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0월 20일(연중 제29주일) 탈출 17,8-13; 2티모 3,14-4,2; 루카 18,1-8

과부의 간청.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루카는 예수님의 삶에 있어 기도의 위치를 가장 많이 강조하고 제자들이 항상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도다.(바오로 서간에서도 비슷한 강조점을 발견한다.)

하느님은 확실히 들으실 것이다

오늘의 복음에 나오는 짧막한 비유는 기도의 효과를 보여 주고 제자들에게도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환상적인 비유다.(루카 18,1) 우리 모두는 예수님 시대에 불의한 재판에 대한 제재가 없었으며, 과부는 정의를 얻지도 못하면서 늘 졸라 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늘 구절에서 과부는 드디어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비유인 시기를 놓친 친구가 했던 것처럼(루카 11,5-8) 집요하게 졸라 댔기 때문이었다. 이 일화를 놓고 예수님은 “청하여라, 주실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사람은 받게 될 것이다.”(루카 11,9-10)라고 선언한다. 이 구절은 신앙의 선언으로서, 누군가가 듣고 있으며 우리들의 요구와 울부짖음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깊은 확신이다. 제1독서에서 모세는 불굴의 기도하는 사람으로 강렬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모세는 백성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탈출 17,12)

그러나 진정으로 역설적인 부분은 비유의 결말이다. 우리는 불의한 재판관으로부터 하느님으로 옮겨가는데 그분은 선택된 백성들이 “밤낮”으로 울부짖을 때 분명히 귀를 기울이는 분이며, 때로는 지체하는 것같이 보여도 들으시는 분으로 묘사된다.(루카 18,7) 우리는 집요하고 필사적인 울부짖음, 선하고 자비로운 주님께 정의를 청하는 호소가 마지막 수단임을 발견한다. 똑같은 일이 모세의 기도에서도 일어난다. 백성들의 처절한 노력으로 그의 팔이 떠받쳐지고 그는 하느님께 백성들을 위하여 호소한다.(탈출 17,11-12) 처참한 상황 속에서의 기도, 이것은 오늘날 수많은 우리의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이 그와 똑같은 깊은 신앙을 갖고 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믿음이 남아 있겠는가?

정의를 가져오시는 하느님, 그분의 신속한 응답, 상심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오늘의 구절 바로 앞에 있는 구절에 표현된 종말론적 분위기의 측면들이다.(루카 17,22-37)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오늘의 구절 마지막에 나타나는 질문, 사람의 아들이 올 때를 상기시키는 비극적인 다음의 질문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믿음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며, 키워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의 실천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자라나고 성숙해 간다. 믿음은 선물인 동시에 과제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믿음의 삶의 길을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은 우리에게 “의로움”을 훈련시킨다.(2티모 3,16)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준비될 것이다.(3,17) 믿음이 과제라면,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4,2) 두려움 없이 또한 말씀이 모든 사람의 삶에 빛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근본적 요구조건이 포함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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