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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9월 7-9일)[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젊고, 기뻐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십시오”

교종, 남아프라카 세 번째 방문국 모리셔스 미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9일 남아프리카 사목적 순방 마지막 일정인 모리셔스의 수도 포트루이스의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 기념관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교종은 강론을 통해 ‘참 행복’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미사에는 모리셔스 인구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10만 명이 참석했다. 또한 이 장소는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이 방문했을 당시 미사를 집전한 장소다. 이날 교종은 심오하고 상징적 행동으로 30년 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주교 목장을 사용했다. 

강론 내용.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제대 앞에서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바다 건너편이 보이는 이 산에서 우리는 큰 무리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듣기 위해 모리셔스와 인도양 지역 다른 섬들에서 온 얼굴들이 바다를 이뤘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주제는 ‘참 행복’입니다. 참 행복에 나오는 내용들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증’과 같습니다. 누군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대답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를 각자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참 행복을 통해 일상생활에 반영하라고 부르시는 스승님(주님)의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리셔스인의 일치의 사도인 복자 자크-데지레 라발 신부를 기억합니다. 

성 바오로의 말씀처럼 복음화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점을 복자 라발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해방된 노예들의 언어를 배웠고 단순한 언어로 그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르쳤습니다. 복자 라발 신부는 사목적 보살핌을 통해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또 그분은 선교활동과 사랑을 통해 모리셔스 교회에 새로운 젊음과 새로운 삶을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요구받는 것들입니다. ‘선교의 추진력’은 젊고 활력이 넘치는 얼굴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하여금 쇄신의 길로 이끌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으로 단호히 나아가라는 도전을 받을 때, 젊음의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젊은이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언제나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이는 젊은이의 존재를 인식하고, 우리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법을 배운다는 걸 뜻합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는 실업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합니다. 이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입니다. 젊은이들을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노예로 만들어 취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남겨 둡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말할 때는 거리를 두거나 냉담하게 말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의 언어를 배우고,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젊은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줘야 합니다. 오직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만이 타인 안에서 ‘복되다’고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나서는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복되다’라는 단어는 ‘행복’을 뜻합니다. 그것은 ‘거룩함’과 동의어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에 충실한 이들이 자기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참된 행복을 얻는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기쁨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라는 점을 젊은이들이 보게 될 때, 젊은이들은 활기에 차고 용기를 얻습니다. 젊은이들도 이 ‘참 행복’이라는 산에 오르길 원합니다. 젊은이들 역시 예수님의 시선을 만나고 싶어하고, 그분을 통해 참된 기쁨으로 가는 길을 배우길 원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참 행복‘의 산으로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랍니다.

 

“가장 나쁜 노예근성은 자신만 위해 사는 것”

교종, 마다가스카르 100만 군중미사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8일 남아프리카 두 번째 방문국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 외곽 야영장에서 100만 군중이 참례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했다. 이날 연중 제23주일 미사 강론에서 “돈과 권력이 주는 거짓 안정이나 자기 부족이나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갇히지 말고 새 생명에 맛들이기 위해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고 강조했다. 이날 수많은 사람은 황토로 뒤덮인 야외에서 밤을 새며 오전 미사를 기다렸으며 아이들과 함께 강한 바람과 추위를 견디면서 돗자리와 담요로 무장한 채 프란치스코 교종 도착을 기다렸다. 미사가 진행된 수아만드라키자이 교구 야영장에는 전날 철야기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에 더해 100만 명이 운집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조밀하게 모여 축제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강론 내용.

오늘 복음(루카 14,25-33)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권력이나 돈의 추구, 가족이나 부족으로 이뤄진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갇히지 말고, 시선을 들어 올려 자기 삶의 중심에 ‘나’가 아닌 ‘하느님’을 모시고 형제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주변을 바라봅시다. 얼마나 많은 남녀노소가 고통을 겪고 있으며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겼는지요! 이는 하느님 계획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형제애의 정신이 승리하도록, 자신의 존엄이 이해되고 수용되며 인정받게끔 각자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교만한 개인주의와 우리의 닫힌 마음에 예수님의 이러한 초대가 얼마나 시급합니까! 형제애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열린 옆구리 상처에서 흘러나오고 바로 거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가족으로 태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요구’의 지평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주님과 만남의 기쁨의 빛에 비추어 볼 때만 모든 그리스도인의 포기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새 생명이란 단순히 혈연관계, 혹은 어떤 부족이나 특수문화에 대한 소속으로 축소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스캔들에 해당하는 불의로 변질되지만 사실 주님의 초대는 가문이나 문화적 출신을 넘어 타인을 형제로 바라보고 그의 삶에 공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옳고 선한 것의 결정적 기준이 될 때 우리는 ‘특권과 배제의 문화’, 다시 말해 ‘편애사상과 연고주의,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부패로 이어지는 행동들을 축성하게 됩니다.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착취를 겪는 비참한 빈곤이 팽배한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은 인간존엄이 짓밟힌 상황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무관심하게 있어선 안 되며, 오히려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원한 품고 불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가장 나쁜 노예상태‘(노예근성) 중 하나인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것‘에서 해방시키시며 하느님나라의 도래를 준비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타인을 위한 아무런 자리도 남겨 놓지 않고,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 갇히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작은 세상에 갇히면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며, 그분 사랑의 달콤한 기쁨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선을 행하려는 열정도 더 이상 두근대지 않습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품위 있고 충만한 삶을 위한 선택이 아니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도 아니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도 아닙니다. 또 폭력을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나라를 개인의 이득으로 간주하거나 이데올로기에 이끌리는 현상과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가 폭력, 인종차별과 살인, 테러리즘과 사회적 소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이나 종교를 남용하게 만듭니다. 

복음 메시지를 희석시키거나 축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대화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참된 길로, 상호협력을 행동 강령으로, 상호이해를 방식과 기준으로 채택하면서 형제애와 연대의 역사를 건설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재능과 개인의 영광마저도 사실은 하늘나라에서만 그 이름을 알게 될 이들의 ‘수없이 많은 침묵의 손’들과 하느님이 서로 만들어 낸 선물의 결과라는 것을 인식하라는 초대도 주님의 요구 중 하나입니다. 재산을 축적하려는 경쟁이 이기주의와 부도덕한 방식으로 악화되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길로 변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기 위해 오신다는 것을 아는 데서 생기는 ‘새 생명”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한다면, 비로소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요구가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됩니다. ’겸손한 현실주의‘, 곧 그리스도인의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마다가스카르가 ’복음이 생명이 되는 장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이날 제대 위에는 선교사 축출과 박해시대인 1800년대 말 어려운 시기에 교회를 이끌었던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교육자, 교리교사, 평화의 중재자인 복자 라파엘 루이스 라피링가의 유해가 현시되었다. 교종은 전날 9월7일 복자 라피링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복녀 빅투아 라소아마나리보 무덤에 가서 잠시 기도했다. 미사 말미에 안타나나리보 대교구장 라자나콜로나 대주교는 교종과의 만남을 위해 모인 마다가스카르 국민의 큰 기쁨을 대신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책임과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한 교종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교종은 삼종기도를 통해 미사 말미에 인사를 나눴던 라조엘리나 마다가스카르 대통령과 사도적 순방의 좋은 결과에 기여한 모든 이에게 감사하면서 마다가스카르를 성모님께 맡기며 삼종기도 훈화를 마무리했다. “이제 인류를 위한 구원의 시작인 성모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오늘, 기도 안에서 거룩한 동정녀에게 향합시다. 여러분이 어머니요 주보성인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께서 평화와 희망 안에서 마다가스카르의 여정에 항상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살아 계신 주님의 현존을 증거하십시오”

교종, 마다가스카르 사제, 수도자, 신학생들에 촉구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8일 마다가스카르 사제, 남녀 수도자, 성직자, 신학생, 남녀 수련자 및 청원자들과 만나 기도와 찬미의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을 촉구하고, 성 미카엘 대학에서 열린 이 행사를 끝으로 이틀간의 마다가스카르 사도적 순방 일정을 마쳤다. 1888년 예수회 프랑스 선교사들이 설립한 성 미카엘 대학은 이 지역 최고의 고등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교종은 먼저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헌신하는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했다. 교종은 “우리 눈에 문제점으로 보이는 것들조차도 살아 있는 교회, 역동적인 교회, 주님 현존의 표징이 되고자 애쓰는 교회를 암시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강조했다. 

훈시 내용.

과거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분들의 선교유산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복음전파를 위해 마다가스카르를 찾은 수많은 선교사뿐 아니라 선교사, 수도자들이 마다가스카르를 떠나야만 했던 박해의 시기에 신앙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킨 수많은 평신도를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파견하신 일흔두 제자를 봅시다. 제자들은 빈손으로 떠났다가 보따리 가득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채워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여러분은 마다가스카르 섬 곳곳에 복음을 빛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다수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며, 사목활동과 생활에 필요한 재원을 비롯해 수도, 전기, 도로, 통신장비 등 필수설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신자들 곁에 함께하기로 선택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봉헌자들이란 넒은 의미에서 주님의 마음, 신자들의 마음 가까이에 머무는 법을 아는 사람을 뜻합니다. 부디 복음화의 향기를 잃지 마십시오. 복음화의 과제를 실천함에 있어 언제나 쉬지 않고 주님을 찬미할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가 ‘성공’이나 ‘실패’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유용성이나 우리의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유혹에 굴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결국 우리 교회 역사와 여러분의 역사를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는 희생과 희망과 일상적 투쟁의 역사이고 봉사에 헌신하고 부단한 노고도 마다하지 않은 삶의 역사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기쁨, 선교의 결실 대부분이 찬미하는 삶을 살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초대 위에 이뤄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을 경배하고, 가능하다면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진리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 또한 여러 가지 면에서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근심, 걱정에 압도당하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삶은 확고한 토대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파견됐다 돌아온 일흔두 제자들이 느꼈던 기쁨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계획에 참여하고 그분의 삶에 함께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또한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하도록 사람들을 이끌고, 복음을 가르치고, 병자를 방문하고 화해의 위로를 전할 때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을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악에는 기도와 찬미로 맞서십시오. 우리가 굶주린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줄 때마다, 홀로 남아 절망에 빠진 어머니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때마다,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교육을 제공해 무지를 이겨낼 때마다, 모든 창조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것의 오용 및 남용을 방지하려 애쓸 때마다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고 마실 물이 없는 가정에 식수를 제공하는 행위는 하느님 승리의 표징입니다. 많은 사람의 건강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악을 상대로 승리함을 상징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많은 경우 영성생활도 일부 신심행사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 안에 투신하며 복음화를 위해 열정을 쏟도록 북돋워 주지는 못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종교전문직 종사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악을 정복하고 선교사명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하는 복음화 과제와 청빈을 바탕으로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는 고난과 의혹에 대처해야 합니다. 선교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행복한 교회, 우리 주님의 향기로 가득한 교회, 하느님 마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 곧 세상에서 소외당한 이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기뻐하는 교회를 일구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표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가난은 숙명이 아닙니다”

교종, ‘우정의 도시’ 아카마소아 방문

마다가스카르를 순방 중인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8일 보잘것없는 이들에 대한 연대와 복음적 사랑의 모범인 아카마소아를 방문했다. 아르헨티나 선교사 페드로 파블로 오페카 신부가 시작한 가난한 이들에게 거주할 집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30주년을 맞았다. 교종은 “여러분의 울부짖음이 여러분과 여러분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노래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교종이 ‘우정의 도시’ 아카마소아에 도착하자,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던 큰 천막 아래 수백 가족들과 어린이들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 전교회 소속 겸 공동체 설립자 페드로 파블로 오페카 신부 인사말과 13살 소녀 판니의 증언을 통해 깊은 희망이 담긴 만남이 시작됐다. 

교종 연설 내용.

이 위대한 사업현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아카마소아는 가난한 백성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현존의 표현입니다. 간헐적이고 우연적 현존이 아닌 당신 백성 가운데서 항상 머물고 살기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사실 이 마을은 그 자체로 용기와 상호조력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수년 동안 고된 노동을 했습니다. 그 토대에는 ‘산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적 행동으로 옮긴 깊은 신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로지 불안정만 바라봤던 곳에서 가능성을 바라보게 하고 그저 숙명만 바라봤던 곳에서 희망을 바라보게 하며, 많은 이가 죽음과 파괴를 말하던 곳에서 생명을 바라보게 해 주는 신앙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가치에 대한 교육 덕분에 오페카 신부님과 함께 모험을 시작했던 첫 가족은 책임, 규율, 정직,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풍요로운 보물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꿈이 개인의 발전뿐 아니라 특별히 공동체의 발전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페카 신부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각자가 자기 자신만 위해 사는 것만큼 더 나쁜 노예상태(노예근성)도 없습니다.

가난이라는 불행 앞에 결코 굴복하지 마십시오. 편하게 사는 삶이나 자신 안으로 움츠러들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선배들이 실현한 이 일을 앞으로 끌고 나가야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일을 실행할 힘은 여러분의 믿음 안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삶 속에서 빚어진 생생한 증언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선물을 여러분 안에서 꽃피우십시오. 형제자매를 위한 여러분의 봉사에 너그럽게 투신하도록 도와 달라고 주님께 청하십시오. 이와 같이 아카마소아 공동체는 미래 세대를 위한 본보기이자 특별히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활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현재와 미래 세대에 계속해서 증언하는 만큼 하느님께서 그 활동을 발전시켜 주실 겁니다. 여러분의 가난과 사회적 소외에 반대하는 노력이 인간 존엄을 위해 항상 필수불가결한 신뢰, 교육, 노동, 책임에서 시작해 마다가스카르 전체와 세계 다른 곳까지 확산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마음 간직한 목자가 되십시오”

교종, 마다가스카르 주교단에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마다가스카르 도착 당일인 9월7일 안타나나리보 소재 안도하로 주교좌성당에서 마다가스카르 주교단을 대상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목자’를 주제로 연설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21개 교구와 5개 대교구에 30여 명의 주교들이 있다. 교종은 마다가스카르를 ‘모순의 땅’으로 묘사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 내용.

마다가스카르는 ‘가난이 널리 퍼진 부유한 땅’입니다. 생명과 인간존엄을 존중하는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 그리고 불평등과 부패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목자의 과업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교들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주교들은 희망 안에서 신앙의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그의 보살핌에 맡겨진 밭을 사랑하는 것을 결코 중단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혹을 받더라도 씨앗 뿌리기를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습니다. 복음화의 과제란 각 인간 존재의 온전한 증진을 암시하고 요구합니다. 종교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만 가둬져 있다거나, 천국을 위해 영혼을 준비하는 것으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는 목자가 종교적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계층의 시민들이 직면한 도전 앞에서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한 목자가 자신의 보살핌에 맡겨진 사람들 삶에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목자가 되려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어린이들, 가장 취약한 이들, 학대와 착취의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가까이 머물러야 할 특별한 의무를 지닙니다.

목자란 모든 세부사항을 일일이 통제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계획을 위해 충분한 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때가 와서 그것이 익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합리적인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러한 충실성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형제 사제들에서 시작해 하느님의 자녀들과 가까이 있는 목자로 만듭니다. 우리의 사제들은 주교들을 형님이자 아버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사제들의 여정에서 격려와 지지를 해 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영성적 부성’입니다. 지구를 돌보는 것 또한 수확시기를 기다리며 일꾼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을 뜻합니다. 목자들로서 여러분은 축성생활과 사제생활 성소에 대한 진실성을 보장하는 시급한 과제가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주교단이 주님의 밭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풍성한 수확을 위해 믿을 만하고 경건한 일꾼들이 양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 여러분이 남녀 평신도를 위해 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이 땅의 소금이 되고 이 세상의 빛이 되라는 사명 안에서 평신도들이 홀로 고립되지 않도록 진행하고 있는 모든 계획에 감사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평신도 역시 마다가스카르의 사회변화와 교회생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밭을 위한 이 큰 책임은 우리 마음과 정신을 열기 위한 도전이 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은 형제적 대화에 참여하고 재능을 나누며 인도양의 지역교회들과 더욱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이는 환경보호나 이민문제와 같은 비슷한 사목적 문제가 효과적인 접근을 강구하는 데 있어 성찰을 공유하고 행동을 조정하는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주교좌성당을 두 여성들이 어떻게 보호하는지 보십시오. 먼저 복녀 빅투아 라소아마나리보는 어려운 시기에 신앙을 지키고 전파했으며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또한 여기에 모신 성상이 계곡과 언덕으로 뻗은 팔이 모든 것을 껴안는 것처럼 보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이 두 여인에게 우리 마음을 키워 달라고 청합시다. 하느님처럼 이 땅에서 잊혀진 이들을 느낄 수 있는 모성적 연민을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고 청합시다. 우리가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청합시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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