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9]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을 술렁이게 한 소식! 어떤 젊은 부부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 2만 평을 샀단다. 그리고는 그 땅의 나무들을 싹 베어 내고 호두나무를 심겠다지 뭔가. 그 넓은 땅에 온통 호두나무라니, 도대체 왜? 이 소식을 전해 준 겨울이 엄마 말에 따르면 군에서 호두나무를 심으면 각종 지원과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마을 이장님까지도 자기 집 뒷산의 나무를 다 베어 내고 호두나무를 심을 거란다.
그 소식을 들으니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군에서 펼치는 정책이라는 것이 어쩜 이렇게 반생태적이란 말인가. 돈 되는 농사에 혈안이 되어 있는 농촌 현실이 더욱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군이 직접 나서서 생태계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니! 기후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생각할 때 정말 안타깝고 몰상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식을 듣고부터 한동안 미리부터 전기톱 웅웅 대는 시끄러운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뒤숭숭하고 심란했다. 잠깐 마을을 떠나 있을까? 아니, 이참에 딴 데 이사갈 데를 알아봐? 하지만 어딜 간들 피해갈 수 있을까? 베어질 운명에 처한 산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한 숲의 조화에 감탄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막막함과 암담함이란....
그러다 문득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에서 만난 작은 피켓 하나가 떠올랐다. 북극곰이 (거의 다 녹아내려) 겨우 발 하나 정도 디딜 수 있는 작은 빙하 위에 서서 "갈 곳이 없어요" 하고 말하던 피켓이었다. 그 피켓을 보던 당시까지만 해도 북극곰의 위기감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닥친 위기감으로만 다가왔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었다. '갈 곳이 없기는 너나 나나 매한가지구나,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니....' 하는 절절한 마음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여전히 노래할 수 있을까? 노래를 한다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밥하고 청소하고 아이들과 부대끼며 울고 웃는 일상 가운데서도 더듬이를 세우고 노래를 찾았다. 이 어둡고 참담한 상황을 뚫고 지나가게 해 줄 노래 하나를 꼭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내 안의 빛이 꺼지지 않을 테니까, 그럼으로 아이들도 언젠가 닥칠 아픈 현실을 용기 내어 헤쳐갈 테니까.
그때 내 눈에 아른거리는 동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유희윤 시인의 '포도'다.
너도
포도
나도
포도
우린
포도
나도
작고
너도
작고
근데
참 크다
한 송이
우린
포도알 같은 낱말들이 또르르 굴러다니며 합창을 하는 듯한 느낌의 이 시, 작고 귀엽고 재밌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큰 힘을 준다. 한 알이 한 송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송이가 한 알을 품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한 송이는 포도나무를 만나게 되고, 나무는 땅을, 땅은 하늘을.... 그렇게 자꾸자꾸 멀리 닿고, 자꾸자꾸 가까워지겠지? 그렇게 큰 연결성 안에 있는 한 알의 너와 나라니! 거기까지만 떠올려 봐도 감격에 젖어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 바로 이 시로구나!
시를 마음에 담아 두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불러 보며 노래를 만들었다. 시가 노랫말이 되면서 모양이 조금 바뀐 부분도 있지만 시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왜냐, 그렇다 해도 우리는 한 송이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한 송이와의 연결성을 깨닫는 일일 테니까.
덧.
우리 집 머루나무에 올해는 많은 열매가 달렸다. 대견해서 자꾸만 눈길을 보내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한 송이 안에 여러 알들이 한꺼번에 같은 속도로 익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먼저 익는 것도 있고, 더디게 익는 것도 있다. 심지어 다른 알들 다 검어졌는데 홀로 쌩쌩히 파란 것도 있다. 햇볕을 보는 정도에 따라 저마다의 속도로 익어 가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겠지? 아직 새파란 알맹이들 앞에서 절망하지 말자. 결국에는 익어 갈 것이다. 대세는 성숙한 빛깔로 흐르고 있으니....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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