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태안군 의항리 기름유출 현장을 다녀와서-

“바다의 고기도 씨가 말라간다.”

지난 12월 15일(토요일) 서울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서울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과 연대하여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수욕장으로 1차 기름제거 작업을 갔습니다. 오전 6시 30분 서울을 출발해, 10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의항리 해수욕장은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짠 내는 나지 않고 진한 기름 냄새만이 느껴졌습니다. 삭막한 이 모습을 보며 저는 호세아 4장 3절 “땅은 메마르고 주민은 모두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야위어 간다. 바다의 고기도 씨가 말라간다.”는 구약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원유 유출사고의 원인

이번 원유 유출의 원인은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지난 12월 7일 07시 15분 경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 서방 5마일 해상에서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 T-5가 예인중인 부선(艀船)이, 그 전날인 12월 6일 19시 18분부터 정박 중이던 홍콩 선적의 ‘HEBBI SPIRIT'와 충돌하여 유조선 화물창이 부서지며 유류 유출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겨레를 제외한 조ㆍ중ㆍ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언론들은 이번에도 사고 배가 ‘삼성중공업’ 소속이란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당시 현지 기상은 파고가 2-4미터 높이로 일어, 풍랑주의보 발효 상황이었기에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 T-5는 운행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두통과 구토

우리 일행은 비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씨 때문에, 방제복과 고무장갑 그리고 고무장화를 신고 잠시 기다린 후, 이번 기름 유출사고로 흘러 온 기름을 닦아내기 위해 사용된 흡착포와 기름 묻은 모래를 담은 자루를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원유를 빨아들인 흡착포와 모래의 무게는 상당했고, 두 시간 넘게 자루를 옮기다 보니 팔목은 아프고, 두통과 구토가 나올 정도로 냄새는 심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일은 자원봉사자의 일이 아닌, 용역업체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복구 현장의 지휘계통이 정말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뒷맛이 남기도 했습니다.


해변가 기름 제거

오후에는 의항리 해변가로 나가, 모래에 묻은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해변가에는 처음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기름찌꺼기가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래에 묻은 기름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벗겨내고, 그 기름찌꺼기를 쓰레받이에 담아 다시 자루에 담았습니다. 모래를 조금 만 파 들어가면 다시 검은 기름에 오염된 모래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미 기름 덮인 모래 위로 모래가 몇 번 다시 쌓인 형태였습니다. 한참을 의항리 해변가의 기름을 제거하다가, 다시 진행하시는 분의 이야기에 따라 장소를 옮겨 인근 바닷가 돌에 묻은 기름을 닦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미 흡착포도 떨어진 상황이어서, 나눠준 폐 플랑카드로 돌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고, 돌 사이사이에 고여 있는 바닷물에 뜬 기름을 닦아주었습니다.


죽음의 바다

돌을 뒤집으면 어김없이 검은 기름이 묻어있었고, 돌에 붙어있던 수많은 조개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습니다. 두 시간 넘게 돌을 닦으며 유일하게 찾은 생명체는 작은 새끼 게 한 마리였습니다. 오후 내내 무릎 끓고 바닷가 모래와 돌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자본이, 아니 석유 중심의 현대 산업문명이 저지른 죄와 잘못을,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작은 사람들이 묵묵히 닦아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해변가 기름찌꺼기 제거>
원유 유출 사고의 근본원인과 가치관

이번 원유유출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과 가치관은 석유를 중심으로 하는 ‘인간중심적 편리주의’입니다. 인간중심ㆍ석유 중심의 황금만능주의와 편리주의, 전쟁, 그리고 개방화와 세계화라는 외피 속에 감추어진 생존경쟁의 모순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고, 그 결과 이 번 태안 기름유출사고처럼 우리 삶의 바탕인 흙과 땅과 공기 그리고 자연 만물이 죽어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환경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한 ‘린 화이트 2세’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땅을 다스려라’라는 말의 잘못된 해석, 즉, 땅을 지배하고 마음대로 부려도 된다는 잘못된 해석이 서구 사회의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강화해주었다는 의미에서 기독교 책임론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관점이 서구 제국주의와, 오늘날 물질문명 중심의 자본주의를 강화시켜 주었고, 사상적 배경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다스림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다스림’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바로 ‘보살피고 가꾸는 다스림’입니다. 이날 현장에서 한 자원봉사자를 만났습니다. 이분은 모래밭에서 자루를 매고 나르는 저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천주교에서 오셨어요?” 그렇다고 말하자, 그분도 경기도 여주에 사는데 신자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웃으며 “혼자서 삼일!”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쳐다보니 “혼자서 삼일동안 일했는데 심심해서 친구를 불렀다”며 친구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함께 자루를 나르고 묶으며 일했습니다.

세상과 자연은 석유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문명과, 그에 복무하는 삼성중공업과 같은 대자본이 죄를 저지르고 망가뜨리지만, 그 검은 죄를 닦아내고 위로하고 자연과 화해하는 것은 바로 “혼자서 삼일!”을 이야기하는 우리 곁의 작은 이웃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사람들이 우리시대에 정말 필요한 ‘새로운 다스림’인 모든 창조물들과 화해하고, 가꾸고, 보살피는 삶을 살아갑니다.

 

/맹주형 2007-12-17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