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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취약 문제는 비주택만의 문제 아냐"무악동 선교본당 20주년, 주거취약 실태조사 결과발표

(반)지하 주거지에 대한 최저주거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1일 무악동 선교본당(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주거취약계층 주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제도개선 방향을 토론한 자리에서다.

실태조사는 2018년 8월부터 9달 동안 무악동 선교본당 부설 ‘독립문 평화의 집’ 활동가들이 종로구 무악동, 행촌동의 단독, 다세대, 다가구 주택 (반)지하, 옥탑에 사는 306가구를 직접 방문조사하고 이 가운데 44가구를 설문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44가구 가운데 38가구가 (반)지하, 5가구가 옥탑, 기타 1가구다.

무악동은 전체 3000여 세대 중 430여 가구, 행촌동은 2300여 세대 중 2000여 가구가 단독,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화의 집은 이번 조사에서 306가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지하주거의 실태를 살피고, 거주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주거복지 대책을 알아봤다.

이날 발표와 토론회에는 금호1가동, 봉천3동, 삼양동, 장위1동 선교본당 사제와 신자, 서대문 성당 봉사자, 무악동 인근 지역주민, 교남동 주민센터 임직원, 마을공동체 회원 등 모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무악동 선교본당 남해윤 주임신부(예수회)는 인사말에서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 해결이 선교본당의 중요한 설립목적”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그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주거정책 개선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진 축사에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선교본당 20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 역사에 고맙고 축하드린다”며 “주거실태조사는 이웃을 알아 간다는 것이고 이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첩첩이 쌓여 이뤄진 일”이라고 말했다.

나 신부는 “내 삶과 내 것에 머물면 이웃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이웃을 알아 간다는 것은 이웃을 향해 나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며 “이웃을 대상으로 보지 않고 소중한 친구로 받아들여 함께 나아가는, 세심하고 따뜻한 제도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먼저 무악동, 행촌동의 주거환경 실태조사 결과와 제도개선 방향을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책임연구원이 발표하고, 이에 대해 SH(서울주택도시공사) 서종균 주거복지처장, 종로구청 김지호 자활주거팀장, 종로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 무악동 선교본당 류지현 복음화위원장이 토론했다.

21일 무악동 주민센터에서 무악동 선교본당 독립문 평화의 집이 종로구 무악동, 행촌동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제도개선 방향을 토론했다. ⓒ김수나 기자

보일러실, 방공호였던 지하가 주거지로.... 실내환경에선 대부분 최저주거기준 미달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1980년대 주택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건축법 규제를 완화한 정책적 대응으로 (반)지하 주거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건축법이 처음 제정된 1962년에는 반지하 거주가 법으로 금지됐고, 1970년대 지하는 보일러실이나 전쟁대비를 위한 방공호로 쓰였다. 그러다 서울의 인구집중과 주택부족이 심각해지자 지하를 주거지로 쓰는 일이 늘고, 1984년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층 기준 완화되면서 (반)지하가 공식 주거형태가 됐다.

방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의 1/2이 지면보다 밑에 있으면 지하, 위에 있으면 반지하다. 1984년 건축법 개정 전까지는 2/3 이상으로, 땅을 덜 파고도 지하층을 지을 수 있었다. 2002년 뒤로는 주차장 기준이 강화되면서 (반)지하 건설은 거의 줄었다. (반)지하는 전국적으로 약 36만여 가구로 이중 서울, 경기에 90퍼센트가 집중돼 있다.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반)지하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열악한 공간으로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며 “장마철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환기와 채광 부족, 결로와 곰팡이, 특히 방사능 물질인 라돈이 검출되는 등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지하는 면적, 방의 구성 등 설비기준에서는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지만 습기, 환기, 악취, 일조, 대기 등 실내환경에서는 대부분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친다”며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조사에서는 면적과 시설기준만 적용하고 구조성능과 환경기준인 내열, 방습, 방음, 환기, 채광 등의 기준은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1일 무악동 주민센터에서 무악동 선교본당 독립문 평화의 집이 종로구 무악동, 행촌동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제도개선 방향을 토론했다. ⓒ김수나 기자

무악동, 행촌동 (반)지하, 옥탑 주거지 실태

이번 조사결과 (반)지하, 옥탑에 사는 이들은 1인가구, 기초생활수급가구, 고령가구, 저학력 비율이 서울시나 종로구 평균비율보다 높았다. 월소득 100만 원 이하가 80퍼센트, 50만 원 이하는 40퍼센트이며 주거급여수급가구도 80퍼센트로 대부분 고령이라 안정적 일자리가 없다.

이들이 현재 거처에 사는 주요 이유는 저렴한 주거비로 고령과 건강, 주거비의 제약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많았다.

응답자의 59퍼센트가 월세, 전세는 27퍼센트, 자가는 11퍼센트며 전세 보증금은 3500-8000만 원 이하가 79퍼센트다. 월세 보증금은 500만 원 이하, 임차료는 30-40만 원이 가장 많았다.

이중에는 주거급여보다 더 많은 돈을 월세로 내는 등 대부분이 주거비에 부담을 느꼈고, 내는 돈에 비해 현재 주거상태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주거비 부담이 커 식비를 줄여 본 가구는 84퍼센트였다. 82퍼센트가 지금 형편으로 더 좋은 곳을 찾기 어렵다고 답했다.

현재 가장 큰 주거의 어려움으로 대부분이 열악한 시설, 주거비 부담을 들었지만 주거제도 관련 정보를 얻거나 상담을 받은 경험이 없다는 가구가 52퍼센트나 됐다. 이들은 가장 필요한 주거복지로 43퍼센트가 공공임대주택을 꼽았으며, 주거비 부담을 덜고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76퍼센트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발표 및 토론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무악동 선교본당에서 설립 20주년을 축하하며 음식을 함께 나눴다. ⓒ김수나 기자

지하주거에 대한 별도의 최저주거기준 마련돼야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고시원, 여인숙, 쪽방 등 비주택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로 주거문제가 비주택으로 한정돼 논의되나 주거문제는 비주택만이 아니”라면서 “적정 주거의 관점에서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반지하, 옥탑 등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가구도 적극 논의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반)지하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하다고 하지만 주택 상태로 보면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면서 “주택의 상태, 품질 등을 반영한 공정임대료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그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현 생활권 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지원, 주거급여와 기준임대료 상향 조정, 임대주택 공급물량과 대상자 확대를 제시했다. 특히 임대주택 지원 대상을 확대해 비주택은 물론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SH 서종균 주거복지 처장은 “최저주거기준이 마련되기 전이라도 관계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반)지하의 습기나 곰팡이가 집 자체의 문제라면 주인이 고치도록 구청이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제도와 담당 인력을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서 처장은 주거급여나 임대보증금 지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주거에 대한 최소 기준을 정하고 그 이하의 거처를 규제함과 동시에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종로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 “기초자치단체 중심의 주거실태조사는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직접 주거상태를 확인하고 거주자의 의견을 들은 이번 조사는 향후 현장의 사례를 사회적으로 쟁점화하는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거수급 대상자인데도 받지 못하는지, 자녀 상황에 따라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는 없는지, 주거급여 이상을 부담하는 가구가 얼마를 더 초과해서 부담하는지 등을 심층상담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9년 2월 설립된 서울 종로구 무악동 선교본당. ⓒ김수나 기자

무악동 선교본당 복음화위원회 류지현 위원장은 “이번 조사로 활동의 막연함을 없애고 기본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돼 무척 의미가 있다”면서 “스스로 주체가 돼 살아가는 자조적 공동체를 만들고 비적정 주거세대를 위한 활동을 위해 지역주민, 연대단체, 관계기관이 함께 연대하자”고 말했다.

이어진 청중토론에서는 "종로구청과 각 주민센터가 협력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적극 실천해야 한다", "선교본당 등 지원단체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정보를 관계기관이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독립문 평화의 집 강경규 국장은 “이번 조사에서 우리 지역에 가난한 이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지 않고 있었고, 우리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한함을 알게 됐다”면서 “주거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민관이 연대해서 여러 사업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설립 20주년을 맞은 무악동 선교본당과 부설 독립문 평화의 집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지역주민의 어려움을 지원하는 활동부터 시작해 일자리 제공, 주거안정 지원, 의류재활용 사업 등과 재개발 세입자 대책위원회 지원 등을 해 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선교본당은 1998년 삼양동을 시작으로 1999년 금호1가동, 무악동, 봉천3동, 2006년 장위1동에 선교본당이 설립돼 모두 다섯 곳에서 빈민사목을 위한 지역센터로 자리 잡았다.

각 선교본당은 실업대책, 불안정고용구조 개선, 지역사회안전망 구축 활동과 지역사회 연대를 위해 ‘평화의 집’을 운영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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