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유아 세례. (이미지 출처 = Pxhere)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시력을 잃게 된 소년이 한때 삶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게 되어 나중에는 음악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보면,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질문은 자신이 지닌 장애에 대해 아쉬움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앙을 가진 가정의 자녀가 이런 식의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자기는 가톨릭 신앙을 가질 의사가 없었는데 부모가 자신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식의 반응입니다. “엄마, 왜 나를 세례시킨 거야?”라는 질문으로 바꿔 볼 수 있는 거죠. 

만약, 독자분께서 그런 부모라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세례를 주지 말 걸 그랬나.... 후회하실 분도 계실 듯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셔야 할 것은 그것이 좋은 의도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자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축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부모는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의 말씀을 늘 잘 따른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인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구하고 말고는 결국 자녀 자신들에게 달린 일입니다. 언젠가는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자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끝끝내 자기 자신의 길만을 고집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뤄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택하고 말고도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세례를 받았지만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이 부재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살 수 있을 때 그렇게 살더라도, 그 전까지는 부모의 영향을 받고 성장합니다. 세례는 그 영향 중에 가장 바람직하고 의미심장한 신앙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세요.

하느님도 당신이 빚어 놓으신 사람이 당신 뜻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을 강제로 막지 못하십니다. 집 나간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부모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모는 하느님을 아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사람은 자고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끝끝내 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속 기다리시며 돌아오라고 표징을 보내시는데도 끝까지 안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는 길 떠나는 이에게 부모가 장엄한 축복을 해 준 것이기에, 축복을 받은 이가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왜 내게 세례를 주신 겁니까?”라는 불만 앞에서 기죽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참고로, “부모님이 신자가 아닌데 유아세례 받을 수 있을까?”도 함께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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