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교회] 7월 19일자 2657호 <가톨릭신문>과 1028호 <평화신문>

일단 공부하는 의미에서 <가톨릭대사전>를 펼쳐보자. 《교황》이란? ‘명칭의 원어 Papa(아버지)는 본래 지역 교회의 최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을 부르던 말인데 중세 초기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다.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이다.’ 《교황의 직무》는?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과 신품권,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과 통치권으로 대별된다’.

그렇다면 오늘의 주제인 《교황회칙》이란? ‘전세계 교회에 대해 교황이 발표하는 공식적 사목교서를 말한다. 주로 교리적이거나 도덕적, 혹은 규율적 문제를 다룬다. 회칙이 교황의 사목적 권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정착된 것은 교황 비오 9세부터였다. 처음에는 고위성직자나 교황청에 우호적인 교회관할권자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교황 요한 23세는 <지상의 평화>(1963. 4. 11)에서 ‘선한 뜻을 가진 모든 이들’로 그 대상을 넓혔다. … 가톨릭 신자는 그 교리 및 도덕적 내용에 동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별히 이러한 회칙 중 “당대의 인간과 국가,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문화적 사안에 대해 교황이 복음에 기초해 그리스도의 교훈을 밝히는 것을 ’사회회칙‘이라 부른다.”(<평화신문> 7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265대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2번의 회칙을 발표하였다. (2005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007년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그리고 이번에 그의 세 번째 회칙이자 첫 번째 사회회칙인 <진리안의 사랑>을 발표하였다. 특별히 이번 회칙은 지난 6월 29일 서명하고 7월 7일 발표한 시점이 이탈리아에서 개막된 G8(선진8개국) 정상회담 전날이어서 언론들의 관심을 끌었다. 언론들은 이번 회칙 안에 언급한 내용이 교황의 평소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상당부분 진보적인 측면이 많아 큰 관심을 표명하였다. 심지어 몇몇 외신들은 이번 회칙을 좌파 문서(left-wing text)라고 했다고 알려졌다.

교계신문들은 회칙 발표와 즈음한 소식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가톨릭신문>은 3면 박스로 처리하여 회칙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다. <평화신문>은 보다 적극적으로 보도를 했다. 1면에 전체 소식을 전했고 7면에서는 역대 사회회칙을 소개했으며, 8면의 전면을 할애하여 회칙을 해설했다. 또한 사설을 통해 ‘새 사회회칙, 번역을 서둘러야’를 말했다.

교황의 사회회칙을 토대로 사회교리가 발생되며 그 교리가 교회구성원 모두의 손과 발로서 그리고 온 마음으로 이행되고 현실화 되어질 때 교황에게 맡겨진 예언직은 완성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황이 바티칸의 사도좌에서 문서에 서명한 것이 그에게 주어진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의 완성이 아니라 그의 말이 주교들과 사제들, 수도자와 평신도라는 교계제도에 포함된 구성원뿐 아니라 ‘선한 뜻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효과적이고 신속히 전달되고 행해지는 것이 교도권의 완성이다. 교황주일을 맞아 본당마다 실시하는 2차 헌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교황의 말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선임 교황이었던 요한바오로 2세의 재임시절 교황의 요청에 따라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간결하지만 완전한 개관이라 부르는 <간추린 사회교리>란 책을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가 2004년 출간한 바 있다. 한국교회는 신속하게 이를 2005년 10월에 번역 출판하였다. 이어 2006년 <사랑의 문명을 향하여>란 시리즈로 <더 간추린 사회교리>· <다시 간추린 사회교리>와 함께, 같은 제목으로 된 소공동체용 교재도 2007년 출판하였다.

아마도 이번에 발표된 회칙 역시 곧 번역 출판될 것으로 기대한다. 언제나 사회회칙의 중심인 ‘정의’와 ‘공동선’은 물론이지만 특별히 이번 회칙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경제위기· 빈곤 퇴치· 환경보호· 이민정책· 개발원조· 식량과 물에 대한 권리· 부정부패· 노동자 착취· 부국들의 횡포· 에너지 소비억제’ 등에 대한 내용들은 현실 속에서 부딪치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간추린 사회교리>가 출판된 이후 ‘사회교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교회는 전했는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책의 출판목적이 아니었다면 또한 간추리고, 더 간추리고, 다시 간추려 교회와 사회 안에 공동선의 정신이 얼마나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에 대한 교회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비효과적이거나 용두사미가 되었다면 이 문제에 대한 지적과 대안 제시는 교계신문을 포함한 교회언론의 자리여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교황들이 발표하는 사회회칙에 근거하여 ‘공동선’과 ‘정의’로 살고 있다면 교회와 관련 있는 사업장과 학교들, 기관과 단체들, 교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 그리고 우리의 가정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게 할 일이다. 그럴 때 교황의 사회회칙은 발표될 때마다 세상의 탄성을 자아내게 할 것이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대로 하더라도 망하지 않고, 더불어 살며, 행복할 수 있다고 세상이 믿어줄 것이다.

그 회칙 안에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용산’의 해결방안 역시 들어있다. 우리가 회칙을 교황이 지나가며 하는 의례적인 말로 삼는다면 불행하게도 ‘용산’은 시도 때도 없이 교회와 예수의 눈앞에서 반복할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김유철(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경남민언련 이사,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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