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복음화의 주인공은 성령이십니다”

교종, 10월2일 수요 일반접견 사도행전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2일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을 통해 사도행전에 나타난 필리포스와 에티오피아 사람과의 만남을 전하는 대목을 설명했다. 교종은 이 대목은 ‘하느님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하느님 말씀과 성사들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이 장면은 성령이 없으면 복음화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스테파노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사도 8,1)를 받기 시작하면서 하느님 말씀의 ‘질주’도 좌절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반면 많은 그리스도인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박해란 제자들 삶의 지속적인 형태’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요한 15,20)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박해는 복음화의 불꽃을 끄는 대신 더 활활 타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고을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필리포스 부제가 행한 일을 들었습니다. 말씀선포와 함께 수많은 해방과 치유의 표징이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성령께서는 복음 여정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필리포스를 하느님께 마음이 열려 있는 한 이방인에게 가도록 하십니다. 

필리포스는 일어나 열정을 갖고 길을 나서다가 위험한 사막 길에서 에티오피아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을 만납니다. 이 사람은 내시였고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유다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그는 귀국 길에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 특히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이사 52,13-53,12)를 읽고 있었습니다. 필리포스는 수레에 바싹 다가가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사도 8,30) 하고 묻습니다. 그 사람은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사도 8,31) 하고 대답합니다. 이 권력자는 하느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요한 은행가였고 재정담당 관리(장관)였으며, 돈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었지만 설명 없이는 하느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필리포스와 에티오피아 사람의 대화는 우리에게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껍데기’(겉모양) 안에 있는 그 ‘과즙’(핵심)을 찾고 문자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종께서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의 하느님 말씀’에 대한 주교 시노드를 개최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참된 독해인 주석은 단지 문학적 현상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존재의 운동입니다” 하느님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의 살아 계신 말씀인 그리스도를 만나고 닮기 위해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를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이 읽고 있던 성경 내용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필리포스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독서의 키워드를 제공합니다. 그분 실패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았고 마침내 세상에서 제거된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고통받는 겸손한 종이며 백성들을 악행에서 해방시키고 하느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한 바로 필리포스와 온 교회가 선포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를 통해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마침내 에티오피아 사람은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세례를 청하며, 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에티오피아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 필리포스를 사막으로 보냈습니까? 누가 필리포스를 이 사람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고 했습니까?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복음화의 주인공이십니다. “신부님, 저는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그래, 가서 무엇을 할 생각이니?” “아, 저는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말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이라는 것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맙소사. 이것은 복음화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복음화도 없습니다. 그것은 개종 강요이거나 홍보업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화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복음 선포로 재촉하시는 분은 성령이어야 합니다. 증거를 통해 선포해야 하고 또한 순교를 통해, 그리고 말로도 선포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을 부활하신 분과 만나게 해 준 뒤 에티오피아 사람은 이사야의 예언을 이해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필리포스는 사라집니다. 성령께서 그를 잡아채듯 데려가시어 다른 일을 하도록 보내셨습니다. 

저는 복음화의 주인공은 성령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들이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라는 표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또한 순교에서도 그 표징을 볼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필리포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고을로 갔습니다. 성령께서 세례받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하느님의 행하심에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연중 3주일을 ‘하느님 말씀의 주일’로 제정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30일 자의교서 형태로 발표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Aperuit illis, 아페루이트 일리스)를 통해 매년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 말씀의 주일’로 선포하고 하느님 말씀의 거행, 성찰과 보급에 할애하도록 결정했다. 이 문헌은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에 반포됐다. 하느님 말씀의 주일은 사랑 안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항상 쇄신할 수 있도록 하느님 말씀이 갖는 구원과 부활의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 특별하게 지내는 날이 될 것이다. 올해 선종 1600주년을 맞은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당시 대중적 라틴말로 옮긴 뛰어난 번역가였으며, “성경에 대한 무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교종은 교서에서 자비의 특별희년을 마무리하면서 이미 생각했던 이 계획은 하느님 말씀의 주일을 제정하도록 요청한 수많은 신자에 대한 응답이라고 설명했다. 교서는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루카 복음서 구절로 시작된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루카 24,45). 교종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실망했던 제자들에게 부활 신비의 의미를 계시해 주십니다. 곧, 성부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회개와 죄의 용서를 위해 고난을 겪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이 구원의 신비의 증인이 되는 힘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라고 설명했다.

교종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을 통해 하느님 말씀의 재발견에 큰 자극을 주었고, 베네딕토 16세 전임교종이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하느님 말씀’이라는 주제로 지난 2008년 세계주교 시노드를 소집한 뒤 후속 권고로 우리 공동체를 위해 불가피한 가르침을 이루는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을 썼다고 떠올렸다. 이 문헌은 특히 전례행위에서 성사적 특성이 부각될 때, 하느님 말씀의 수행적 성격이 심화된다고 말하고 있다.(교종권고 주님의 말씀, 56항) 교종은 하느님 말씀의 주일은 히브리인들과 결속을 강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도록 초대하는 기간에 자리잡게 된다며 “우연히 시기적으로 겹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 말씀의 주일을 거행하는 것은 교회일치적 가치를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진실되고 확고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 따라야 할 여정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교종은 이 주일을 엄숙한 날로 지내기를 권고했다. “성찬례 거행에서 하느님 말씀이 갖는 규범적인 가치를 회중에게 분명히 보여 줄 수 있도록, 성경을 중심에 모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교들은 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의 선포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이 주일에 독서직 수여식을 거행하거나 유사한 성무를 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일부 신자들이 적합한 준비를 통해 하느님 말씀의 참된 선포자가 되게 준비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본당 신부들은 일상생활에서 성경을 통해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통해 성경의 독서 및 심화와 기도의 중요성을 부각할 수 있도록 모든 회중에게 성경 전체 혹은 성경 일부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성경은 단지 일부 사람들의 유산이 아니며, 소수 특권층을 위한 서적의 모음집은 더더욱 아닙니다. 종종 성경을 일부 단체나 엘리트 그룹에게 귀속시키며 거룩한 말씀을 조작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확인됩니다.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흩어짐이나 분열에서 일치로 넘어가는 주님 백성의 책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신자들을 일치시키고 하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사목자들은 듣는 이에게 적합하고 쉬운 언어로 성경을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신자들 대부분에게 이번 기회는 하느님 말씀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각자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거룩한 말씀에 대한 설명을 아무런 준비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설교자들에게는 무엇보다 학문 위주의 강론이나 이질적인 주제로 정도를 넘어 강론을 길게 늘이지 말아야 할 책임이 요구됩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 위해 잠시 멈출 때 강론을 듣는 이들의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사화를 떠올리면서 성경과 성찬례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를 강조했다. 아울러 성경에 대한 구원의 목적, 영적인 차원과 육화의 원칙을 설명하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 ‘하느님의 말씀’ 몇 구절을 인용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역사서나 연대기의 모음집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향해 있습니다. 거룩한 말씀 안에 포함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뿌리는 이러한 근원적인 목적, 곧 우리의 구원을 망각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러한 목적을 위한 것이며, 성경의 본질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을 만나시고 악과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구원의 역사로 꼴 지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성경은 성령의 활동 아래 인간의 방식으로 쓰여진 인간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변화됩니다. 성경 안에 있는 성령의 역할은 근본적입니다. 성령의 활동이 없다면 근본주의적 해석에 빠지거나, 글로 쓰여진 텍스트 안에 갇히는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거룩한 말씀이 지닌 영감을 주고, 역동적이며, 영적인 성격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근본주의적 해석을 멀리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코린 3,6)”

특히 교종은 공의회 교부들의 중요한 발언을 강조했다. "교부들에 따르면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계시가 완성되고 실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성령께서는 계속 활동하십니다. 사실 성령의 활동을 성경의 영감을 받은 본질과 여러 저자들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은 성령의 역할을 축소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을 가르칠 때, 교도권이 성경을 권위 있게 해석할 때, 모든 신자가 성경을 자신의 영적 규범으로 삼을 때, 영감의 특별한 형태를 계속해서 실현시키는 성령의 활동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과 성전(聖傳) 두 가지 모두 계시의 유일한 원천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종종 성경과 성전을 따로 분리하려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적 신앙은 책이 아닌 살아 있는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쓰여진 성경을 성령의 빛 안에서 읽을 때 항상 새로워집니다. 이와 같이 매일 하느님의 말씀으로 길러진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만나는 사람들과 동시대인이 됩니다. 과거에 대한 황량한 향수에 빠지거나 미래에 대한 실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유혹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절대 하느님 말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타성에 젖어 익숙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은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 안에서 살도록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을 떠올립니다. 하느님 말씀은 질식과 메마름으로 이끄는 개인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고 나눔과 연대의 길을 활짝 열어 줍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의 참된 행복을 가르치면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여정에 우리를 동반해주시는 성모 마리아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19년 10월 ‘특별 전교의 달’ 개막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특별 전교의 달’ 시작을 알리는 저녁기도를 주례했다. ‘특별 전교의 달’은 2년 전 전교주일 프란치스코 교종의 권고로 마련됐다. 교종은 온 교회가 2019년 10월 한 달을 선교정신으로 살아가는 특별한 때로 지낼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이를 통해 베네딕토 15세 교종의 교서 ‘가장 위대한 임무’(Maximum Illud) 반포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했다. 교종은 이 교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세상에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에 관한 앞을 내다보는 예언자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 특별 전교의 달 주제는 ‘세례받고 파견된 이들: 세상 안에서 선교하는 그리스도 교회’다. 교종은 이 주제는 교회 선교사명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2017년 제91차 전교주일 담화에서 교종은 교회의 선교사명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의 선교사명은 종교이념을 퍼뜨리는 것이 아니며, 고결한 윤리적 가르침을 제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교회의 선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계속해 복음을 전하시고 활동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은혜로운 구원의 ‘때’를 역사 안에 현존하게 합니다.” 

특별 전교의 달이 시작되는 10월1일은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녀 축일이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다. 10월20일 교종이 주례하는 전교주일 특별미사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봉헌된다. 또한 특별 전교의 달을 맞아 보편교회는 10월 한 달 나눔과 기도의 시간, 선교의 열망을 다지는 시간 등 선교를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특별 전교의 달이 앞으로 3주간 이어질 아마존 지역 교회들을 위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 그늘에 묻힐까 우려하는 일부의 목소리와 관련 교종은 이 두 가지 행사가 별개가 아님을 강조했다. “아마존 주교 시노드를 계기로 이 지역의 선교사업이 더욱 복음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많은 문제와 부당한 착취에 고통받는 아마존 지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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