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위안부 주체적, 장기적 회복 중요

‘로힝야와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모임’이 아시아의 전쟁 및 분쟁지역에서 사회통제, 민족 간 권력유지를 위해 벌어지는 집단학살과 성폭력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를 마련했다.

23-24일 서강대에서 열린 이 회의 첫날에는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로힝야 등 소수민족 여성의 집단 성폭력 피해 및 인권침해, 일본군 위안부와 아시아의 인종주의 문제를 다뤘으며, 둘째 날에는 이에 대한 책임자 처벌 방안 등을 논의했다.

첫날 두 번째 발표에서는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 수용소에 사는 여성들이 겪은 다양한 폭력과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일상이 소개됐다.

로힝야는 미얀마에 주로 사는 소수민족으로 종교는 이슬람이다. 미얀마의 주류 민족은 버마족으로 종교는 불교다. 2017년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족 집단학살과 강간, 방화를 자행해 난민 90만 명이 고향을 잃고 방글라데시의 난민 캠프에서 생활한다. 미얀마 정부는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피해 생존자 보호와 학살책임자 처벌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여성 난민의 비참함 넘어 삶에 대한 그들의 의지와 희망의 목소리 들어야

발표자들은 실향민 여성의 상황이 비참함으로 고정되면 안 된다며, 역경을 이겨 내려는 여성들의 사투와 일상을 회복하려는 그들의 주체적, 창의적 모습에 주목하자고 말했다.

17살에 엄마, 자매들과 함께 집단 강간을 당하고 도망가다 또다시 성폭행과 폭력을 당했던 한 소녀, 수용소에서 가장이 돼 봉제로 가족을 먹여 살리면서도 무능력한 남편들에게 폭행당하는 아내들의 사례가 소개됐다.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과정 연구자인 파하나 라만은 수용소에서도 이어지는 젠더화된 폭력에도 기지로써 생존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의 회복력을 강조하며, 자신들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일상을 세우려고 애쓰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 줬다.

그는 군인에 의한 집단 강간이라는 기억 속에서도 하루 작업을 마친 뒤 친구들과 둘러앉아 화장하고 손을 장식하며 즐거워하는 소녀들의 행복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난민 여성들은 스스로 정신적 치유를 이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괴된 삶의 조각을 끌어들여 정상적 삶과 일상을 재구축하는 것이 자신의 인권을 지키는 행위”라며 “주체적 관점에서 여성 난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며, 비참함에 대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살고 싶은 의지와 희망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참가자는 “강간, 성폭력은 잔혹한 범죄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들이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성 평등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 인권활동가 라히마 베검은 여러 소수민족에서 여성들이 납치와 강간을 통한 강제결혼을 당하며, 여성을 가축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성 평등 문제를 넘어 인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수민족만이 아닌 도시에서도 벌어지는 소녀 납치는 가축을 훔진 정도의 처벌에 그치기 때문에 강력한 처벌법이 마련돼야 하며, 여성납치와 강간이 남성다운 행동으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남성에 대한 상담과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며, 상담과 시민의식 제고, 남성 교육을 통해 사고방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은 “위안부 피해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덤까지도 말하지 말라며 침묵을 강요했던 것은 바로 가족, 동네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말해도 2, 3차 가해에 노출돼 운동가로 나서기 어려웠다”면서 “성폭력 문제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하고, 피해자의 남편이나 피해자가 사는 지역의 남성 집단이 이 여성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도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피해자의 미투에 위드유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피해당사자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가가 되도록 지원하고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3-24일 서강대에서 로힝야 피해 생존자 보호와 학살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회의가 열렸다. ⓒ김수나 기자

분쟁지역 성폭력, 소수민족 박해와 사회통제 도구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출신 인권변호사 킨 마이 웅 씨는 사회의 권력관계를 성폭력과 관련한 젠데 문제로 접근하면서, 미국이나 미얀마처럼 다민족사회에서는 여성을 두고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결혼이나 성폭력과 같은 방식으로 권력관계가 구조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역사에는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하거나 결혼해 혼혈을 낳아 백인과 백인문화를 멸종시킬 것이란 신화가 있었고, 실제 몇 년 전까지 인종 간 결혼이 금지됐다”며 “이러한 생각은 유색인 남성을 가해자로 만들어 그들을 박해하는 것을 정당화했고, 이는 미얀마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로힝야 여성은 미얀마 전반의 권력관계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킨 마이 웅 변호사는 “비불교 로힝야 남성이 불교계 비로힝야 여성을 강간해 로힝야족이 많아져 버마족이 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그러나 절대다수가 불교에 기반한 버마족인 상황에서 몰살당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또 로힝야인을 동물화한 사례로, 실제 언론에서 로힝야 여성이 가족을 꾸리는 것을 가축을 키우는 것처럼 묘사한다고 했다. 불교계 버마족이 로힝야 여성의 출산을 위협으로 여기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교계 여성이 로힝야 여성과 비불교계 남성에게 폭력을 당할 것이란 불안감도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인식은 로힝야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근거가 되면서, 성폭력이 사회통제를 위한 전략적 방법으로 쓰이고, 버마족 불교계 남성이 소수민족을 통제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전시 여성, 인간 아닌 군수물자.... 피해 경험 넘어 장기적 회복으로

성평등과 여성인권, 폭력예방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타이페이 여성구호재단’의 테레사 데렌 예 의장과 유첸웨이 이사는 타이완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2차대전 때 프랑스 주둔 미군이나 일본이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식민지에서 끌고 온 여성을 군인의 사기진작, 전투력 상승을 위한 군 물자처럼 이용했다”며, 1992년부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파악했는데, 타이완 여성만 해도 2000명 정도로 그중 신고자는 59명, 신고자 중 생존자는 이제 2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는 피해를 넘어 그들의 회복력, 평화 찾기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 가해자, 타이완 사회, 미래의 평화 모두와 화해를 이뤄야 한다”면서 “인권활동가들이 우리 어깨를 밟고 올라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첸웨이 이사는 피해자의 긴급한 필요는 물론 장기적 안목에서의 회복에 초점을 두는 이 단체의 장기회복 워크숍과 활동을 소개했다.

그는 “성노예 피해 할머니나 가정폭력 피해자는 고립감, 수치심, 배신감 등을 평생 겪었다. 피해로부터 회복, 나아가 사회에서 소외와 외면, 배신당했던 경험도 치유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타이완의 시민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 요구는 분명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를 조직하고 주도했음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날인 23일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사회통제와 민족 간 권력유지 도구로 쓰이는 집단학살과 성폭력 문제를 짚어 봤다. ⓒ김수나 기자

타이완은 그간 일본군 위안부 세계 기림일 때마다 일본대만교류협회 앞에서 진행한 시위, 각종 퍼포먼스, 2016년 타이완 최초로 만들어진 ‘아마(AMA) 박물관’과 나치 학살에 대한 특별전과 여성 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쳤다. ‘아마’(阿嬤)는 타이완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부르는 말이다.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박상훈 신부는 국제적 난민, 이주민 문제 해결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단체야말로 난민을 돕고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특히 가톨릭은 전체적, 인간 중심적 사고와 인간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졌기 때문”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관련 부서를 교황청 안에 구성해 난민 문제를 인도주의를 넘어 인간개발의 문제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난민, 이주자에 대한 관심은 단지 이들만이 아닌 존재의 주변부에 있는 모든 취약계층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난민과 이민은 인류, 인간성의 문제로 다른 이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세상의 불의와 전쟁으로 인한 대가를 취약한 이들이 대신 짊어지고 있다. 세계적 성장 여정에 모든 이들이 인간개발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로힝야를 비롯해 난민과 소수자에 대한 교육 지원 방법을 논의했다.

킨 마이 웅 변호사는 “난민 수용소에서도 일상적으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식교육이 아니더라도 로힝야족들이 미얀마로 돌아가 사회 구성원이 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에 공교육의 요소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테레사 의장은 “한 아마가 자신이 위안부가 된 순간 삶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교육으로 내 안에 있는 힘을 다시 끌어내 자신의 주체성을 세웠다고 말했다”면서 “사회 구성원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돼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와 필요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우리 단체의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이 모임에는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등 천주교 6개 단체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광주인권평화재단 등 모두 18개 시민사회, 종교단체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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