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주말영화
‘아워 바디’ 다른 걸 이제 시작해도 괜찮아[주말영화 - 정민아]
'아워 바디', 한가람, 2019. (포스터 제공 = 영화사 진진)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공부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고, 모든 것을 매달린 시험을 포기하고 말았으며, 남자친구가 문득 이별을 고한 그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몸뚱이 하나였다. 그래서 몸에 집중하기로 해 보았다. 하루하루 달리기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지치도록 달려 본다. 정성껏 몸을 대하고 키우자 어느새 삶이 그녀에게 들어왔다.

이 영화는 고시공부에 매달리던 어느 여성 청년의 각성과 성장을 그린다. 제목처럼 그녀는 몸을 만든다.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자 몸이 보였고, 몸을 위해 살기로 해 본다. 그러나 그녀가 그러는 이유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싶어서다. 주인공과 함께 떠나는 잠깐 동안의 영화 여정 속에서 우리는 그녀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전하는 감각을 기쁘게 느낀다.

자영(최희서 분)은 대학 졸업 뒤 8년간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면서 공부와 삶에 모두 지쳐 버린 그녀에게서 남자친구마저 떠난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그는 “시험은 포기해도 사람답게 살아라”는 어쭙잖은 충고를 남긴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자영은 어느 날 달리는 여자 현주(안지혜 분)와 마주친다. 생기가 흐르는 탄탄한 몸을 가진 현주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자영은 밤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주류 상업영화가 남자 주인공의 스릴러와 액션으로 채워지고 있는 지금, 독립영화계는 여성감독들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모양새다. 윤가은의 ‘우리집’, 김보라의 ‘벌새’, 유은정의 ‘밤의 문이 열린다’에 이어 한가람의 ‘아워 바디’와 이옥섭의 ‘메기’까지 9월, 10월 영화계는 여성 서사로 풍성하다. ‘아워 바디’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매진하는 여성청년의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녀가 느끼는 삶의 무게를 관객이 함께 느끼도록 한다.

'아워 바디'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자영은 삶의 반경은 그리 넓지 않다. 학교 교감인 엄마와 중학생 여동생, 알바 일을 주는 친구 민지가 연락하는 사람 전부다. 그런 단순한 자영의 인간관계에 들어온 현주는 어느새 자영의 달리기 스승을 넘어 닮고 싶은 여성 멘토가 되어 버린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소유하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생활습관은 꽤나 쿨해 보이고, 술을 직접 담가 먹고, 술을 먹기 위해 운동한다는 말도 멋지게 들린다. 운동으로 단련된 날씬한 신체는 바라만 봐도 기쁨을 주며, 소설가를 지망하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그녀와 나누는 각자의 성적 판타지에 대한 대화는 낯설고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좋은 동네친구가 생기고, 알바해서 번 돈으로 스스로 자립하게 되었으며, 매일 밤 달리다 보니 자영은 몸만 탄탄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감까지 얻는다. 조금씩 생활의 즐거움을 맛보는 사이에 비극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다시 무너져 버릴 즈음, 그녀는 현주와 나누었던 성적 판타지를 이상한 방식으로 실현해 본다. 이 일로 자영은 비난과 오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제 정말 자영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홀로 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워 바디'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큰 재미를 주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점을 성찰하며 깨우치도록 돕는 영화다. 이제 다시 시작해도 된다.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했던 목표를 놓아 버리는 것은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그녀의 판타지가 이상한 방식으로 발현되어서 뜨악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번쯤 엇나가는 자신을 경험하며 그녀는 훌쩍 성장할 것이다. 자기만의 성적 판타지를 현실로 만드는 주인공의 건투를 간절히 빈다.

주인공 자영을 연기하는 최희서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 역할 이후 첫 단독 주연작으로 독립영화 ‘아워 바디’를 선택했고, 이 영화로 그녀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어두운 남방을 걸친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여성을 연기하며 영화를 오롯이 최희서의 영화로 만든 역량이 놀랍다. 마지막에 해방감을 느낀 자영의 기쁨을 연기하는 최희서의 얼굴이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아워 바디'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