부활의 신앙은 그 궁극적 의미가 생명이라는 확신과 함께 우리를 역사 속에서 육화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희망이 마카베인들로 하여금 당시의 권력에 저항하도록 용기를 주었다.(2마카 7장)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느님을 믿는 것은 우리와 동시대인들이 겪고 있는 때 이른 죽음과 불의한 죽음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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