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장군의 솔선수범

중국 춘추전국 시대, 병법가 ‘오기 장군’과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오기 장군은 매 전투에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타지 않고 병사들과 같이 걸어서 싸움에 임했고, 매번 싸움의 앞자리에서 싸워 모든 병사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오기 장군이 중산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사병 가운데 악성 종기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오기 장군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무릎을 꿇고 종기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병사의 모친은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마을의 한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니, 장군이 당신 아들의 종기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주었다면 감격스러운 일이지 왜 대성통곡하는 것이요?' 그러자 그 모친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오기 장군이 그 애 아버지의 종기도 빨아준 적이 있었죠. 그 애 아버지는 그것에 감격하여 전투의 선봉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 애도 그렇게 죽을 것이 뻔하니 내 어찌 대성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슬픈 것입니다.'” 병사를 감동시키면 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병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기 살기 식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솔선수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잭 웰치의 ‘실행(Execute)’

미국의 유명 대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CEO 잭 웰치는 말합니다. “최고 경영자의 임무는 구상이 아니라 실행입니다. 경영자가 하는 일은 사람을 다루는 일입니다. 사업의 가치 평가니 과학적 비즈니스 전략이니 모두 그럴듯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모두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기획은 실행의 도구입니다. 실행만이 경영자의 과업입니다.”

미국의 경영학석사(MBA) 과정 학생들을 위한 초청강연에서 말한 잭 웰치의 이야기입니다. 학생들은 대성공을 거둔 경영자에게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전략으로 성공의 계단을 밟아 올라갔는지가 궁금했는데, 정작 잭 웰치는 1시간 30분 남짓한 강연동안 전략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강조해서 말한 것이 바로 ‘실행(Execute)'이었습니다. 잭 웰치 경영의 핵심은 ‘4E 리더십’으로 요약됩니다. 성공하는 리더가 가져야 하는 첫 번째 E는 ‘에너지(Energy)’이고 에너지는 열정입니다. 즉 사람들을 열정으로 점화시키고 양성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두 번째 E는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일(Energize)’입니다. 즉, 경영자는 조직에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 E는 ‘결단(Edge)’입니다. 경영자는 항상 모호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결단을 강요받고 이때 결단을 내리는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E가 ‘실행(Execute)’으로 앞의 세 가지 E를 모두 충족시키더라도, 실제로 계획을 실행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네 번째 E는 나머지 세 가지 E들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잭 웰치의 이러한 ‘실행’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신념과 일관성을 높게 평가합니다.


권정생 선생과 예수

지난 해 5월, 대구 가톨릭병원에서 권정생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은 동화작가로 살아 생 전 명성이 높은 분이었습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지만 말년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였고, 한국의 어머니들은 ‘권정생’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무조건 책을 사줄 정도로 어린이들뿐 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삶은 이러한 문학적 성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어서, 자발적 가난을 넘어 - 시인이며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인 김용락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 ‘자발적 극빈’이라 불릴 정도로 지독하게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었던 선생은 말년에 들어 기독교의 물량주의와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제국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지금 교회가 어떤가? 설교를 한답시고 온 세계에 떠들고 다니며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는가? 온갖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도 하나의 공해물로 인식된다면 빛과 소금은 커녕 쓰레기만 배출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번 반성할 틈도 없이 그냥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다.”라고 선생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이야기합니다.

권정생 선생을 떠올리면 예수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의 공통점을 말한다면 바로 ‘몸으로 사셨다’는 점입니다. 평생을 인세 60만원과, 동네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지은 빌뱅이 언덕 밑 댓 평짜리 오두막에 살아가던 권정생 선생과,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가난한 농민, 목동, 창녀들과 함께 밥 먹고 지내던 예수님은, 시대의 온갖 유혹과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몸으로 살다 그렇게 떠났습니다.


시대의 고름을 빨아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제 대선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택을 고민하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정말 어떤 사람이 우리 가난하고, 약하고, 주변부로 밀려나 소외받는 사람들의 아픈 고름을 주저 없이 빨아줄 사람인지? 정말 어떤 사람이 말뿐이 아닌 몸으로 실행하고 실천하며, 개발이 아닌 자연과 다음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갈 사람인지? 그리고 정말 어떤 사람이 이시대의 가장 힘겨운 농업ㆍ농촌ㆍ농민들과 한데 어울려 평생 몸으로 살아갈 사람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맹주형 20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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