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태극기 나무. (이미지 출처 = Flickr)

국혼(國魂)을 생각하며

- 닐숨 박춘식

 

달력에서 뻑뻑 지우고 싶은

8월 29일 국치일, 그 날짜를 응시하며

무너지는 통한의 울분을 꾸역꾸역 삼킵니다

 

고구려(高句麗)라는 글자를 크게 적어

내려 보다가 들고 보다가 번쩍 높이 올려보다가

천제(天帝)에게, 홍익 단군 시조에게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곧장

이 땅의 생혼(生魂) 각혼(覺魂) 영혼(靈魂)들이

모든 물력(物力)과 더불어 반만년을 연이어 가며

국혼을 애지중지 감싸주시던 조상들에게 머리 숙입니다

 

이제, 국혼을 한반도 곳곳 가득 넘치게 하여

지브롤터의 아름다운 해변까지 품는 화기(和氣)로

동-서-남쪽의 격랑을 끝까지 파헤치는 새 기운으로

더 강강하게 모시기로 다짐합니다

2019년 8월 29일, 이른 아침에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9년 8월 26일 월요일)

 

초기 한국 천주교 서적에서, 생혼(生魂) 각혼(覺魂) 영혼(靈魂)이란 단어에 전율을 느끼며 유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탐구하면서 세례를 받은 학자들이 끝내는 순교로써 한반도의 천주교의 초석이 됩니다. 식물의 생혼과 동물의 각혼 그리고 사람의 영혼은, 지구를 생명 충만한 신비로운 터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온 놀라운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 민족과 한 나라의 보이지 않는 중심에는 국혼(國魂)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상으로 ‘얼’이나 ‘기상’이나 ‘민족혼’ ‘민족정신’ 또는 ‘뿌리’라는 말까지 있지만 그중 가장 무게를 느끼는 단어로 ‘국혼’이란 어휘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모든 존재는 ‘한반도의 국혼’으로 강하게 보존되고, ‘한반도의 국혼’으로 놀라운 힘을 키워 가야 함을 새삼 묵고(黙考)하면서, 국치일을 큰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신앙인들의 가장 무서운 힘은 기도임을 잠시라도 잊지 마시고, 꾸준히 나라를 위한 기도를 바치시기를 허리 굽혀 청하고 싶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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